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889

노년일기 254: 층계참에서 (2025년 4월 8일)

타이레놀을 먹어도 열이 내려가지 않았습니다.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신을 구속 당한 듯꼼짝 못 하고 누워 보냈습니다. (를 다시 보고 싶습니다.)  과로라고 할 만한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왜 이러는 거지? 남의 몸 같은 제 몸을 관찰 또 관찰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노화는 계단식으로 진행된다는 말을생각했습니다. 평평한 듯한 길을 걷다가 갑자기나타나는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는 것, 그게노화의 과정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계단에서 넘어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가느다란 난간을붙잡고 조심조심 내려갑니다. 위태로운 계단을 몇 개 내려가고 나면 다시 평평한 길이 나오지만,살 만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계단이 나타납니다.  두꺼운 계단 두어 개를 내려가 층계참에 이른..

나의 이야기 2025.04.08

노년일기 253: 깨어나라! (2025년 3월 31일)

누구나 그렇듯이 저도 장점과 단점을 두루 가진인간입니다. 장점은 아마도 책임감일 겁니다.어떤 일을 하기로 하면 가능한 한 주어진 시간  안에 잘해내려고 하는 것이지요. 단점은 장점에 비해 훨씬 많은데, 그중에서도 문제가되는 것은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것입니다. 열이 올라도 웬만큼 올라서는 신경 쓰지 않고살던 대로 살기 일쑤입니다. 그러다가 몇 해 전 고열에 잡혀  잘하던 노래를 못하게 되었지만, 습성은 잘 변하지않는 것 같습니다. 그 습성 때문에 이틀여를 꼬박 누워 있다 일어나 보니눕기 전에 사다둔 봄동이 저처럼 시들어 있습니다.봄동을 물에 담가 놓고, 누워 보낸 시간과 그 앞뒤의 시간을 생각합니다. 그 시간이 제게 해준 말은 무엇보다 살던 대로 살지 말고 관성에서 '깨어나라!'입니다. 어..

나의 이야기 2025.03.31

좋음, 매우 좋음 (2025년 3월 25일)

하늘이 뿌옇기에 미세먼지 정보를 보니미세먼지 '나쁨',  초미세먼지 '매우 나쁨'입니다.또 하루 숨 쉬기 힘든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하필 먼 곳의 친구가 오는 날 공기가 나쁘니먼지 속을 헤쳐 올 친구에게 미안합니다.그렇지만 '공기가 나쁘니 오늘 오지 마시고,공기 좀 나아지면 볼까요?' 하는 전화를 하지 않고가만히 있습니다. 친구를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쁜 공기를 핑계로 어영부영하고 싶지만어제 꽃과 나무들을 보았으니 그럴 수 없습니다. 어제도 공기가 나빴지만 나무마다 새 잎들이 어린이의 눈동자처럼 반짝이고, 개나리엔 이미 노란 안개가 어리어 있었습니다. 나쁜 공기는 나쁜 사람들처럼 세상을 시끄럽고탁하게 하지만, 꽃과 나무는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일을 합니다. 저도 그래야겠습니다. 친구를 만나 우정에..

나의 이야기 2025.03.25

노년일기 252: 토마토 거울 (2025년 3월 22일)

창가의 토마토 나무에 다섯 개의 열매가 열린 건한겨울이었습니다. 손톱만한 열매를 처음 보았을 땐방울토마토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겨울 햇살도 햇살이라 열매가 자꾸 커졌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난 방울토마토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몸은 자랐지만 빛깔은 짙푸른 채 변하지 않았습니다.몸집이 커지는 데는 햇살로 족하지만, 몸이 익는 데는햇살의 온도가 중요한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겨울 날씨와 봄 날씨가 엎치락뒤치락하더니한낮엔 봄에 여름 몇 방울이 섞인 듯 더워졌습니다.그러더니 대번에 토마토의 색깔이 달라졌습니다.푸름에 붉음이 섞이기 시작한 겁니다.   창밖에 눈 내리는 날 짙푸른 토마토를 보면안쓰러웠는데, 푸름과 붉음이 보기 좋은 모습을보면 대견합니다. 오늘 같은 날씨가 며칠 계속되면..

