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808

노년일기 149: 젊은이는... (2023년 1월 19일)

젊은이는 빛이 납니다. 이목구비 균형이 맞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어도 머리끝서 발끝까지 반짝입니다. 노인은 집에서 키운 하늘소 같아 이목구비 균형이 아무리 좋아도 빛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황금뇌를 떼어 팔며 살다 죽은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노인은 제 빛과 시간을 바꾼 사람입니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한 사람이 그 분야 전문가가 되듯 긴 시간을 제정신으로 산 노인은 인생을 제법 알게 되고 젊어서 씨름하던 문제의 답을 얻기도 합니다. 젊음을 부러워하는 노인이 많지만 모든 노인들이 그러지 않는 건 바로 그래서이겠지요. 빛나던 시절엔 몰랐으나 빛을 잃으며 알게 되는 것들, 그런 것들이 노년을 흥미롭게 하고 살 만한 나날로 만듭니다. 그러면 젊음이 부럽다며 늙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사람들은 뭐냐고요? 글..

나의 이야기 2023.01.19 (1)

눈물 납니다 (2023년 1월 16일)

선인장 화분 한 귀퉁이에서 꺽다리 토마토가 자랍니다. 앉은 자리는 좁은데 해를 향해 자꾸 자라니 푸른 허리가 아플 것 같습니다. 지지대를 대어 묶어 주어도 허리는 자꾸 휘어집니다. 밤낮없이 크는데다 잎도 이미 여럿이니까요. 반대편에 하나 더 지지대를 세우다 보니 눈물 납니다. 노란 별사탕꽃이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어둔 길 가로등 같습니다. 꽃의 꿈은 열매일 테니 이쑤시개만한 솜방망이로 꽃술을 만져 벌나비 흉내를 냅니다. 설 명절 지나고 입춘 오면 꽃자리마다 토마토가 열릴지 모릅니다. 선인장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나의 이야기 2023.01.16 (2)

노년일기 148: 잘 살고 싶으면 (2023년 1월 6일)

어떤 책을 읽다가 혹은 읽고 나서 다른 책을 이어 읽는 일이 흔합니다. 책의 한 구절이 다른 책을 부를 때도 있고 그 책의 한 생각이 다른 책을 펼치게 할 때도 있고, 책의 주제가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책을 읽게 하기도 합니다. 안락사를 선택한 지인의 마지막 시간을 스위스에서 함께하고 쓴 신아연 씨의 책 를 읽다 보니 두 권의 책이 떠올랐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과 네덜란드 의사 Bert Keizer (베르트 케이제르)의 입니다. 세 저자는 각기 다른 나라 출신이고 살아온 배경과 종교도 다르지만, 그들의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습니다. 후회 적은 삶을 살다가 평화로운 죽음을 맞고 싶으면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아프기 전에는 죽는 것이 무척 두려웠습니다...

나의 이야기 2023.01.06 (1)

새 달력을 걸고 (2023년 1월 3일)

어느 날 은행 앞을 지나다 입구에 붙은 안내문을 보았습니다. '새해 달력 소진되었습니다'. 그제야 새해로구나, 새 달력이 필요하구나 생각했습니다. 은행 달력을 걸어 두어야 돈이 들어온다고 은행 달력을 탐내는 사람이 많아 인터넷 시장에서 은행 달력에 웃돈을 얹어 판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웃음이 나왔습니다. 두어 해 동안 은행에서 준 달력을 걸었지만 살림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까요. 제가 아는 우리나라 최고의 보험전문가 양심순 선생이 달력을 보내주지 않았다면 저희 집은 2023년 달력 없이 새해를 맞았을 겁니다. 게다가 양 선생이 보내주신 달력은 3개월이 한 장에 담긴 달력이라 좋습니다. 12월에 못한 것 1월에 하자고 볼 때마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새 달력을 걸며 하는 결심은 왜 만날..

