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그와 나의 거리-등대로 (2024년 11월 16일)

divicom 2024. 11. 16. 11:49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의

자전적 소설 <등대로(To the Lighthouse)>를 선물 받은 건

12년 전입니다.

 

함께 산 지 여러 십 년이지만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룸메로부터 이 책을 선물 받고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납니다. 표지 안쪽 첫장에 그가 '램지부인을 닮은 당신에게 

램지를 닮은 남편이'라고 써 주었기 때문입니다. 

 

램지부인(Mrs. Ramsay)은 매우 아름답고 지혜로운

램지가의 안주인으로서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철학교수

남편을 세상과 이어주며 여덟 명의 자녀를 키우고 램지가를

방문해 한참씩 머무는 손님들을 접대합니다. 아무리 보아도

저는 램지부인을 닮은 데가 없는데, 룸메가 제게 램지부인을

닮았다고 한 것은 저를 격려하고 싶어서였을까요?  

 

여러 번 읽기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는데, 이번엔 아주

잘 읽혔습니다.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답게

관찰자 시각으로 쓰인 담담한 문체인데도 가끔 눈이

젖었습니다.

 

3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마지막 장에 램지가에 머무는 

화가 릴리 브리스코가 '거리(distance)'에 대해 하는 말이

나옵니다. 그 말이 공감을 일으켜 아래에 대충 번역해 옮겨둡니다. 

 

'거리'는 크고 아름다운 새를 평범한 검은 점으로 보이게도

하고, 잡동사니 모음을 멋진 풍경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스마트기기 덕에 사람과 사람의 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듯 보이는 시대, 그 거리가 진짜 거리일까요?

 

P. 142

So much depends then, thought Lily Briscoe, looking

at the sea which had scarcely a stain on it, which was

so soft that the sails and the clouds seemed set in its 

blue, so much depends, she thought, upon distance;

whether people are near us or far from us; for her

feeling for Mr Ramsay changed as he sailed farther

and farther across the bay. 

 

너무도 많은 것들이 거리에 좌우돼, 릴리 브리스코는

한 점 얼룩 없는 바다를 보며 생각했다. 바다는 너무도

부드러워 오가는 배들의 돛들과 구름들까지 푸른

품에 안고 있는 듯했다. 너무도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가까운가 먼가, 그 거리에 따라 달라져, 그녀는

생각했다. 램지씨의 배가 멀어지며 그에 대한 그녀의

감정도 변화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