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숙 2471

12월 (2022년 11월 30일)

십이월아 어서 와 빗물 세수 덕에 그나마 말개진 세상 속으로 한 장 달력처럼 가볍게 어쩌면 하얀 망토에 앉아 영하 추위를 몰고 와 십이월아 어서 와 낙엽마다 음각된 사라진 사람들의 이름 가벼워졌으나 무거워진 징그럽게 시끄러운 헌 것들의 새 세상으로 숨죽여 우는 사람들에게로 억지로 웃는 사람들에게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사람들에게로 십이월아 어서 와

나의 이야기 2022.11.30

큰 나무 아래 (2022년 11월 17일)

오는 토요일 아름다운서당의 서재경 이사장 님이 스스로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나십니다. 2005년 그분이 만드신 아름다운서당 (아서당)이 천 명 넘는 졸업생을 배출하는 동안 한국 사회는 무던히도 변했습니다. 사회가 변하니 아서당에 오는 학생들과 자원봉사하는 교수들도 변했습니다. 그래도 서재경 이사장 님의 진심과 성심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분도 저처럼 한국일보사 견습기자 출신으로 서울경제신문에서 근무하셨지만 얼마 되지 않아 기업으로 옮기셨습니다. 신문사 선후배로는 만나지 못했던 분을 자유칼럼그룹에서 만났고, 선배님과 제가 그곳을 떠난 후에는 아서당에서 인연을 이었습니다. 반면교사는 많아도 스승은 적은 세상에서 큰 나무 같은 선배님을 만나 그 그늘 속에 머물 수 있었던 건 크나큰 행운이었습니다. 아서당을 거..

동행 2022.11.17 (2)

우리집은 감나무 집 (2022년 11월 8일)

오랜 친구가 보내준 고창 단감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둘째 수양딸의 어머님이 고흥 단감을 한아름 보내주셨습니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맛은 한결같이 좋아서 사람도 단감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감들 중엔 피부가 연예인들처럼 곱고 반짝이는 감도 있지만, 검버섯과 기미 앉은 제 얼굴처럼 얼룩얼룩하고 군데군데 패이거나 멍든 감도 있습니다. 그래도 단감이라는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감은 없으니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건 사람뿐인가... 부끄럽습니다. 우리집엔 감나무가 없지만 감마다 감나무의 生과 추억이 배어 있으니 우리집은 어느새 감나무 집입니다. 감을 들여다보면 여름 끝 푸른 감 사이를 흔들던 바람과 감의 몸에 알알이 박히던 햇살과 비의 알갱이가 보이는 듯합니다. 문성님, 이순 여사님,..

동행 2022.11.08 (1)

이태원 핼러윈 참사 (2022년 10월 30일)

영국과 미국의 축제인 핼러윈(Halloween)이 한국의 축제가 되었다는 걸 어제 저녁 연희동에 나갔다 온 가족 덕에 알았습니다. "버스에도 길에도 핼러윈 코스튬을 입은 젊은이가 많았어요." 그런데 어젯밤 핼러윈 축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서울 이태원에서 초유의 압사 사고가 발생해 핼러윈을 즐기러 모인 사람 149명이 죽고 수백 명이 다쳤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사망자가 더 늘거라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핼러윈을 즐기던 분들, 핼러윈을 즐기는 풍조를 싫어했던 분들 모두 한마음으로 부상자들의 쾌유를 빌어 주시기 바랍니다. *위키백과: 핼러윈은 "모든 성인의 날 전 날 (All Saints' Eve)을 기념하는 영미권의 전통행사로 공휴일이 아니며 상업적인 성격을 많이 띤다. 이 날에는 죽은 영혼들이 되..

