오늘의 문장 849

오월이 간다는 것 (2024년 5월 31일)

새로 나온 이기철 시집 속'오월이 온다는 것'을 읽다가, "벚꽃 진 자리가너무 넓더니 /늦을세라 그 자리에 라일락이 왔다"에서울컥하고 나니 어느새 오월 끝.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 서정시를 쓰는 시인의마음. 힌트는 '꽃'에.  꽃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아 혼자 피어 버렸다 네가 오지 않아 그만 피고 말았다

오늘의 문장 2024.05.31

노년일기 215: 해변에서 노는 아이 (2024년 5월 25일)

요 뗏목에 갇힌 지 4일 째 삶은 갈수록 단순합니다. 머리는 뜨겁고 목소리는 이상하고... 왜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의 를 펼치는 걸까요? 죽음을 가까이 느끼다 보니 죽기 전 뉴튼(Isaac Newton: 1643/42-1727/26)이 했던 말이 떠오른 걸까요? "I do not know what I may appear to the world;but to myself I seem to have been only like a boy, playing on the seashore, and diverting myself, in now and then finding a smoother pebble ora prettier shell than ordinary, while the grea..

오늘의 문장 2024.05.25

5.18의 물음표 (2024년 5월 18일)

이 블로그를 찾아준 알 수 없는 분 덕에5년 전 오늘 여기 올렸던 시를 만났습니다.정의를 위해 흘렸던 피와 희생조차 과거사가 되면잊히거나 이용당하는 일이 많으니, 착잡합니다.아래는 5년 전 이 블로그에 썼던 글의 일부입니다.그때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다르지 않아아래에 옮겨둡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과 싸웠던 '386세대' 대다수는 자신들이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사람들처럼 권력과 금력을 좇으며 '잘' 살고 있습니다. 잘 죽지도 못하고 잘 살지도 못하는 제 속에는 물음표만이 쌓여 갑니다. 그 물음표 중엔 시인 김남주(1946-1994)의 물음표가 ..

오늘의 문장 2024.05.18

도시의 유목인 (2024년 5월 14일)

작년 봄 언저리에 허먼 멜빌 (Herman Melville: 1819-1891)의 단편소설 '필경사 바틀비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Wall Street)'를 읽으며 재미와 슬픔을 동시에 느낀 적이 있습니다.  멜빌 하면 만  떠올리던 제게 '필경사 바틀비'는 놀라웠습니다. 마치 존 스타인벡 하면 만 생각하다가'진주 (The Pearl)'를 읽었을 때의 기분이라고 할까요? 변호사 사무실에 새로이 고용된 '필경사 바틀비'에 관한 이 짧은 소설은 단순하지만 답하기 어려운 '이뭐꼬?'와 같은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처음엔 일을 잘하던 바틀비가 언제부턴가 일을 시키면  '하지 않고 싶습니다/하고 싶지 않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라고 말하며 일을 하지..

오늘의 문장 2024.05.14

그곳에 개울이 (2024년 5월 10일)

허만하 시인을 아는 것은 행운이고그의 시를 읽는 것은 축복입니다.아흔두 해를 꼭 채워 사신 선생은'詩의 눈'으로 자신의 안팎을 봅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께 빚지고 있습니다.적어도 그분의 시를 읽는 동안엔우리도 언어의 다른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아래는 선생의 시집 41-42쪽에 수록된 '그곳에 개울이 있었다' 전문.시의 여백은 선생이 만드신 여백임.)  그곳에 개울이 있었다 뜻밖에그곳에 개울이 있었다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목을 축이고 있었다  그때  사라지는 것이 태어났다 있다가 없어지는 것 어느덧 보이지 않는 소실점을 향하여 손을 흔들며 이별과 출발 사이 손을 흔들며  그것은 멀어지고 있었다 그곳에도 천체가 있고 해와 달이 돌고 있었다

오늘의 문장 2024.05.10

솔 벨로의 문장들 5: 좋은 남편 (2024년 1월 13일)

제가 9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아버지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밤중에 자신을 해치러 온 사람을 감복시켜 들고 온 칼을 두고 나가게 하신 '영웅'이니까요. 그런 아버지지만 상대하면 늘 지는 대상이 있었으니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에게 몰리면 아버지는 "밖에 나가면 다들 내게 고개를 숙이는데. 저 조그만 여자만 나를 만만히 본단 말이야" 하시며 겸연쩍게 웃으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좀 다정하게 굴 걸, 아버지를 좀 인정해 드릴 걸 하고 후회하신 적이 많았고, 이제는 병실에서 아버지와 만날 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부모님의 경우도 그렇지만, 부부란 일반적인 힘의 법칙이나 관계의 법칙을 적용할 ..

