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859

<리처드 3세> 2: 슬픔과 명예 (2024년 9월 28일)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는 재미의 으뜸은 주인공이 아닌주변 인물들이 인생의 진실을 얘기하는 데 있습니다.사형 집행인이나 감옥의 간수, 몸종 같은 사람들이지요.아래는 1막에서, 탑 감옥의 간수 브라켄베리가감옥에 갇혀 있는 클라렌스 공작, 즉 조지 왕자와 대화한 후혼자 하는 말입니다. 지난 25일에 올린 글의 인용문처럼, 아래 글도 대충 번역해 옮겨 둡니다. 원작에는 오늘의 인용문이 25일의 인용문보다 먼저 나옵니다.  Sorrow breaks seasons and reposing hours,Makes the night morning and the noontide night.Princes have but their titles for their glories,An outward honour for an inw..

오늘의 문장 2024.09.28

<리처드 3세> 1: 양심은 위험해 (2024년 9월 25일)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의 글을 읽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엔 과 을읽으며 설렘과 스릴을 느꼈고, 나이 들면서는 을 읽으며 분노와 슬픔과 연민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지난달 생일 선물로 받은 (리처드 3세)>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두 번째로 긴 작품입니다. 가장 긴 작품은이지요. 5막으로 구성된 의 1막에 탑에 갇힌왕자를 살해하라는 명을 받고 온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I'll not meddle with it, it is a dangerous thing,it makes a man a coward. A man c..

오늘의 문장 2024.09.25

상실의 기술 (2024년 9월 9일)

삶은 성취의 기록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삶은 상실의 기록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어떤 사람은 만남의 기록이라고 하는 걸다른 사람은 이별의 기록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겠지요.문학은 같은 말을 다르게 하는 데서 출발했을지 모릅니다. 며칠 전 20세기 미국 시인 엘리자베스 비숍 (Elizabeth Bishop: 1911-1979) 의 시 'One Art (한 가지 기술)'를읽다가, 제가 잃은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많은것들을 잃고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그렇게 많은 것들을 잃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가진 것이많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비숍의 말대로 '상실의 기술'을 마스터하는 것은어렵지 않겠지만, 상실이 낳은 기억은 우리와 함께 살다가우리와 함께 사라지겠지요. 아니면 하늘을 나는 연처..

오늘의 문장 2024.09.09

모래 한 알 속의 세계 (2024년 9월 2일)

17세기에서 20세기에 쓰인 시들을 읽다 보면들리는 소리, 떠오르는 모습이 있습니다.그 소리와 모습은 지금 몸담고 있는21세기의 소리와 풍경보다 낯익게 느껴집니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경주마처럼 내닫는 지금...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1757-1827)가 토닥입니다.  9월. . . 가만히 서 있어도, 들여다보아도,올려다보아도 좋은 계절입니다.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And a heaven in a wild flower,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And eternity in an hour. 모래 한 알 속에서 세계를 보고들꽃 한 송이 속에서 천국을 보려면,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순간에 영..

오늘의 문장 2024.09.02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들 4: 말, 말, 말 (2024년 7월 10일)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 있는가 하면, 말이 오히려 뜻을흐리는 경우도 있고, 말에 속아 분노하거나 슬퍼할 때도 있습니다.살기 위해, 혹은 이득을 위해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도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 갈수록 드물어져당연한 '언행일치 (言行一致)'가 지고한 덕이 되었습니다. 윌리엄 포크너의 의중요한 인물 애디 (Addie)가 첫 아이를 낳았던 때를 생각하며아래 인용문과 같은 말을 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겠지요. "When he was born I knew that motherhood was inventedby someone who had to have a word for it because the onesthat had the children didn't care ..

