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900

노년일기 283: 고마워, 늙은 눈!(2026년 4월 26일)

아마도 제 생애 마지막 안경이 될 안경을 맞춘 지거의 한 달이 되었습니다. 원래부터 양쪽 눈의 시력차이가 심했는데 나이가 들어도 차이는 줄지 않았습니다.양쪽 눈을 평등하게 사용하니 그렇겠지요. 왼쪽은 -17, 오른쪽은 -13이지만, 안경을 만들 때는왼쪽 -13, 오른쪽 -11로 맞춰 교정 시력 0.3이 되었습니다. 도수가 너무 높으면 안경을 통해 보는 세상과 안경 가장자리 밖으로 보이는 세상의 편차가 너무 커서 어지러우니까요. 네 번이나 압축한 렌즈 두 개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는걸 보니 늙긴 늙었나 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처음 안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안경 끼는 삶을 불평한 적은 없습니다. 안경 덕에 읽고 싶은 책을 다 읽고 보고 싶은 하늘도 마음껏 올려다 보며 살았습니다. 겨울에 추운 곳에 있..

나의 이야기 2026.04.26

노년일기 277: 엄마, 잘못했어요(2026년 2월 18일)

엄마, 제 집 창으로 들어오는 봄바람이 '별 그리다'에도 불겠지요? 내일이면 엄마 떠나신 지 꼭 2년. 하루도 엄마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고 매일 아침 엄마의 자유와 평안을 위해 기도하지만 새삼 눈물이 납니다. 요 며칠 베란다에서는 엄마가 좋아하시던 두 가지가향기 싸움을 벌였답니다. 천리향은 겨울에도 봄 같았던 엄마처럼 겨울을 이기고 피운 꽃향내로, 굽힐 줄 몰랐던엄마의 심지를 닮은 홍어는 삭을 뿐 상할 줄 모르는 기질의 알칼리성 냄새로 겨루었지요. 엄마, 어리석은 딸은 엄마가 이 세상에 계실 때 잘하지 못한 것을 참회하느라 아직도 엄마 사시던 동네를 가지 못합니다. 제일 잘못한 것은 엄마의 외로움을 알지못한 것입니다. 아버지 떠나시고 9년 가까이 두 분 사시던 방에 홀로 사시며 외롭다 외롭다 하..

나의 이야기 2026.02.18

블랙 코미디 (2026년 1월 29일)

늙으면 다 그런가책을 읽다 보면 하품이 나1984처럼 재미있는 책도마찬가지야 하품이 나면 눈물이 나고눈물이 나면 콧물이 나핑핑 팽팽 코 풀다 보면결국 웃음이 나블랙 코미디를 볼 때처럼 책 읽다 울고 웃는 시간은사춘기 같은 걸까갱년기 같은 걸까 아니면 모든 것을 보고시침 떼는 하늘이나모두를 묻고도 덤덤한흙의 장난일까 그래서 늙은이들이책을 읽지 않는 걸까?그래서 조지 오웰*이늙기 전에 죽은 걸까? *조지 오웰 (George Orwell: 1903-1950): 소설 의 작가.

나의 이야기 2026.01.29

노년일기 271: 뜻대로 되지 않은 한 해 (2025년 12월 16일)

작년 이맘때, 그러니까 2024년 12월에 2025년에 할 일을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영어로 써둔 소설 네 편을 발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써 본 소설이 학교에서 주는 문학상을 받은 이래 줄곧 소설을 쓰며, 삶에 '시절인연'이 있듯 글에게도 때가 있어 제때 발표하지 않으면 읽힐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023년에도 그 소설들을 발표하려고 외국 출판사를알아보았으나 출간하지 못했고 그 미뤄진 소망이 다시 2025년 새해의 소망이 되었던 겁니다. 출판해 줄 곳이 마땅치 않으면 아마존 같은 곳의 전자책 플랫폼을 이용해 직접 출간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심을 하고 약 열흘 후, 그러니까 2024년 크리스마스를 막 지났을 때 예상치 않았던 제의를받..

나의 이야기 2025.12.16

사랑의 슬픔(2025년 11월 24일)

공공장소에서 제 책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도서관에서 만날 때도 있고 카페에서 만날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책을 펼치고 다른 사람들의 책을 보듯 보게 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사람의 문장보다 제가 쓴 문장에 담긴 감성이나사고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쉽다는 것이겠지요. 엊그제 카페에서 만난 제 시산문집 의 '사랑의 슬픔1'을 읽을 때처럼. 제 사랑을 받다가 떠나간 사람들... 저는아직 여기서,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며 가끔 눈물짓습니다. 사랑의 슬픔1 사랑받는 자들은 떠나가고사랑하는 자들은 남는다사랑받는 자들은 언제나사랑보다 먼저 떠나간다 , 서울셀렉션

나의 이야기 2025.11.24

노년일기 259: 감기 선생 (2025년 6월 19일)

