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숙 2630

우는 남자들 (2024년 12월 28일)

웃을 때보다 울 때 더 아름다운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그런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하는 건 웃는 모습이 우는 모습보다 보기 좋기 때문에생긴 말이겠지요.  그러다 보니 웃는 건 남들 앞에서 해도 되지만 우는 건 되도록 개인적 공간에서 하는 관습이 생겼고, 누군가의 앞에서 마음껏 울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그 사람을 신뢰한다는의미가 되었습니다.  성인이 공공장소에서 울어도 질시를 받지 않고 공감이나 동정을 일으키는 경우는 나라나 가족을 잃었을 때, 가족 같은 존재를 잃었을 때,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스승이나 친구를 잃었을 때처럼 매우 제한된 경우일  겁니다.  그런데 요즘 '나는 솔로'에는 우는 얼굴이 꽤 흔합니다. 남자도 울고 여자도 우는데, 그들의 눈물이 얼마나 공감을일으키는지는 모..

동행 2024.12.28

크리스마스 케이크 (2024년 12월 24일)

오늘, 내일, 아니 매일, 케이크를 한 조각 더 먹을까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쉘 실버스틴 (Shel Silverstein)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명쾌한 답을 내놓습니다. 게다가 시(詩)의 형태로! 아래의 시는 '파이'에 대한 고민을 다루지만, 케이크에대한 고민의 해결책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대충 번역해 옮겨둡니다. 즐겁고 맛있는 크리스마스 보내세요!즐겁고 맛있는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없는 사람들도 많지만...  Pie Problem If I eat one more piece of pie, I'll die!If I can't have one more piece of pie, I'll die!So since it's all decided I must die,I might a..

동행 2024.12.24

악귀야, 물렀거라: 동지 팥호박죽 (2024년 12월 20일)

내일은 동지, 24절기 중 22번 째 절기입니다.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음기가 극에 달하며 양기가 생겨나는 때라고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동지에 양색인 붉은 색 팥으로 죽을 쑤어 먹음으로써 음귀를 쫓았다고 하지요. 올해는 팥의 작황이 매우 나빠 값이 엄청 비쌉니다.팥만으로 팥죽을 쑤어 먹는 것은 부자들에게나가능할 테고, 저는 가을 끝에 사 두었던 늙은호박을 주로 하고 팥은 다만 곁들여 죽을 쑵니다.본래는 찹쌀 경단으로 만든 새알심을 넣어야 하지만찹쌀 가루가 없으니 며칠 전 세일할 때 샀던 밤을 삶아 새알심을 삼습니다. 요즘 이 나라엔 무속 신앙이 판을 칩니다.대통령 부부 주변에도 역술인 천공과 건진법사가있고, 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용한 점쟁이'와'새해 운세' 얘기를 하는..

동행 2024.12.20

독단적일수록 나쁜 판단을 (2024년 12월 18일)

독단적인 사람은 대개 외롭고 불행합니다.그의 독단성이 주변 사람들을 밀어내어 그러겠지짐작했는데, 오늘 아침에 본 기사는 뇌 과학적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독단적인 사람은 정보를 덜 찾으며 자신이 틀린것을 알아도 자신의 관점을 바꾸지 않아결국 나쁜 판단을 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요.나쁜 판단이 거듭되면 실수나 실패가 늘어나고주변의 사람도 줄어 자연히 외롭고 불행해지겠지요. 살아오면서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그러니내게 바뀌라고 하지 마' 하는 사람을 종종보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차마 대놓고말하진 못하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바뀌지 않겠다면 이미 죽은 사람 아닌가'.  새로운 정보에 무심하고 새 정보를 접하고도 관점을 바꾸지 않는 독단적인 사람들만 있다면 인류는 지금과 같은 발전을 이루지 못했을 겁니..

동행 2024.12.18

조국, 그리고 칼레의 시민 (2024년 12월 13일)

어제 대법원이 조국혁신당 대표 조국 씨에게 징역 2년과600만원의 추징 명령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는보도를 보니 며칠 전 신문에서 본 '칼레의 시민'이 떠오릅니다.  조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 혐의(업무방해, 허위·위조 공문서작성·행사, 사문서위조·행사 등)와 딸 조민 씨 장학금 부정수수혐의 등으로 2019년 12월 재판에 넘겨져 2심까지 관련 혐의가대부분 유죄로 인정됐으며,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시 유재수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관한 특별감찰반의 감찰을 무마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도 일부 유죄가 인정됐다고 합니다. 조국 씨는 오늘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이 여의도의 한 카페에'작은 이별 선물'로 333잔의 음료값을 선결제했다며 시민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대고 먹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는 대법원..