오늘의 문장 2024.01.13

솔 벨로의 문장들 4: 분노의 힘 (2024년 1월 5일)

시간이 투스텝으로 달아나는 아이 같습니다. 사위어가시는 어머니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 차 문득 고개 들면 그새 2, 3일이 지나 있습니다. 요절한 가난한 선비의 딸로서 어려서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교육이라곤 일제 때 야학에 다닌 게 전부였지만, 어머니는 제가 아는 누구보다 정의로웠고, 정의로운 분노를 망설임 없이 표출해 손해를 입은 적도 많았습니다. 바뀌어 가는 세상에서도 어머니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흔이 넘도록 신문을 보시며, 부정을 저질러 이익을 취하는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을 가차없이 비판하시는가 하면, 윗사람이 성희롱이나 성 착취를 할 때 훗날의 피해나 불이익을 생각해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맞서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근 94년 생애 동안 어머니의 정신을 지켜준 건 바로 그..

오늘의 문장 2024.01.05

노년일기 201: 역설적 십계명 (2023년 12월 24일)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크리스천이든 아니든 오늘이 오면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언젠가 이현주 목사님이 쓰신 작은 책 을 읽다가 예수님 손바닥에 못이 박히는 부분에서 정말 손바닥이 견딜 수 없이 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가끔...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아니... 그분이 이 세상에 머무시는 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를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분을 흉내 내며 살았으면, 적어도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성경을 읽어본 사람들, 그분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은 그분을 흉내 내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하다가 존경하는 선배님께서 보내주신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선배님은 켄트 키스(Kent M. Keith)의 저서 를 읽으시고 그 내용을 요약해 보내셨는데, 그 핵심은 '지도자를 ..

오늘의 문장 2023.12.24

솔 벨로의 문장들3: 노인이 생각하는 것 (2023년 12월 18일)

외출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가 빠뜨리고 온 게 생각나서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젊은이는 '아이쿠, 서두르다 빠뜨렸구나!' 생각하지만 노인은 '나이 때문이구나!' 생각하는 일이 많습니다. 음식을 먹다가 흘리거나 사레들어 고생할 때도 젊은이는 나이 생각을 하지 않지만, 늙은 사람은 나이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인들은 거의 항상 쌓여가는 나이와 그 나이로 인해 가까워지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죽음이 가까우니 손주를 돌보기보다는 친구들과 놀러 다녀야 하고, 죽음이 멀지 않으니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아무 데서나 큰소리로 떠들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확율의 문제일 뿐, 죽음은 젊고 늙음을 가리지 않고 찾아옵니다. 솔 벨로의 에서 주인공 토미 윌헬름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아버지를 ..

오늘의 문장 2023.12.18

솔 벨로의 문장들2: 지금, 여기(2023년 12월 16일)

하늘은 우유 탄 물 빛깔이고, 지붕은 얇게 쌓인 눈으로 덮여 있고, 아스팔트 길은 녹은 눈 덕에 아름답게 검어서 세상은 한 폭 수묵화입니다. 문제 많은 눈이지만 이 눈 덕에 저 풍경을 볼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주변에서 늘 감사할 일을 찾아내는 건 일종의 축복이지만, 그 축복을 받는 것은 대개 많은 일, 특히 힘들고 괴로운 일들을 겪은 후 자신의 시선을 바꾼 다음인 것 같습니다. 가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무엇보다 그 책이 인생의 아이러니를 아주 잘 포착해내기 때문일 겁니다. 주인공 토미를 등치는 사기꾼이 분명한 탐킨 박사가 인생의 진실을 얘기하는 식이지요. PP. 61-62 I am at my most efficient when I don't need the fee. When I only lov..

오늘의 문장 2023.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