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874

눈 속의 나그네 (2025년 12월 6일)

지난 4일 저녁 소담하게 내린 첫눈을 보고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의 시 '눈 속의 나그네(Wanderer im Schnee: Wanderer in the Snow)'를 읽었습니다. 오래전에 잠깐 배웠던 독일어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 영어 번역본을 찾아 읽고, 그것을 우리말로 대충 번역해 아래에 적었습니다. 독일어에선 모든 명사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쓴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습니다. '나그네'를 뜻하는 독일어와 영어 단어가 모두 Wanderer라는 게 신기합니다. 두 언어의 뿌리가 같아서 그렇겠지요? 눈 속의 나그네 골짜기의 시계가 자정을 알립니다. 헐벗은 달은 추위에 떨며 하늘을 헤맵니다. 나는 달빛 아래 눈 속으로 홀로내 그림자와 함께 걸어갑니다. 봄의 푸르름 속..

오늘의 문장 2025.12.06

사랑의 그림자 (2025년 10월 1일)

애도할 일은 많지만 애도하기엔 너무 바쁜 한국인들...즐거움은 가볍게 하고 슬픔은 깊어지게 하는데, 이 나라엔즐거움을 찾는 사람들뿐입니다. 얼마나 외면하고 싶은 게많으면 저럴까 이해를 하면서도, 즐거움이 수반하는 가벼움이 절망을 일으킬 때가 잦아집니다. 그래서 시월의 첫날, 슬픈 시를 읽습니다. 늘 슬픈 시를 쓰는 시인의 시가 아니고, 못 마땅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신랄하게 보여주는 찰스 부코스키 (Charles Bukowski: 1920-1994)의 시입니다. 그는 미국 사회의 민낯을 폭로하는 시와 소설로 '미국 하류 인생의 계관 시인'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아래의 시는 그가 죽은 첫사랑 제인 쿠니 베이커를 애도하며쓴 시입니다. 원문 전체에, 첫 연을 번역해 곁들입니다. 제인에게 225일이나 풀밭 ..

오늘의 문장 2025.10.01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2 (2025년 9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랑을 받던보수 청년 정치인 찰리 커크(Charlie Kirk)가 대학에서 열린 행사 도중 저격범의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현지 시각 10일 낮 12시 10분에 일어난 일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말훌륭한' 커크를 위해 기도하자며, 14일 저녁6시까지 조기를 게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1993년 생으로 32번 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사망한 커크는 2012년에 ‘터닝 포인트 유에스에이(Turning Point USA: TPUSA)'라는 우익 정치 단체를 설립하고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TPUSA'는 미국 850여 개 대학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커크는 이번에 15개 대학 캠퍼스에서‘미국이 돌아왔다’ 행사를 열 계획이었으나 첫 방문지인 유타주 유타밸리대학..

오늘의 문장 2025.09.12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1(2025년 9월 5일)

냉방하는 공간에 머물러서인지 창문을열어 놓고 잤기 때문인지 감기에 걸렸습니다.열이 오르내려 창조적인 일을 하기 어려우니책을 읽습니다. . 원제는 Gravity, and Getting Old>입니다. 프랑스의 사상가이며 정치행동가인 시몬 베유(1909-1943)의 책 이 떠오릅니다.젊은 시절에 인식하지 못했던 '중력'과 '은총'을나이 들어가며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한국어 번역판은 원제를 이루는 단어들 중에서 'Getting Old'에 주목했나 봅니다. 가장자리에서>라는 제목 왼쪽에 '나이듦에 관한일곱 가지 프리즘'이라 쓰여 있으니까요. 책을 읽다가 잘못된 글씨를 발견하면 그 책이읽기 싫어집니다. 이 책의 경우도 23쪽에서잘못된 글씨를 보자 읽기가 싫어졌습니다.그러나 제가 경애해 마지않는 ..

오늘의 문장 2025.09.05

그저 사랑한다는 것은 (2025년 7월 13일)

아파트 꼭대기에 턱을 괴고 앉은 달을 보았습니다. 지쳐 보였습니다. 해의 독재에 지친 것일까요? 사랑하다 지친 것일 수도 있겠지요. 높이 솟은 건물들 사이 엄거주춤한 달을보았습니다. 저 달의 자세는 겸손일까요 비굴일까요,솟는 것 많은 지상에서 가만히 있어도 낮아지는우리 같은 것일까요? 늘 보는 얼굴과 늘 들리는 목소리 아닌 얼굴과목소리를 보고 듣고 싶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1900-1944)의 을펼쳤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 공군으로 참전, 1944년 아홉 번째 정찰 비행에 나섰다가 영영 사라져 버린 비행사-소설가 생텍쥐페리... 88쪽에서 만났습니다. 산상에 돌기둥을 남긴 잉카의 지도자가 종족의 소멸에대해 느꼈을 동정심, 생텍쥐페리가 세계대전 중인 인류를 보며 느꼈을 동정심, 그런 동정심이 지금..

