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3274

노년일기 285: 그때 그 사람들 (2026년 6월 12일)

어젠 서울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했습니다. 3호선과 2호선, 수인-분당선을 갈아타고 서부에서 중부를 거쳐 남동부에 있는서울숲에 갔습니다. 잘 하지 않는 긴 여행에 나선 건 숲 때문이었습니다. 숲을 매우 좋아하는 저는 우리말과 영어로 쓴 숲에 관한 시들로 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낸 적도 있습니다. 숲이라는 이름 때문에 가보고 싶어했던 서울숲에 옛 직장 동료들이 간다는 말을 듣고 함께 간 것입니다. 일행은 저를 포함해 여덟 명. 일곱 명은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어딘가를 함께 가는데, 그 모임의 이름을 지은 저는 발족 초기에만 참여하고 거의 나가지 않았습니다. 서울숲역 4번 출구 앞에서 일행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높은 건물들이 많아서인지 바람이 거세다 할 정도로 불었습니다. 일행은 전에도 그곳에서 만난 적이..

동행 2026.06.12

꽃들의 학교 (2026년 6월 9일)

늘 다니던 길인데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입니다.꽃들입니다. 제 손바닥만한 얼굴도 있고 손톱보다 작은얼굴도 있는데, 하나같이 어여쁩니다. 언제 이렇게 피어나사람이 잘못 그린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걸까요? 인도의 시성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도 비슷한물음을 물었던 것 같습니다. 이 시는 그의 동시집 에실려 있는데, 벵갈어로 쓴 후 스스로 영어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13세에 어머니를 여읜 타고르는 평생 어머니를 그리며 어머니로상징되는 여성적 보살핌을 염원했다고 합니다. 아래에 그가 영역한 시 일부를 우리말로 번역해 영역본 전체와 함께 적어둡니다. 꽃들의 학교 하늘의 먹구름이 우르릉거리며 유월의 소나기가 내리면축축한 동풍이 황야로 진군하며 대나무들 사이에서 백파이프를 불어요, 그러면무리진..

오늘의 문장 2026.06.09

야간 비행 (2026년 6월 5일)

앙트완 드 생 텍쥐페리의 과 를 읽어 보면그는 31세에 이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았고, 43세에는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44세였던 1944년 7월 31일 정찰 비행에 나섰다가 실종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가지고 다니던 을 어제 다 읽고 나니 한국의공직자들이 이 책을 읽었다면 이 사회가 이렇게 흘러가지 않을 텐데하는 생각이 듭니다. 월급을 모아 성형수술하는 군인들 때문에 하지 않는동료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일이나, 대통령이 투표 용지를 남에게 보여 주고 투표소에 투표 용지가 부족해 투표를 못하는 일 같은 전대미문의 사태도 없었을 겁니다. 그들이 우편 항공망 전체의 책임자인 리비에르의 말과 생각을 읽었다면. 이원희 씨의 번역으로 소담출판사가 펴낸 은 으로유명한..

오늘의 문장 2026.06.05

투표라는 게임 (2026년 6월 2일)

오늘처럼 투표하는 날이면,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의 말이 떠오릅니다.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책 의 작가인 소로우는 1849년에 발표한 에세이 )에서 '모든 투표는 보드게임이나 주사위 놀음 같은 게임의 일종'이라며, 투표보다 중요한 건'양심'이라고 했습니다. 투표는 몇 년에 한 번씩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피력하는 것이지만, 양심은 삶을 구성하는 정치, 도덕 등 모든 요소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매일 드러내는 것이니 그랬을 겁니다. 소로우가 살던 시대 미국엔 노예제가 있었고, 멕시코와 영토 전쟁을벌였습니다. 두 가지 모두 강력히 반대했던 소로우는 투표하지않았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양심보다 투표에 '진심'인 사람이 많은 것 같고,투표는 내 편과 내 편 아닌..

동행 2026.06.02

연등 아래서 (2026년 5월 31일)

부처님 오신 날도 여느 날처럼 보냈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사람들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의 지혜와 용기를 염원하는기도로 하루를 시작해, 무사히 보낸 하루에 감사하며 잠자리에들었습니다. 며칠 후 뒷산을 오르다 기슭에 앉은 백련사에 들렀습니다. 이쪽저쪽 높이가 다른 마당 위, 같은 높이의 허공에 연등이 빼곡하고 연등마다 이름 붙은 꼬리가 펄럭였습니다. 연등 지붕 아래 서 있으니 연등에 담긴 기도와 그 기도를 낳은 사랑이 눈을 젖게 했습니다. 백련사의 연등들은 언젠가 보았던 조계사의 연등들보다 덜화려해 보였습니다. 조계사 연등들은 주로 원색이었던 것 같은데, 백련사 연등중엔 하얀 등이 꽤 많았습니다. 하긴 백련사라는 이름에 흰 연꽃이 들어가 있으니 흰 연등이 있는 게 당연하겠지요. 어디선가 '나무아미타불'..

