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861

그와 나의 거리-등대로 (2024년 11월 16일)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의자전적 소설 를 선물 받은 건12년 전입니다.  함께 산 지 여러 십 년이지만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룸메로부터 이 책을 선물 받고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납니다. 표지 안쪽 첫장에 그가 '램지부인을 닮은 당신에게  램지를 닮은 남편이'라고 써 주었기 때문입니다.  램지부인(Mrs. Ramsay)은 매우 아름답고 지혜로운 램지가의 안주인으로서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철학교수 남편을 세상과 이어주며 여덟 명의 자녀를 키우고 램지가를 방문해 한참씩 머무는 손님들을 접대합니다. 아무리 보아도 저는 램지부인을 닮은 데가 없는데, 룸메가 제게 램지부인을닮았다고 한 것은 저를 격려하고 싶어서였을까요?   여러 번 읽기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는데..

오늘의 문장 2024.11.16

군인의 짐 (2024년 10월 26일)

1909년 오늘은 안중근 의사 (1879-1910)가 중국하얼빈 역에서 일본의 초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사살한 날이고, 1979년 오늘은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사망한 날입니다. 이 아름다운 가을날이 품고 있는 피의 역사...군인이 등장하면 총이 등장하고 총이 나오면죽음이 잇따른다는 생각을 하니, 러시아에파병되었다는 북한군들, 1960년대 중반부터1970년대 초까지 베트남에 파병됐던 한국군이떠오릅니다.  미국 작가 팀 오브라이언 (Tim O'Brien: 1946~)은매칼리스터 칼리지를 우등으로 졸업했으나 곧바로 징집돼 베트남전에 파병됐습니다. 1970년 제대한 후전쟁을 고발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1978년 발표한소설 로  '베트남전을 다룬 최고의 소설'이라..

오늘의 문장 2024.10.26

<리처드 3세> 2: 슬픔과 명예 (2024년 9월 28일)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는 재미의 으뜸은 주인공이 아닌주변 인물들이 인생의 진실을 얘기하는 데 있습니다.사형 집행인이나 감옥의 간수, 몸종 같은 사람들이지요.아래는 1막에서, 탑 감옥의 간수 브라켄베리가감옥에 갇혀 있는 클라렌스 공작, 즉 조지 왕자와 대화한 후혼자 하는 말입니다. 지난 25일에 올린 글의 인용문처럼, 아래 글도 대충 번역해 옮겨 둡니다. 원작에는 오늘의 인용문이 25일의 인용문보다 먼저 나옵니다.  Sorrow breaks seasons and reposing hours,Makes the night morning and the noontide night.Princes have but their titles for their glories,An outward honour for an inw..

오늘의 문장 2024.09.28

<리처드 3세> 1: 양심은 위험해 (2024년 9월 25일)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의 글을 읽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엔 과 을읽으며 설렘과 스릴을 느꼈고, 나이 들면서는 을 읽으며 분노와 슬픔과 연민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지난달 생일 선물로 받은 (리처드 3세)>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두 번째로 긴 작품입니다. 가장 긴 작품은이지요. 5막으로 구성된 의 1막에 탑에 갇힌왕자를 살해하라는 명을 받고 온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I'll not meddle with it, it is a dangerous thing,it makes a man a coward. A man c..

오늘의 문장 2024.09.25

상실의 기술 (2024년 9월 9일)

삶은 성취의 기록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삶은 상실의 기록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어떤 사람은 만남의 기록이라고 하는 걸다른 사람은 이별의 기록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겠지요.문학은 같은 말을 다르게 하는 데서 출발했을지 모릅니다. 며칠 전 20세기 미국 시인 엘리자베스 비숍 (Elizabeth Bishop: 1911-1979) 의 시 'One Art (한 가지 기술)'를읽다가, 제가 잃은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많은것들을 잃고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그렇게 많은 것들을 잃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가진 것이많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비숍의 말대로 '상실의 기술'을 마스터하는 것은어렵지 않겠지만, 상실이 낳은 기억은 우리와 함께 살다가우리와 함께 사라지겠지요. 아니면 하늘을 나는 연처..

