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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일기 268: 어리석은 부모들의 시대 (2025년 10월 15일)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의 어머니에게서 놀라운얘기를 들었습니다. 체육시간에 아이들이 운동장에나가 뛰는 대신 교실에서 '오목'을 두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둑돌을 갖고 노는 오목이 '체육'이 될 수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으니, 어떤 아이의 어머니가 교감에게 전화해서 자기 아이가 햇볕에 약하니 체육을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는 그늘에 있게 하고, 다른 아이들은 햇살을 쬐며 '체육'이 뜻하는 대로 '신체 활동에의한 건강의 유지와 증진, 체력 향상을 도모' 하면 될 텐데,왜 다른 아이들까지 체육을 하지 못하게 한 걸까요? 그 어머니가 그렇게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할 때, 왜 교감은 그 요구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대신 체육을 오목으로 바꾸게..

동행 20:18:14

멘토 말고 씨동무 (2025년 10월 13일)

"김흥숙 씨가 000씨 멘토라면서요?""제가 요?" 어리둥절한 제게 선배의 말이이어졌습니다."김흥숙 씨가 멘토인데, 000씨는 왜 그 모양이래요?""네?" 멘토가 무엇인지, 제가 000씨의 멘토인지생각 중이던 저는 애매하게 답하고 말았습니다. '멘토(mentor)'의 사전적 정의는 '지지하고 조언하며이끌어 주는 사람'인데, 저는 00씨의 얘기를 듣고그의 편이 되거나 몇 마디 한 적은 있지만, '이끌어' 준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 너는 00씨의 멘토가 아니라는 거냐? 그럼 네게00씨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저는 아마도 '제가마음을 쓰는, 소수의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말할 겁니다. '마음을 쓴다는 게 무어냐'고 물으면, 그 사람이 힘들어 하면 제 마음이 슬프고 그이가 즐거워하면 제 마음이..

동행 2025.10.13

노년일기 267: 메모의 이유 (2025년 10월 10일)

머리와 몸 속에 구름이 떠다니고 파도가 밀려왔다 갔다 합니다. 남의 손 같은 제 손이 책상 위에 쌓인종이쪽 하나를 집어듭니다. 지난 4월 7일 월요일의메모입니다. "잘 작동하지 않는 몸이 조팝나무 흰 꽃이 보이는창을 바라본다. 단어들이 흩어진 꽃처럼 널려있지만, 그 단어들은 문장을 만들지 못한다. 피로는 그림자일 뿐 친구는 아니다. 친구라면 가끔떠나줄 테니까. 길에는 무수한 햇빛 알갱이가 쏟아져 있지만내 몸의 바람 구멍들에 맞는 알갱이는 하나도 없다.당연히 길은 여전히 밝고 구멍들 속엔 어둠뿐이다." 오늘은 비가 오지만 그날은 햇살이 가득했을 뿐,그날도 오늘처럼 머리 속에 구름과 파도가 일렁였나 봅니다. 그 출렁 머리를 들고 메모하길 참 잘했습니다. 메모는 언제나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힘을 주니까..

카테고리 없음 2025.10.10

조용필 '오빠' (2025년 10월 7일)

KBS2 한국방송이 올해 들어 가장 잘한 일은 조용필 씨의무대를 준비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젯밤 '이 순간을영원히' 콘서트를 보며 참 오랜만에 한국방송에 감사했습니다.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아나운서와 지긋지긋한'예능'과 연예인들,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의 얼굴을 보는 대신 수십 년 간 자신의 길을 닦아 온 아티스트를 보며 그의 음악을들으니 참 행복했습니다. 화면 속 조용필 씨. 노래는 전과 같은데 사람은 더 겸손해져보였습니다. 75세에도 '노래를 좀 더 잘할 수 있을까' 하고매일 노래 연습을 한다는 '가왕'은 한 음 한 음 정성을 다해 완벽을 기했습니다. 조용필이라는 크고 깊은 거울에 저를 비추어 보니 자연스럽게제가 그처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자발적으로 또는..

동행 2025.10.07

추석 도라지 (2025년 10월 4일)

추석에 쓸 도라지의 껍질을 벗기다 보니껍질을 벗겨서 파는 하얀 도라지가 왜 비싼지알 것 같습니다. 작은 옹이 박힌 도라지의살이 다치지 않게 얇은 껍질을 벗기는 게 영 쉽지 않습니다. 마침내 하얘진 도라지와, 얼마 전에 쓰고 남은 중국산 도라지를 함께 씻어 소금물에 담급니다. 국산 도라지보다 훨씬 싼 중국산 도라지도누군가가 껍질을 벗겨내어 하얀 몸이되었을 겁니다. 힘든 일이지만 도라지 껍질벗기는 일에 고임금을 줄 리는 없으니 젊은남성 노동자 대신 저처럼 나이 든 중국 여성들이벗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도에서 온 파를 다듬으며 진도 흙 냄새를맡고 진도 농부의 손을 생각하듯, 도라지 껍질을벗기며 도라지를 키운 땅과 여인들의 손을 생각합니다. 국산 도라지나 중국 도라지나 도라지는 도라지이고 땅은 땅, 손은 ..

