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863

병원에 대한 본즈 씨의 생각 (2025년 1월 23일)

본즈 씨 (Mr. Bones)는 작년에 별세한미국 소설가 폴 오스터 (Paul Auster)의 중편소설의 주인공입니다.본즈 씨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뿐만 아니라말하지 않는 것까지 읽어내는 총명한 개입니다. 그는 사랑했던 첫 주인 윌리(Willy)를 잃고우여곡절 끝에 새 가정의 일원이 되는데,네 식구 중 세 사람은 다 그를 반기지만남자 주인만은 조건을 충족할 때만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  조건 중 한 가지는 본즈 씨가 병원에 가서 건강한지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즈 씨는 내키지 않지만 하는 수 없이 병원으로 가며 생각합니다. If you were sick enough to die, a doctorwasn't going to save you. And if you weren'tsick, wh..

오늘의 문장 2025.01.23

언젠가 말하리라 (2025년 1월 4일)

몸은 동네에 묶어 두고 입을 닫고 살지만눈은 세상을 봅니다. 1980년대를 2020년대에와서 말하듯, 40년쯤 흐른 후엔 지금을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땐 제 입이 사라지고 없을 테니다른 이의 입이겠지요. 어제 선물받은 책에 눈 가는 글이 있어 옮겨둡니다.원래 제목은 ' 浪吟낭음', 즉 '아무렇게나 읊다'라고 합니다. 이 한시를 쓴 사람은 조선 전기 문신 박수량 ( 朴遂良: 1491-1554)입니다. 인용자에 따라 원문 첫머리 '口耳'가 ' 耳口'로 쓰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말하리라 벙어리에 귀 먹은 지 오래지만 여전히 두 눈만은 그대로이네.어지럽고 어수선한 세상일들은볼 수는 있지만 말할 순 없네.--박동욱, , 빅퀘스천  浪吟口耳聾啞久(구이롱아구)猶餘兩眼存(유여량안존)紛紛世上事(분분세상사)能見不能..

오늘의 문장 2025.01.04

그와 나의 거리-등대로 (2024년 11월 16일)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의자전적 소설 를 선물 받은 건12년 전입니다.  함께 산 지 여러 십 년이지만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룸메로부터 이 책을 선물 받고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납니다. 표지 안쪽 첫장에 그가 '램지부인을 닮은 당신에게  램지를 닮은 남편이'라고 써 주었기 때문입니다.  램지부인(Mrs. Ramsay)은 매우 아름답고 지혜로운 램지가의 안주인으로서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철학교수 남편을 세상과 이어주며 여덟 명의 자녀를 키우고 램지가를 방문해 한참씩 머무는 손님들을 접대합니다. 아무리 보아도 저는 램지부인을 닮은 데가 없는데, 룸메가 제게 램지부인을닮았다고 한 것은 저를 격려하고 싶어서였을까요?   여러 번 읽기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는데..

오늘의 문장 2024.11.16

군인의 짐 (2024년 10월 26일)

1909년 오늘은 안중근 의사 (1879-1910)가 중국하얼빈 역에서 일본의 초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사살한 날이고, 1979년 오늘은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사망한 날입니다. 이 아름다운 가을날이 품고 있는 피의 역사...군인이 등장하면 총이 등장하고 총이 나오면죽음이 잇따른다는 생각을 하니, 러시아에파병되었다는 북한군들, 1960년대 중반부터1970년대 초까지 베트남에 파병됐던 한국군이떠오릅니다.  미국 작가 팀 오브라이언 (Tim O'Brien: 1946~)은매칼리스터 칼리지를 우등으로 졸업했으나 곧바로 징집돼 베트남전에 파병됐습니다. 1970년 제대한 후전쟁을 고발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1978년 발표한소설 로  '베트남전을 다룬 최고의 소설'이라..