오늘의 문장 2024.09.09

모래 한 알 속의 세계 (2024년 9월 2일)

17세기에서 20세기에 쓰인 시들을 읽다 보면들리는 소리, 떠오르는 모습이 있습니다.그 소리와 모습은 지금 몸담고 있는21세기의 소리와 풍경보다 낯익게 느껴집니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경주마처럼 내닫는 지금...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1757-1827)가 토닥입니다.  9월. . . 가만히 서 있어도, 들여다보아도,올려다보아도 좋은 계절입니다.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And a heaven in a wild flower,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And eternity in an hour. 모래 한 알 속에서 세계를 보고들꽃 한 송이 속에서 천국을 보려면,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순간에 영..

오늘의 문장 2024.09.02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들 4: 말, 말, 말 (2024년 7월 10일)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 있는가 하면, 말이 오히려 뜻을흐리는 경우도 있고, 말에 속아 분노하거나 슬퍼할 때도 있습니다.살기 위해, 혹은 이득을 위해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도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 갈수록 드물어져당연한 '언행일치 (言行一致)'가 지고한 덕이 되었습니다. 윌리엄 포크너의 의중요한 인물 애디 (Addie)가 첫 아이를 낳았던 때를 생각하며아래 인용문과 같은 말을 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겠지요. "When he was born I knew that motherhood was inventedby someone who had to have a word for it because the onesthat had the children didn't care ..

오늘의 문장 2024.07.10

내가 들은 말 (2024년 7월 6일)

그 베이커리 카페에 자주 가는 이유는 제법 맛 좋은커피를 싼 값에 마시며 책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오늘은 제 또래거나 저보다 두어 살 위일남녀들이 목청껏 떠드는 바람에 부끄럽고 괴로웠습니다.어제 고 장영희 교수의 책 에서 발견한척 로퍼 (Chuck Roper)의 시로 귀를 씻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I Listen I listen to the trees, and they say:"Stand tall and yield. Be tolerant and flexible."....I listen to the sky, and it says:"Open up. Let go of the boundaries and barriers. Fly."I listen to the sun, and it says:"Nurt..

오늘의 문장 2024.07.06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들 3: 하늘나라 (2024년 7월 3일)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들으면서운하겠지만, 이렇게 왜곡된 세상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건 바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움 없이 죽기 위해 가능한 한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지요. 죽음은순간의 일인데 그 순간의 평화를 위해 평생 정직, 근면하게살아야 한다니, 이 또한 삶의 아이러니이겠지요. 윌리엄 포크너 (William Faulkner)도 그런 생각을 했던것 같습니다. 에이런 문장이 있으니까요. 하늘나라에 가면 보상을받을 거라는 생각... 지금 우리나라 곳곳에도 이런믿음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Nowhere in this sinful world can a honest, hard-workingman profit. ..

오늘의 문장 2024.07.03

어제 읽은 시: 실 하나를 따라가는 일 (2024년 6월 30일)

유월의 끝에서 유월의 처음을 돌아봅니다.여전하게, 저의 길을 걸어온 한 달이었습니다. 어머니 이승 떠나시고 백일이 지나니 그때서야활자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읽는 이유는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글의 큰 효용 중 하나는 위로일 겁니다. 여러 문장에서, 특히 시에서위로를 받았습니다. 어제 읽은 시는 고 장영희 교수 (1952-2009)의 책 에 수록된 윌리엄 스태포드 (William Stafford:1914-1993)의 'The Way It Is (삶이란 어떤 거냐하면)'이었습니다. 은 장 교수가 고르고 번역한 시들을 영한 대역으로 출판한 시집입니다.  "There's thread you follow. It goes among things that change. But it doesn't change.Pe..

오늘의 문장 2024.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