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895

노년일기 259: 감기 선생 (2025년 6월 19일)

남들 눈엔 아무 것도 안 하고 사는 하루하루인데도제 몸엔 버거운가 봅니다. 또 감기에 걸려 느리게흘러가는 시간 속을 유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감기의 증세가 심해진다는겁니다. 전에는 별다른 증세 없이 열만 올랐고타이레놀 몇 알 먹으면 호전되었는데, 이젠 기침까지하는 데다 타이레놀을 먹어도 물러갈 생각을하지 않습니다. '감기 선생, 내가 좀 부주의했소. 이제 조심할 테니좀 봐주시오!' 그러나 감기 선생은 듣는 둥 마는 둥 떠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고약한 감기에게도 고마운 점은 있습니다.첫째는 감기 덕에 30도가 넘는 날에도 더위를 느끼지못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제 몸의 노화에 대해 더 잘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위를 느끼지 못하니 선풍기도 켜지 않고 지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나의 이야기 2025.06.19

노년일기 258: 박수의 힘 (2025년 6월 13일)

가끔 바느질을 합니다. 오늘은 집에서 입는 검정 원피스에 주머니를 답니다. '걸음'을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제 전화기에 유일하게 깔려 있는 앱은'걸음 앱'인데, 전화기가 몸의 움직임을 감지해 제 걸음 수를 기록합니다. 하루의 끝, 목표 걸음 수를 채우면 전화기화면에서 꽃가루 같은 게 쏟아지며 박수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 아주기분이 좋습니다. 박수 받을 일이 거의 없는 나날을 보내다가오랜만에 박수 소리를 듣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박수 소리를 들으며 결심합니다. 내일 또 걸음 수를 달성해 이 소리를 들으리라! 그런데 검정 원피스엔 주머니가 없어전화기를 넣고 다닐 수 없으니 주머니를다는 겁니다. 박수가 실질을 유도하는구나,이게 바로 칭찬의 힘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어설퍼도 무언가..

나의 이야기 2025.06.13

노년일기 256: 돈은 어디로 갔을까? (2025년 5월 29일)

고등학생 때 동네 초등학생을 가르쳤습니다. 대학생 때도 저보다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거나사회조사원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벌었고, 대학 졸업 전 신문기자가 되어 돈을벌었습니다. 결혼 전에 번 돈은 그대로 부모님께 드렸습니다. 결혼 후에는 어려운 친정에 거의 매일 뭔가를사들고 들렀습니다. 저는 명품을 산 적이 없지만 어머니 아버지께는 좋은 것만 사드렸습니다. 직장생활에서나 직장 밖 생활에서나 돈은 거의 사람에게 썼습니다. 후배들의 월급이저보다 적으니, 저 사람이 나보다 어렵게 사니,밥을 사는 식이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둔 후에도 방송을 진행하고 글을 쓰고 번역하여 돈을 벌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오랫동안 돈을 벌었는데저는 여전히 '가난'하다는 겁니다. 제 '가난'은 집을 소유한 ..

나의 이야기 2025.05.29

노년일기 255: 독수리처럼 (2025년 5월 20일)

대통령 후보들의 경력을 보며 짧지 않은 제 생애를 돌아봅니다. 신문기자, 통신기자,대사관 전문위원, 방송 진행자, 칼럼니스트, 아름다운서당 교수, 시인, 에세이스트, 번역자, 출간되지 않는 소설을 쓰는 소설가...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온 줄 알았는데 제가 한 일은 오직 하나, 글 쓰는 일이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남과 있어도 홀로 있는 일, 매 순간 자신의 무지와 무식을 마주하는 일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엔 관성이 있으니사람들의 인생 또한 관성을 보여 줍니다.사기꾼들이 죽을 때까지 사기를 치는 식이지요. 그러니 저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글을 쓸 겁니다.가능하면 미국 시인 엘리너 와일리 (Elinor Wylie: 1885-1928)가 노래했던 '독수리'처럼 살면서. 독수리와 두더지 악취..

나의 이야기 2025.05.20

우리 큰딸 사랑한다 (2025년 5월 6일)

아버지 안 계신 어버이날이 여덟 번... 그리곤어머니도 아버지 계신 곳으로 떠나셨습니다.두 분께 어떤 선물을 드릴까 며칠 전부터 고심하던날들이 꿈 속의 일 같습니다. 매일 아침 두 분의 자유와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면 눈이 젖기 일쑤입니다. 어제는 편지 봉투들을뒤적이다 어머니가 농협은행 봉투에 쓰신 '우리 큰딸사랑한다 2022년 4月 21日'을 보고 홀로 울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그 봉투에 '용돈'을 담아 주시기에"엄마, 저는 돈보다 엄마 글이 좋아요. 몇 자 적어 주세요"하고 졸랐습니다. 쓰시지 않겠다기에 그럼 봉투를 받지 않겠다고 버티자 어머니가 하는 수 없이봉투 겉봉에 써 주신 글자입니다. 어머니를 뵈온 듯 기쁘면서도 슬펐습니다. 누구보다 지적인 분이지만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신 어머니는 ..