오늘의 문장 2025.07.13

여름 노래 (2025년 6월 28일)

여름은 독재자의 시간입니다. 물론 그 독재자는 태양입니다. 태양은 곡식과 과일을 영글게 하고 식물을 자라게 하는 한편 동물들을 괴롭히고 사람이 동물임을 일깨웁니다. 겨울과 봄, 태양을 반기던 사람들은 태양이 뜨지 않는 시간, 소나기와천둥 번개를 반기기도 합니다. 태양의 계절인 여름에 가장 쉽게 잊히는 것은 달입니다. 가끔 더위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나 달을 발견합니다. 시민이지만 시민과 다른 시인은 대개 잊히는 것들에게 눈을 줍니다. 달리기 시합에서 모두가 1등에게 환호할 때 2등의 애석함과 꼴등의 부끄러움을 보는 게 시인이지요. 미국의 의사이자 시인이었던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William Carlos Williams: 1883-1963)도 그런 시인 중 하나입니다. 그의 '여름 노래 (..

오늘의 문장 2025.06.28

누가 지구를 위해 말할 것인가 (2025년 6월 4일)

의미 없는 소음이 지상의 삶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느낄 때는 책꽂이에서 칼 세이건 (Carl Sagan: 1934-1996)의 (코스모스)>를 꺼내어 아무 페이지나펼칩니다. 오늘 펼친 페이지는 338쪽입니다.'우리가 지구를 위해 말하지 않는다면누가 말하겠는가?' 라는 문장이 눈에들어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내일이 '세계 환경의 날 (World Environment Day)이네요. 든 무슨 책이든 지구와 기후에 대한 생각을 격려하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환경운동에 관한 책을 읽어도 좋고, 신간 처럼 보다 근본적인 얘기를 하는 책을 읽어도 좋겠지요. '우리가 지구를 위해 말하지 않는다면 누가말하겠는가?' ... 지구뿐일까요? 누군가에 대해 혹은 무엇인가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이 '우리'라면,..

오늘의 문장 2025.06.04

6월의 기억 (2025년 6월 1일)

6월의 첫날, 클로드 맥케이 (1890-1948)의 시 '유월의 기억 (A Memory of June)'을 읽다가눈이 젖었습니다. 눈을 씻어준 눈물이 영혼도씻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처럼 사람을 맑히우는것도 없을 겁니다. 30도 가까이 솟은 바깥 기온은더위를 주지만, 기억 속 사랑의 온기는 오히려가슴을 서늘하게 합니다. 6월이 우리 가슴 속죽었던, 혹은 잠자던 순수를 깨워주면 좋겠습니다. 클로드 맥케이는 자메이카 출신의 미국 작가로소설과 시로써 '할렘 르네상스 (Harlem Renaissance)'를 이끌었습니다. 할렘 르네상스는 1920년대와 1930년대미국 뉴욕 맨해튼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흑인 문화부흥운동입니다. 문학은 물론 학문, 음악, 미술, 패션과 사진 등 문화예술의 전 영..

오늘의 문장 2025.06.01

우리가 물이 되어 (2025년 3월 28일)

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보며 집으로 오는 길, 연기 가득할 남녘을 생각합니다.소나기가 쏟아져 저 산불을 다 꺼주면 얼마나좋을까...  비 바라는 마음이 강은교 시인의 시집을찾게 합니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우리가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스물여덟 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마, 아직도그칠 줄 모르는 화마, 그 불의 시작이 모두혹은 거의 실화라니 기가막힙니다.  어리석은 나의 동행들이여, 부디 정신 차리시라!아직 물이 되지 못하는 우리, 불만은 놓지 마시라!  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흐르고 흘러서 저물..

오늘의 문장 2025.03.28

봄의 사냥개들이 (2025년 3월 3일)

정오를 넘기자 바람의 한기가 짙어집니다.거리로 나가니 '봄의 사냥개들'이 분주히 움직입니다. 겨울은 워낙 단단하니 겨울을 몰아내려면 센 바람과 사냥개가 필요합니다. 봄이 오는 길목이늘 어수선한 이유입니다. 집에 돌아와 앨저넌 찰스 스윈번 (Algernon CharlesSwinburne: 1837-1909)의 시를 펼칩니다. '봄의 사냥개들이 (When the Hounds of Spring)'의첫줄입니다.  'When the hounds of spring are on winter's traces'(봄의 사냥개들이 겨울을 뒤쫓을 때). 골목마다 팔딱이는 겨울의 꼬리가 보입니다."겨울아, 네 덕에 겸손을 배웠다. 우리가 길어지는 낮 덕에 겸손을 잊거든다시 오너라! "

오늘의 문장 2025.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