나의 이야기 2026.05.31

'장기 백수' 젊은이들 (2026년 5월 28일)

비 그친 아침이 아름다워 집을 나섭니다. 비 맞은 뒷산의 향기가온몸을 감싸 주니 행복하고도 미안합니다. 이런 느낌을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건 아닐 테니까요.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면 천변입니다. 푸른 잎들은 반짝이고 꽃이무리지어 핀 곳엔 나비들이 춤을 춥니다. 늙은 사람은 걷고 젊은 사람은 뛰어 가는 길, 제 걸음도 가볍습니다. 그런데, 건너편에서 젊은이 하나가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옵니다. 풍경에 걸맞지 않게 어두운 얼굴. 검은 옷을 입어 더 어두워 보이는 걸까요? 문득 엊그제 본 기사가 생각납니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실업자 중에서 구직기간이 6개월 이상인 사람의 비중이 12.7퍼센트로 2004년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구직 기간이 6개월 이상이면 장기 실업..

동행 2026.05.28

고마운 이웃 (2026년 5월 25일)

산자락 동네라는 것만 알고 이사 왔는데, 짐 풀고 보니뒷산에 백련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가는 비 오는 날산책길에 들른 백련사(白蓮寺)는 '흰 연꽃 절'이라는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웠습니다. 어쩌다 들러도 절 공기와 아름다운 연꽃은 변함없이친절하고, 절 아래 사하촌은 언제나 고요하여 절집의도반 같습니다. 이 절과 이 마을이 저희 동네 사람들을늘 다독다독, 제정신을 유지하게 도와 주니 참으로고마운 이웃입니다. 서기 747년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백련사... 오래된것이 다 훌륭한 것은 아니고 노인이 다 현명한 것은아니지만, 백련사는 담담하게 오래된 존재의 힘과 아름다움을 증언합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불교 각 종단이 내놓은 봉축메시지 중에서도 백련사가 속한 태고종 종정 운경 스님의메시지가 마음에 다가와, 스님..

동행 2026.05.25

어린 왕자 2 (2026년 5월 23일)

엊그제 TV에서 돌싱과 모솔들의 짝짓기 프로그램재방송을 보다가 패널 중 한 사람의 말에 기분이 나빴습니다. 처음 만난 여성을 잘 못 대하는 남자를 '어린 왕자'라고 했기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그 어설픈 사랑꾼을 격려하느라 그런표현을 썼겠지만, 저는 생텍쥐페리의 를 읽고있었으니 그 표현에 발끈한 거지요. 속 어린 왕자는 몸집만 작을 뿐 인생에서 정말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현인이지만, '연애기숙학교돌싱N모솔'의 '모태 솔로' 남자들은 거의 물정을 모릅니다. 그들이 사람과 세상을 공부할 때 도 꼭 읽길 바랍니다. 지난 5월 17일에 의 구절들을 소개했듯, 오늘도몇 구절 소개합니다. 원문을 대충 번역하고 괄호 안에 제코멘트를 덧붙입니다. p. 54His flower had told him she was ..

오늘의 문장 2026.05.23

어설프게 아는 것 (2026년 5월 20일)

스타벅스가 광주민주화운동 46주년에 내놓은 '탱크데이' 이벤트가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벅스코리아를 운영하는신세계그룹의 정용진 회장이 당일 저녁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경질했지만, 물의는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스타벅스는 ‘컬러풀 탱크 텀블러 세트’와 ‘탱크 듀오 세트’라는 이름의텀블러 세트를 홍보하며, '책상에 탁!'과 ‘5·18 탱크데이’라는 표현을썼습니다. 상식적인 한국인들에게 '책상에 탁'은 전두환 정권 말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당하다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 씨의 죽음을 상징하고, '5·18 탱크'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진주했던 계엄군의 장갑차를 뜻합니다. 그 두 표현은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했다'는 비판을 촉발시켰고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한민국 공동체와 기본적..

동행 2026.05.20

어린 왕자 1 (2026년 5월 17일)

앙트완 드 생텍쥐페리( Antoine Marie-Roger de Saint-Exupéry:1900-1944)의 를 읽다 보면 슬픔과 웃음이 동시에일어나기도 하고 이어달리기를 하기도 합니다. 어른은 어리고 어린 아이들은 작은 어른이 되어버린 오늘의 한국.별을 여행하던 가 이곳에 왔다면, 다른 별에서처럼"어른들은 이상해, 정말 이상해"라고 하는 대신 "사람들은 이상해,정말 이상해"라며 얼른 떠나갈 겁니다. 제겐 1943년에 나온 영문판 가 있지만 하드커버를 싸고 있는 겉표지가 자꾸 갈라지고 부서지는 바람에 갖고 다니면서읽을 수가 없는데, 그 말을 들은 친구가 2000년 판 페이퍼백을 사 주었습니다. 친구 덕에 카페에 앉아 를만날 수 있으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어제 만난 문장 몇 개를 대충 번역해..

오늘의 문장 2026.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