나의 이야기 2025.05.06

5월은 천둥 번개와 함께 (2025년 5월 1일)

드디어 5월입니다. 어린이날 노래는 '오월은 푸르구나'로 시작하지만 올 오월은 천둥 번개로 시작합니다. 우리 속담에 '천둥 번개 칠 땐 천하 사람이 한맘 한뜻'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오후 3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상고심 선고가 어떻게 나오든, 모든 국민이 '한맘 한뜻'으로받아들이고 '한맘 한뜻'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지금 한국은 어두운 밤 천둥 번개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어린이와 같으니까요. 2017년 겨울에 출간한 졸저 는 날짜 별로 쓰인글들의 모임입니다. 5월 1일자 글의 제목은 '파우스트', 이 글을 보니 저는 8년 전이나 지금이나 현실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정상적 사고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겠지요. 그 글의 말미에 저는 괴테의 ..

나의 이야기 2025.05.01

노년일기 254: 층계참에서 (2025년 4월 8일)

타이레놀을 먹어도 열이 내려가지 않았습니다.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신을 구속 당한 듯꼼짝 못 하고 누워 보냈습니다. (를 다시 보고 싶습니다.)  과로라고 할 만한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왜 이러는 거지? 남의 몸 같은 제 몸을 관찰 또 관찰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노화는 계단식으로 진행된다는 말을생각했습니다. 평평한 듯한 길을 걷다가 갑자기나타나는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는 것, 그게노화의 과정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계단에서 넘어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가느다란 난간을붙잡고 조심조심 내려갑니다. 위태로운 계단을 몇 개 내려가고 나면 다시 평평한 길이 나오지만,살 만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계단이 나타납니다.  두꺼운 계단 두어 개를 내려가 층계참에 이른..

나의 이야기 2025.04.08

노년일기 253: 깨어나라! (2025년 3월 31일)

누구나 그렇듯이 저도 장점과 단점을 두루 가진인간입니다. 장점은 아마도 책임감일 겁니다.어떤 일을 하기로 하면 가능한 한 주어진 시간  안에 잘해내려고 하는 것이지요. 단점은 장점에 비해 훨씬 많은데, 그중에서도 문제가되는 것은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것입니다. 열이 올라도 웬만큼 올라서는 신경 쓰지 않고살던 대로 살기 일쑤입니다. 그러다가 몇 해 전 고열에 잡혀  잘하던 노래를 못하게 되었지만, 습성은 잘 변하지않는 것 같습니다. 그 습성 때문에 이틀여를 꼬박 누워 있다 일어나 보니눕기 전에 사다둔 봄동이 저처럼 시들어 있습니다.봄동을 물에 담가 놓고, 누워 보낸 시간과 그 앞뒤의 시간을 생각합니다. 그 시간이 제게 해준 말은 무엇보다 살던 대로 살지 말고 관성에서 '깨어나라!'입니다. 어..

나의 이야기 2025.03.31

좋음, 매우 좋음 (2025년 3월 25일)

하늘이 뿌옇기에 미세먼지 정보를 보니미세먼지 '나쁨',  초미세먼지 '매우 나쁨'입니다.또 하루 숨 쉬기 힘든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하필 먼 곳의 친구가 오는 날 공기가 나쁘니먼지 속을 헤쳐 올 친구에게 미안합니다.그렇지만 '공기가 나쁘니 오늘 오지 마시고,공기 좀 나아지면 볼까요?' 하는 전화를 하지 않고가만히 있습니다. 친구를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쁜 공기를 핑계로 어영부영하고 싶지만어제 꽃과 나무들을 보았으니 그럴 수 없습니다. 어제도 공기가 나빴지만 나무마다 새 잎들이 어린이의 눈동자처럼 반짝이고, 개나리엔 이미 노란 안개가 어리어 있었습니다. 나쁜 공기는 나쁜 사람들처럼 세상을 시끄럽고탁하게 하지만, 꽃과 나무는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일을 합니다. 저도 그래야겠습니다. 친구를 만나 우정에..

나의 이야기 2025.03.25

노년일기 252: 토마토 거울 (2025년 3월 22일)

창가의 토마토 나무에 다섯 개의 열매가 열린 건한겨울이었습니다. 손톱만한 열매를 처음 보았을 땐방울토마토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겨울 햇살도 햇살이라 열매가 자꾸 커졌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난 방울토마토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몸은 자랐지만 빛깔은 짙푸른 채 변하지 않았습니다.몸집이 커지는 데는 햇살로 족하지만, 몸이 익는 데는햇살의 온도가 중요한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겨울 날씨와 봄 날씨가 엎치락뒤치락하더니한낮엔 봄에 여름 몇 방울이 섞인 듯 더워졌습니다.그러더니 대번에 토마토의 색깔이 달라졌습니다.푸름에 붉음이 섞이기 시작한 겁니다.   창밖에 눈 내리는 날 짙푸른 토마토를 보면안쓰러웠는데, 푸름과 붉음이 보기 좋은 모습을보면 대견합니다. 오늘 같은 날씨가 며칠 계속되면..

나의 이야기 2025.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