나의 이야기 2023.01.03

새해 소망 (2022년 12월 31일)

2022년 12월 31일 새벽은 다른 어느 새벽보다 어둡습니다. 2023년 1월 1일부터는 저 어둠이 옅어질까요?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엔 코로나 19가 그만 물러났으면 좋겠습니다. 몰려다니는 사람들은 줄고 산책하는 사람은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SNS에 행복을 광고하는 대신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친절이 곧 행복을 나누는 방법임을 아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울고 있을 때는 형편이 좋아도 웃지 않고 모두가 고통받을 때는 복락을 자랑하지 않는 예의를 아는 사람들을 보고 싶습니다. 하루에 적어도 세 사람을 웃게 하고 싶습니다. 하루에 적어도 세 개의 좋은 문장을 읽고 하루에 적어도 세 개의 좋은 문장을 쓰고 싶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의 생존과 생활을 도와주신 ..

나의 이야기 2022.12.31 (4)

노년일기 147: 크리스마스날 (2022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아침 부고를 받았습니다. 뜬금없이... '새로 태어나시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니 '울지마 톤즈'를 방영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처음 그 영화를 보던 때처럼,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많은 눈물이 흘렀습니다. 한 사람이 개인의 안락을 목표로 하는 대신 더 높은 뜻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려 노력할 때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가, 그의 선의와 선행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가 생각하니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이태석 신부님,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을 만큼 고결한 이름... 그분 덕에 말갛게 씻긴 눈을 닦고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하얀 눈은 사라지고 거뭇거뭇한 눈만 가로수 아래 쓰레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눈은 흰눈일 때 눈 대접을 받고 사람은 의식이 제..

나의 이야기 2022.12.25 (2)

사랑받는 자들은 (2022년 12월 11일)

누군가에게 제가 쓴 책을 보내주기로 한 지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그냥 책만 보낼 수는 없고 마음 담은 몇 글자 새로 적어 함께 보내리라 생각했는데 자꾸 늦어집니다. 보내려고 꺼내둔 책을 펼치니 하필 '사랑의 슬픔1'입니다. 사랑이 슬픈 이유는 사랑받는 자들이 사랑보다 먼저 떠나가기 때문일 겁니다. 남은 자들은 자신들에게 남겨진 사랑, 사랑할 대상의 부재로 인해 슬플 수밖에 없겠지요. 사랑이 떠나며 남긴 깊은 슬픔은... 그 사랑을 만난 기쁨, 그 축복을 상기하며 이겨내야겠지요... 사랑하기 좋은 계절, 겨울. 사랑, 그 후를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하시길 빕니다. 사랑의 슬픔 1 사랑받는 자들은 떠나가고 사랑하는 자들은 남는다 사랑받는 자들은 언제나 사랑보다 먼저 떠나간다 -- 김흥숙 시산문집 , 81쪽

나의 이야기 2022.12.11 (4)

노년일기 145: 그녀의 비늘 (2022년 12월 4일)

아흔 넘은 어머니를 누르는 중력 아주 눌린 노부는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다가 오히려 하늘로 돌아가시고 슬픔을 식량삼아 버티던 노모는 비척비척 십이월 젖은 낙엽 1분에 하던 일을 10분 걸려 하면서 왜 자꾸 채근하냐고 야속해 하는 어머니 혹은 낡은 비늘집 어제는 한 조각 오늘은 두 조각... 빛나던 비늘들 바래어 떨어지네 남의 집 같던 그 마음 이제야 알 것 같은데 그 목마름 그 성마름 먼지 털 듯 털어내시며 어머니 자꾸 사라지시고 내 손엔 빛바랜 비늘만...

나의 이야기 2022.12.04 (1)

12월 (2022년 11월 30일)

십이월아 어서 와 빗물 세수 덕에 그나마 말개진 세상 속으로 한 장 달력처럼 가볍게 어쩌면 하얀 망토에 앉아 영하 추위를 몰고 와 십이월아 어서 와 낙엽마다 음각된 사라진 사람들의 이름 가벼워졌으나 무거워진 징그럽게 시끄러운 헌 것들의 새 세상으로 숨죽여 우는 사람들에게로 억지로 웃는 사람들에게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사람들에게로 십이월아 어서 와

나의 이야기 2022.11.3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