오늘의 문장 2024.07.10

내가 들은 말 (2024년 7월 6일)

그 베이커리 카페에 자주 가는 이유는 제법 맛 좋은커피를 싼 값에 마시며 책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오늘은 제 또래거나 저보다 두어 살 위일남녀들이 목청껏 떠드는 바람에 부끄럽고 괴로웠습니다.어제 고 장영희 교수의 책 에서 발견한척 로퍼 (Chuck Roper)의 시로 귀를 씻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I Listen I listen to the trees, and they say:"Stand tall and yield. Be tolerant and flexible."....I listen to the sky, and it says:"Open up. Let go of the boundaries and barriers. Fly."I listen to the sun, and it says:"Nurt..

오늘의 문장 2024.07.06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들 3: 하늘나라 (2024년 7월 3일)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들으면서운하겠지만, 이렇게 왜곡된 세상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건 바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움 없이 죽기 위해 가능한 한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지요. 죽음은순간의 일인데 그 순간의 평화를 위해 평생 정직, 근면하게살아야 한다니, 이 또한 삶의 아이러니이겠지요. 윌리엄 포크너 (William Faulkner)도 그런 생각을 했던것 같습니다. 에이런 문장이 있으니까요. 하늘나라에 가면 보상을받을 거라는 생각... 지금 우리나라 곳곳에도 이런믿음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Nowhere in this sinful world can a honest, hard-workingman profit. ..

오늘의 문장 2024.07.03

어제 읽은 시: 실 하나를 따라가는 일 (2024년 6월 30일)

유월의 끝에서 유월의 처음을 돌아봅니다.여전하게, 저의 길을 걸어온 한 달이었습니다. 어머니 이승 떠나시고 백일이 지나니 그때서야활자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읽는 이유는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글의 큰 효용 중 하나는 위로일 겁니다. 여러 문장에서, 특히 시에서위로를 받았습니다. 어제 읽은 시는 고 장영희 교수 (1952-2009)의 책 에 수록된 윌리엄 스태포드 (William Stafford:1914-1993)의 'The Way It Is (삶이란 어떤 거냐하면)'이었습니다. 은 장 교수가 고르고 번역한 시들을 영한 대역으로 출판한 시집입니다.  "There's thread you follow. It goes among things that change. But it doesn't change.Pe..

오늘의 문장 2024.06.30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들 2 (2024년 6월 26일)

윌리엄 포크너가 유명해지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그의 소설 때문이지만, 그의 소설 (As I Lay Dying)>를 읽다 보면 이 사람은 시인이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와 소설은 길이와 표현만 다른 것이 아닙니다.태생 자체가 다릅니다. 시가 태어나려면 먼저 시인이있어야 합니다. 시인은 누구나 보고 느끼는 것을 다른 눈으로보고 느끼는 사람이고, 그가 그 느낌을 글로 적은 것이 시가 되니까요.  소설의 경우엔 이야기가 소설가에 선행합니다.그러니 시인은 태어날 뿐 만들어질 수 없지만, 소설가는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을 읽다가 포크너가 시인임을 깨닫는 건문장에서 배어나오는 '다른' 시각, 즉 감수성 때문입니다. 포크너의 간략한 전기를 찾아봅니다. 그러면 그렇지! 그의 문학 창작은 소설보다 시가 먼저였습니다...

오늘의 문장 2024.06.26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들1 (2024년 6월 23일)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책꽂이 앞에 서서 다음에읽을 책을 고릅니다. 첫 문단 혹은 첫 쪽을 읽다 보면 저절로 결정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을 것인가, 책꽂이에 꽂을 것인가. '시절 인연'이란 불교적 용어는 책과 저의경우에도 적용됩니다. 두어 쪽  읽고 포기하기를 여러 번 했던 책이 어느 날 맛있는 커피처럼저를 붙잡으니까요. 우울할 때 꺼내 읽으며 소리 내어 웃는, 요즘 읽는  윌리엄 포크너 (William Faulkner: 1897-1962)의 죽어갈 때 (As I Lay Dying)>가 그런 책입니다.아래처럼 더위를 잊게 해주는 문장들 덕택입니다. "I can remember how when I was young I believed death to be a phenomenon of the body; n..

오늘의 문장 2024.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