나의 이야기 2025.03.22

노년일기 251: 즐거운 취미 활동 (2025년 3월 12일)

취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독서를 취미라고 하는 사람도있고 노래 부르기가 취미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여행이 취미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 취미는김치 담그기입니다. 직장생활을 오래했지만, 김치는 선물로 받았을 때를빼고는 거의 항상 담가 먹었습니다.  '아니, 김치 담그기가얼마나 힘든데 그게 취미라니요?'하는 사람이 있을지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어떤 일이 힘든 건 그 일이 힘에 부칠 때입니다.저는 김치를 힘에 부치게 '전문적으로' 담그지 않고조금씩 재미를 느낄 만큼씩만 담급니다. 어여쁜 배추를 한두 포기 사거나 올망졸망 귀여운 총각무 (알타리무) 두어 다발, 오이 한두 봉을 사서 담급니다. 물론 김장할 땐 좀 더 많은 양을 하지만, 그래 봤자 배추 세 통, ..

나의 이야기 2025.03.12

노년일기 247: 그때와 지금 (2025년 1월 30일)

지나간 시간 중 언제를 '그때'라 부르든, 그때와 지금은 모든 게 다릅니다. 시간은 보이지 않지만 참 많은 일을 합니다. 저 개인으로 보면 짙은 갈색머리가 희게 변했고얼굴엔 주름, 손등엔 검버섯이 생겼습니다.허리와 다리는 굵어졌고 눈은 더 나빠졌고, 이는 삐뚤빼뚤해졌습니다. 웃음은 많아졌고 화내는 일은 줄었습니다.  책상이나 집 같은 무생물도 시간이 흐르며변하지만, 사람을 비롯해 살아있는 것들의변화는 훨씬 더 두드러집니다. 윤동주 (1917-1945)가 '서시'에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다짐했던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윤동주의 평생을 포함하는 시간을 아일랜드에서 산 시인 제임스 스티븐스 (James Stephens: 1882-1950)는나뭇잎을 빌어 시간의 횡포를 고발했습니다. 대충 번역해..

나의 이야기 2025.01.30

형용사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2025년 1월 21일)

모든 단어는 기능, 의미, 형태에 따라 명사, 동사,형용사, 부사, 조사 등으로 나뉩니다. 제가 좋아하는 품사는 명사와 동사이고 좋아하지않는 품사는 형용사와 부사입니다. 형용사나 부사가 명사나 동사에 비해 사적(개인적)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특히 '아프다' '힘들다' '괴롭다' 처럼 고통을묘사하는 형용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단어들이 고통의 정도를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에, 즉 진짜 고통과 엄살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암에 걸린 사람이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받으며 '아프다'고 하는 것과 종이에 손가락을 베인사람이 '아프다'고 하는 것처럼, '아프다'는 진정한공감을 모르는 둔감한 사람 같습니다.  '힘들다'도 마찬가지입니다. 형편이 어려운 집에 태어나 예닐곱 살 때부터 병든 부모 수발을 ..

나의 이야기 2025.01.21

노년일기 246: 기도에서 사라진 사람 (2025년 1월 17일)

하루는 기도로 시작하여 꿈으로 끝납니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빗고 기도 매트 위에무릎을 꿇으면 늘 울컥, 감정이 일어납니다.꿈이 현실이 되지 못할 때 하는 것이 기도이니그렇겠지요... 저를 이 세상에 데려다 주신, 그러나 이제이곳에 계시지 않은 부모님의 자유와 평안을위해 기도한 후,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과제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지혜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데  필요하고, 용기는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필요하니까요. 그다음엔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주십사고  기도하고, 재해와 전쟁을그치게 해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사람들이 그 어리석음에서 깨어나게 해 주십사고기도하고, 양심적으로 ..

나의 이야기 2025.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