동행 2022.10.30 (1)

송현동... 묻고 싶어도 묻지 않는(2022년 10월 8일)

백여 년 동안 한국인의 발길이 닿을 수 없었던 송현동 너른 땅, 일제와 미제가 사용하던 서울 한복판 만 평 부지가 이제야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신문, 방송, 인터넷이 요란합니다. 우선 '녹지 광장'으로 시민들에게 개방한 후 훗날 부자가 기증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미술관을 세우거나 다른 시설들을 지을 거라 합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6%A1%ED%98%84%EB%8F%99_(%EC%84%9C%EC%9A%B8) 송현동 (서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송현동(松峴洞)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법정동이다. 행정동으로는 삼청동에 포함된다. 송현(松峴)이라는 지명은 조선 시대에 이 곳이 소나무 언덕이었기에 붙 ko.wiki..

나의 이야기 2022.10.08 (1)

빈집 (2022년 9월 26일)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을 '빈집'이라 합니다. 미분양 아파트처럼 처음부터 빈집도 있지만 대개는 누군가 살다 떠난 집입니다. 그러니 누군가의 '옛집'이 어느 날 '빈집'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빈집을 보면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 집을 옛집이라 부를 사람들, 그 마당을 어슬렁거렸을 강아지와 고양이, 그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웠을 나무들, 그 뜰 가득 향기를 채웠을 꽃들... 포털사이트 '다음'이 10월 1일부터 블로그를 없애고 티스토리로 통합한다는 통보를 들어서일까요? 13년 동안 글을 써온 이 블로그를 드나드는데 빈집을 드나드는 느낌입니다. 아래 그림은 일러스트포잇 김수자 씨가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 '詩詩한 그림일기'에 신동옥 시인의 시 '빈집'과 함께 올린 그림입니다. 아래엔 그림..

나의 이야기 2022.09.26 (1)

번역자의 부탁: 최소한의 성실성 (2022년 9월 18일)

직장생활을 하던 때나 프리랜서로 번역을 하는 지금이나. 제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은 '최소한'입니다. 신문사와 통신사에서 일할 때 동료들에게서 기대한 것도 최소한의 성실성이었습니다. 기자로서 기사를 잘 쓰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최소한 육하원칙에 입각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했는가는 밝혀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빠뜨리거나 틀리게 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신문 1판이 나온 후 그런 기사를 발견하면 교정부에 비치된 교정지에 표시를 했습니다. 다른 부 기자들이 교정을 많이 보면 교정부원들의 일이 늘어나니 교정부원들은 싫어했지만, 하는 수 없었습니다. 잘못된 것을 보고 못 본 척하는 것은 근무태만이고 독자들을 무시하는 처사이니까요. 번역을 하는 지금, 대개 다른..

동행 2022.09.18 (1)

<월든>이 하는 말 (2022년 9월 15일)

어느새 9월의 한가운데입니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 사유하기 좋은 시간입니다. 8월 말 송파위례도서관 인문학 열전 수업 덕에 적어두었던 의 문장들 소개합니다. 아래의 문장들은 모두 1장 경제 (Economy)에 나옵니다. 말없음표는 문장의 생략을 뜻합니다. “Age is no better, hardly so well, qualified for an instructor as youth, for it has not profited so much as it has lost.” “나이가 많다는 게 젊음보다 나은 선생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그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나이 먹는 과정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기 때문이다.” “Most of the luxuries, and many of the so ca..

오늘의 문장 2022.09.15

달 보러 망 보러.. (2022년 9월 10일)

부모도 자식도 평생 함께하진 못하지만 해와 달은 우리가 태어나는 날부터 죽는 날까지 우리를 지켜봅니다. 21세기 백년 동안 보름달은 1241번 나타나는데 완전히 둥글어 '망望'을 이루는 날은 대개 음력 16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밤 한반도 위의 달은 지난 백년 간 뜬 달 중에 떠오를 때부터 가장 완벽한 망을 이뤘다고 합니다. 서둘러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보아야겠습니다. '望'은 말 그대로 '바랄 망', 가슴에 바람을 품고 달님을 우러러보아야겠습니다. 우리의 처음과 마지막을 두루 아실 달님, 달님 덕에 태어나는 시와 노래...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소서. 사람은 누구나 달님 같아 남들에게 보여주는 얼굴 아닌 얼굴 있으니 당신 닮은 그들의 노고를 위로해주소서.

동행 2022.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