동행 2024.12.13

나르시시스트 리더의 자아 과잉 (2024년 12월 5일)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걸4일 아침에야 알았습니다. 제가 뉴스를 보지 않는 동안 비상계엄이 내려지고 해제되었습니다. 저로선 참 운이 좋았던 것이지요. 계엄이 선포된 것을 알았으면잠도 못 자고 나라 걱정을 했을 테니까요. 어제 아침 이 소식을 접하자 제일 먼저 대통령 주변에사람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국지에서 보듯 공명이 있거나 방통이 있거나 주유가 있거나, 리더의 장점과 단점을 아는 책사가 옆에 있어야 할 텐데, 윤 대통령에겐 그런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마침 어제 열렸던 동아비즈니스포럼에서 맨프레드 케츠드 브리스 ( Manfred Kets De Vries) 교수가 이번 계엄 사태에딱 어울리는 얘기를 했기에 첫 부분만 아래에 옮겨둡니다. 아래를 클릭하면 기사 전문..

동행 2024.12.05

스님과 사제를 수입한다고? (2024년 12월 3일)

며칠 전 신문에서 사제와 스님 등 구도자들이부족하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구도 희망자의 부족으로신학대학 입학생이 줄어 문 닫는 신학교가 생겼고,현재의 추세가 계속되면 빈 절과 빈 성당이 생겨날 테니 외국 사제와 스님들의 수입을 늘릴 거라고 합니다. 절과 성당과 교회가 있는 이유는 신도가 있기 때문이니그런 종교기관들이 문을 닫는 이유는 신도가 줄기때문이겠지요. 그러면 사제와 스님을 '수입'하기 전에왜 신도가 줄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존재론적 고민을 하는 사람이 줄어서일 겁니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산다는 건 무엇인가, 잘 사는 건 어떻게 사는 것인가, 죽음은 무엇이며 죽은 후엔 어떻게 되는가... 젊은이들은 특히 그런 질문과 씨름하며 밤을 새우..

동행 2024.12.03

스테파의 영웅들 (2024년 11월 28일)

엠넷플러스 (Mnet Plus)의 남자 무용수 서바이벌 프로그램'스테이지 파이터 (스테파)'가 끝났습니다. 에피소드마다 너무 여러 번  보아서 심사위원들과 무용수들이 말하기 전에 그들의 말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또 재방송을 하면 또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많아도이렇게 아름답고 품격 있는 도전은 본 적이 없으니까요.  한국 무용, 현대 무용, 발레를 전공한 64명의 무용수들을처음 보았을 때는 룸메와 제가 이 프로그램을 이렇게 열렬히좋아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본래 발레를 좋아하는 제가채널을 돌리다가 이 프로그램을 발견했는데, 우연히 옆에서함께 본 룸메가 저보다 더 열렬한 팬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저 친구들을 보니 부끄럽네. 내가 저렇게 치열하게산 적이 있었던가"라..

동행 2024.11.28

마늘 방귀 (2024년 11월 24일)

고흥 바다는 여린 햇살을 사랑했습니다.가을 초입 어느 날 바닷바람과 햇살은향긋한 흙 이불 아래 몸을 섞었습니다. 봄 중간 어느 날 마늘 아기들이 태어났습니다.흙집 주인 정 여사는 매끈 뽀얀 얼굴들을서울 친구에게 보냈습니다. 사랑에서 태어난 아기들이 아는 건 사랑뿐붉게 물든 김치소, 초콜릿 색 장아찌,포도씨유 반짝이는 볶음이 되었습니다. 겨울 초입 거리를 덮은 낙엽을 보며불면에 빠진 서울 친구에게 바닷바람과햇살의 사랑이 떠올랐습니다.  김치와 장아찌와 마늘 볶음을 잔뜩 먹고친구는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뿡 뽀옹 풉 뽕 풉 먼 곳에서 연주하는관악기 소리가 들렸습니다.목관도 금관도 아닌, 사랑만 연주하는토관악기였습니다.

동행 2024.11.24

그와 나의 거리-등대로 (2024년 11월 16일)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의자전적 소설 를 선물 받은 건12년 전입니다.  함께 산 지 여러 십 년이지만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룸메로부터 이 책을 선물 받고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납니다. 표지 안쪽 첫장에 그가 '램지부인을 닮은 당신에게  램지를 닮은 남편이'라고 써 주었기 때문입니다.  램지부인(Mrs. Ramsay)은 매우 아름답고 지혜로운 램지가의 안주인으로서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철학교수 남편을 세상과 이어주며 여덟 명의 자녀를 키우고 램지가를 방문해 한참씩 머무는 손님들을 접대합니다. 아무리 보아도 저는 램지부인을 닮은 데가 없는데, 룸메가 제게 램지부인을닮았다고 한 것은 저를 격려하고 싶어서였을까요?   여러 번 읽기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는데..

오늘의 문장 2024.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