오늘의 문장 2024.10.26

<리처드 3세> 2: 슬픔과 명예 (2024년 9월 28일)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는 재미의 으뜸은 주인공이 아닌주변 인물들이 인생의 진실을 얘기하는 데 있습니다.사형 집행인이나 감옥의 간수, 몸종 같은 사람들이지요.아래는 1막에서, 탑 감옥의 간수 브라켄베리가감옥에 갇혀 있는 클라렌스 공작, 즉 조지 왕자와 대화한 후혼자 하는 말입니다. 지난 25일에 올린 글의 인용문처럼, 아래 글도 대충 번역해 옮겨 둡니다. 원작에는 오늘의 인용문이 25일의 인용문보다 먼저 나옵니다.  Sorrow breaks seasons and reposing hours,Makes the night morning and the noontide night.Princes have but their titles for their glories,An outward honour for an inw..

오늘의 문장 2024.09.28

<리처드 3세> 1: 양심은 위험해 (2024년 9월 25일)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의 글을 읽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엔 과 을읽으며 설렘과 스릴을 느꼈고, 나이 들면서는 을 읽으며 분노와 슬픔과 연민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지난달 생일 선물로 받은 (리처드 3세)>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두 번째로 긴 작품입니다. 가장 긴 작품은이지요. 5막으로 구성된 의 1막에 탑에 갇힌왕자를 살해하라는 명을 받고 온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I'll not meddle with it, it is a dangerous thing,it makes a man a coward. A man c..

오늘의 문장 2024.09.25

상실의 기술 (2024년 9월 9일)

삶은 성취의 기록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삶은 상실의 기록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어떤 사람은 만남의 기록이라고 하는 걸다른 사람은 이별의 기록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겠지요.문학은 같은 말을 다르게 하는 데서 출발했을지 모릅니다. 며칠 전 20세기 미국 시인 엘리자베스 비숍 (Elizabeth Bishop: 1911-1979) 의 시 'One Art (한 가지 기술)'를읽다가, 제가 잃은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많은것들을 잃고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그렇게 많은 것들을 잃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가진 것이많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비숍의 말대로 '상실의 기술'을 마스터하는 것은어렵지 않겠지만, 상실이 낳은 기억은 우리와 함께 살다가우리와 함께 사라지겠지요. 아니면 하늘을 나는 연처..

오늘의 문장 2024.09.09

모래 한 알 속의 세계 (2024년 9월 2일)

17세기에서 20세기에 쓰인 시들을 읽다 보면들리는 소리, 떠오르는 모습이 있습니다.그 소리와 모습은 지금 몸담고 있는21세기의 소리와 풍경보다 낯익게 느껴집니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경주마처럼 내닫는 지금...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1757-1827)가 토닥입니다.  9월. . . 가만히 서 있어도, 들여다보아도,올려다보아도 좋은 계절입니다.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And a heaven in a wild flower,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And eternity in an hour. 모래 한 알 속에서 세계를 보고들꽃 한 송이 속에서 천국을 보려면,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순간에 영..

오늘의 문장 2024.09.02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들 4: 말, 말, 말 (2024년 7월 10일)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 있는가 하면, 말이 오히려 뜻을흐리는 경우도 있고, 말에 속아 분노하거나 슬퍼할 때도 있습니다.살기 위해, 혹은 이득을 위해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도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 갈수록 드물어져당연한 '언행일치 (言行一致)'가 지고한 덕이 되었습니다. 윌리엄 포크너의 의중요한 인물 애디 (Addie)가 첫 아이를 낳았던 때를 생각하며아래 인용문과 같은 말을 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겠지요. "When he was born I knew that motherhood was inventedby someone who had to have a word for it because the onesthat had the children didn't care ..

오늘의 문장 2024.07.10

내가 들은 말 (2024년 7월 6일)

그 베이커리 카페에 자주 가는 이유는 제법 맛 좋은커피를 싼 값에 마시며 책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오늘은 제 또래거나 저보다 두어 살 위일남녀들이 목청껏 떠드는 바람에 부끄럽고 괴로웠습니다.어제 고 장영희 교수의 책 에서 발견한척 로퍼 (Chuck Roper)의 시로 귀를 씻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I Listen I listen to the trees, and they say:"Stand tall and yield. Be tolerant and flexible."....I listen to the sky, and it says:"Open up. Let go of the boundaries and barriers. Fly."I listen to the sun, and it says:"Nurt..

오늘의 문장 2024.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