동행 2025.10.04

사랑의 그림자 (2025년 10월 1일)

애도할 일은 많지만 애도하기엔 너무 바쁜 한국인들...즐거움은 가볍게 하고 슬픔은 깊어지게 하는데, 이 나라엔즐거움을 찾는 사람들뿐입니다. 얼마나 외면하고 싶은 게많으면 저럴까 이해를 하면서도, 즐거움이 수반하는 가벼움이 절망을 일으킬 때가 잦아집니다. 그래서 시월의 첫날, 슬픈 시를 읽습니다. 늘 슬픈 시를 쓰는 시인의 시가 아니고, 못 마땅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신랄하게 보여주는 찰스 부코스키 (Charles Bukowski: 1920-1994)의 시입니다. 그는 미국 사회의 민낯을 폭로하는 시와 소설로 '미국 하류 인생의 계관 시인'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아래의 시는 그가 죽은 첫사랑 제인 쿠니 베이커를 애도하며쓴 시입니다. 원문 전체에, 첫 연을 번역해 곁들입니다. 제인에게 225일이나 풀밭 ..

오늘의 문장 2025.10.01

노년일기 266: 행복한 하루(2025년 9월 29일)

비 오는 어제 아침 쌈배추 겉절이를 만들었습니다. 통배추는 너무 비싸 살 엄두가 안 나고 쌈배추도 비쌌지만 좀 시들어 싸게 파는 것을 샀습니다. 시든 배추도 다듬어 물에 담가 두면 대개 살아납니다. 사람은 늙어 시들면 다시 젊어지지 못하는데, 배추가 사람보다 낫구나 생각하니 잠시 우울했습니다. 겉절이를 조그만 통에 덜어 담아 가방에 넣어 메고 바바리코트를 입고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서울 밖에 사는 둘째 수양딸이 오고 있었습니다. 갈아탈 버스를 기다리며 전화를 걸어 옷을 단단히 입고 나오라고 말하기에 가방에 카디건 두 개를 넣었습니다. 자신이 한기를 느껴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지요. 무슨 색 옷을 입고 올지 모르니 대비되는 색으로 하나씩 넣어 어울리는 색을 입게해야지, 생각했습니다..

동행 2025.09.29

40대의 자살 (2025년 9월 26일)

십 대부터 30대까지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를 차지했던 자살이 작년에는 40대의 사망 원인 1위도 차지했다고 합니다. 40대면 몸과 정신이 두루 왕성할 나이, 인생이뭔지도 좀 알고, 관계가 주는 위로와 성취의 달콤함도 맛 볼 나이인데 무엇이 그들을 자발적 죽음으로 모는 걸까요? 10대부터 40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자살하는 이유는 그들이 50대 이후 사람들에 비해 뭔가를 덜 가졌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뭔가를 너무 많이 가져서일까요? 일반적으로 40대 이하 사람들이 나이 많은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이 가진 것은 '꿈'이고, 덜 가진 것은 '돈'일 겁니다. 그들을 죽게 하는 것은 꿈일까요, 돈일까요, 돈이 없어서 꿈도 못 꾸는 어떤 것일까요? 도대체 이 나라는 누구를 위한 나라일까요? 무거운 마음으로 머..

동행 2025.09.26

의사가 되려면 (2025년 9월 23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두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집 가까운 츄러스 카페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막 학교에서 나온 듯한 고등학생들이 수능과대학, 앞날에 대해 얘기하는 말이 들립니다. 누군가가 지금 성적으로 의대는 꿈도 못 꾼다고 하면 '나도 그래'가 이어지고, 그러다 보면 누군가가'근데 꼭 의대에 가야 돼?' 하고, 그러면 또 다른 목소리가 '엄마가 좋아하잖아!' 합니다. 그리곤 입을 모아 '피부과 의사 하면서 엄마 피부 관리해주면ㅈㄴ 좋아하겠지' 하고 크게 냉소합니다. 엊그제도 그런 얘기를 듣는데 한 학생이 "근데 AI 시대에 대학을 꼭 가야 하는 거야? AI 전문가 되면 대학에서 배우는 거보다 많이 알 수 있잖아?" 하자누군가가 "AI 전문가 되려면 대학 가야 되잖아' 했고 그러자 다른 목소리가 "야, ..

동행 2025.09.23

9월 깊은 밤 (2025년 9월 20일)

9월 20일이 되어서야 9월 시를 읽습니다.사라 티즈데일 (Sara Teasdale: 1884-1933)의'9월 깊은 밤 ('September Midnight)'입니다. 미국 미주리 주의 세인트루이스 부유한 집에서태어난 티즈데일은 사랑과 아름다움, 죽음을주제로 한 서정시들을 써서 이름을 얻었으나59세에 뉴욕에서 자살했습니다. 티즈데일은 1918년에 제 1회 콜럼비아 시 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이 상은 나중에 퓰리처 상 시 부문 상이 되었습니다. 아래에 시 원문 전체와 제가 번역한 일부를 옮겨둡니다. *인디언 서머 (Indian Summer)는 가을에 일시적으로따뜻한 여름 날씨가 찾아오는 기간을 뜻합니다. 9월 깊은 밤 인디언 서머가 머무는 서정적인 밤어두운 들엔 향기 없이 노래 소리만 가득하네새는 없고..

동행 2025.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