남들 눈엔 아무 것도 안 하고 사는 하루하루인데도제 몸엔 버거운가 봅니다. 또 감기에 걸려 느리게흘러가는 시간 속을 유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감기의 증세가 심해진다는겁니다. 전에는 별다른 증세 없이 열만 올랐고타이레놀 몇 알 먹으면 호전되었는데, 이젠 기침까지하는 데다 타이레놀을 먹어도 물러갈 생각을하지 않습니다. '감기 선생, 내가 좀 부주의했소. 이제 조심할 테니좀 봐주시오!' 그러나 감기 선생은 듣는 둥 마는 둥 떠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고약한 감기에게도 고마운 점은 있습니다.첫째는 감기 덕에 30도가 넘는 날에도 더위를 느끼지못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제 몸의 노화에 대해 더 잘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위를 느끼지 못하니 선풍기도 켜지 않고 지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나의 이야기 2025.06.19

노년일기 258: 박수의 힘 (2025년 6월 13일)

가끔 바느질을 합니다. 오늘은 집에서 입는 검정 원피스에 주머니를 답니다. '걸음'을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제 전화기에 유일하게 깔려 있는 앱은'걸음 앱'인데, 전화기가 몸의 움직임을 감지해 제 걸음 수를 기록합니다. 하루의 끝, 목표 걸음 수를 채우면 전화기화면에서 꽃가루 같은 게 쏟아지며 박수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 아주기분이 좋습니다. 박수 받을 일이 거의 없는 나날을 보내다가오랜만에 박수 소리를 듣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박수 소리를 들으며 결심합니다. 내일 또 걸음 수를 달성해 이 소리를 들으리라! 그런데 검정 원피스엔 주머니가 없어전화기를 넣고 다닐 수 없으니 주머니를다는 겁니다. 박수가 실질을 유도하는구나,이게 바로 칭찬의 힘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어설퍼도 무언가..

나의 이야기 2025.06.13

노년일기 256: 돈은 어디로 갔을까? (2025년 5월 29일)

고등학생 때 동네 초등학생을 가르쳤습니다. 대학생 때도 저보다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거나사회조사원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벌었고, 대학 졸업 전 신문기자가 되어 돈을벌었습니다. 결혼 전에 번 돈은 그대로 부모님께 드렸습니다. 결혼 후에는 어려운 친정에 거의 매일 뭔가를사들고 들렀습니다. 저는 명품을 산 적이 없지만 어머니 아버지께는 좋은 것만 사드렸습니다. 직장생활에서나 직장 밖 생활에서나 돈은 거의 사람에게 썼습니다. 후배들의 월급이저보다 적으니, 저 사람이 나보다 어렵게 사니,밥을 사는 식이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둔 후에도 방송을 진행하고 글을 쓰고 번역하여 돈을 벌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오랫동안 돈을 벌었는데저는 여전히 '가난'하다는 겁니다. 제 '가난'은 집을 소유한 ..

나의 이야기 2025.05.29

노년일기 255: 독수리처럼 (2025년 5월 20일)

대통령 후보들의 경력을 보며 짧지 않은 제 생애를 돌아봅니다. 신문기자, 통신기자,대사관 전문위원, 방송 진행자, 칼럼니스트, 아름다운서당 교수, 시인, 에세이스트, 번역자, 출간되지 않는 소설을 쓰는 소설가...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온 줄 알았는데 제가 한 일은 오직 하나, 글 쓰는 일이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남과 있어도 홀로 있는 일, 매 순간 자신의 무지와 무식을 마주하는 일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엔 관성이 있으니사람들의 인생 또한 관성을 보여 줍니다.사기꾼들이 죽을 때까지 사기를 치는 식이지요. 그러니 저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글을 쓸 겁니다.가능하면 미국 시인 엘리너 와일리 (Elinor Wylie: 1885-1928)가 노래했던 '독수리'처럼 살면서. 독수리와 두더지 악취..

나의 이야기 2025.05.20

우리 큰딸 사랑한다 (2025년 5월 6일)

아버지 안 계신 어버이날이 여덟 번... 그리곤어머니도 아버지 계신 곳으로 떠나셨습니다.두 분께 어떤 선물을 드릴까 며칠 전부터 고심하던날들이 꿈 속의 일 같습니다. 매일 아침 두 분의 자유와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면 눈이 젖기 일쑤입니다. 어제는 편지 봉투들을뒤적이다 어머니가 농협은행 봉투에 쓰신 '우리 큰딸사랑한다 2022년 4月 21日'을 보고 홀로 울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그 봉투에 '용돈'을 담아 주시기에"엄마, 저는 돈보다 엄마 글이 좋아요. 몇 자 적어 주세요"하고 졸랐습니다. 쓰시지 않겠다기에 그럼 봉투를 받지 않겠다고 버티자 어머니가 하는 수 없이봉투 겉봉에 써 주신 글자입니다. 어머니를 뵈온 듯 기쁘면서도 슬펐습니다. 누구보다 지적인 분이지만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신 어머니는 ..

나의 이야기 2025.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