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659

노년일기 144: 나이테 (2022년 11월 25일)

낙엽 몰려다니는 길을 걷다 보면 문득 고개 들어 저 높이 나무의 정수리께를 보게 됩니다. 높아지느라, 속으로 영그느라 이렇게 버리는구나... 인생의 겨울에 들어선 사람들은 대개 자라기를 멈추지만, 나무는 겨울에도 자라기를 멈추지 않는구나... 20년 넘는 억울한 옥살이, 그 겨울 같은 시절에도 자신을 키우신 신영복 선생. 선생의 에서 같은 마음을 발견했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1984년 12월 28일 대전교도소에서 쓰신 글에 '나이테'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2016년 1월 15일 저세상으로 떠나신 선생님, 지금은 어디에서 '자라고' 계신지요?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사실입니다...

동행 2022.11.25 (3)

큰 나무 아래 (2022년 11월 17일)

오는 토요일 아름다운서당의 서재경 이사장 님이 스스로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나십니다. 2005년 그분이 만드신 아름다운서당 (아서당)이 천 명 넘는 졸업생을 배출하는 동안 한국 사회는 무던히도 변했습니다. 사회가 변하니 아서당에 오는 학생들과 자원봉사하는 교수들도 변했습니다. 그래도 서재경 이사장 님의 진심과 성심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분도 저처럼 한국일보사 견습기자 출신으로 서울경제신문에서 근무하셨지만 얼마 되지 않아 기업으로 옮기셨습니다. 신문사 선후배로는 만나지 못했던 분을 자유칼럼그룹에서 만났고, 선배님과 제가 그곳을 떠난 후에는 아서당에서 인연을 이었습니다. 반면교사는 많아도 스승은 적은 세상에서 큰 나무 같은 선배님을 만나 그 그늘 속에 머물 수 있었던 건 크나큰 행운이었습니다. 아서당을 거..

동행 2022.11.17 (2)

우리집은 감나무 집 (2022년 11월 8일)

오랜 친구가 보내준 고창 단감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둘째 수양딸의 어머님이 고흥 단감을 한아름 보내주셨습니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맛은 한결같이 좋아서 사람도 단감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감들 중엔 피부가 연예인들처럼 곱고 반짝이는 감도 있지만, 검버섯과 기미 앉은 제 얼굴처럼 얼룩얼룩하고 군데군데 패이거나 멍든 감도 있습니다. 그래도 단감이라는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감은 없으니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건 사람뿐인가... 부끄럽습니다. 우리집엔 감나무가 없지만 감마다 감나무의 生과 추억이 배어 있으니 우리집은 어느새 감나무 집입니다. 감을 들여다보면 여름 끝 푸른 감 사이를 흔들던 바람과 감의 몸에 알알이 박히던 햇살과 비의 알갱이가 보이는 듯합니다. 문성님, 이순 여사님,..

동행 2022.11.08 (1)

이태원 핼러윈 참사 (2022년 10월 30일)

영국과 미국의 축제인 핼러윈(Halloween)이 한국의 축제가 되었다는 걸 어제 저녁 연희동에 나갔다 온 가족 덕에 알았습니다. "버스에도 길에도 핼러윈 코스튬을 입은 젊은이가 많았어요." 그런데 어젯밤 핼러윈 축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서울 이태원에서 초유의 압사 사고가 발생해 핼러윈을 즐기러 모인 사람 149명이 죽고 수백 명이 다쳤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사망자가 더 늘거라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핼러윈을 즐기던 분들, 핼러윈을 즐기는 풍조를 싫어했던 분들 모두 한마음으로 부상자들의 쾌유를 빌어 주시기 바랍니다. *위키백과: 핼러윈은 "모든 성인의 날 전 날 (All Saints' Eve)을 기념하는 영미권의 전통행사로 공휴일이 아니며 상업적인 성격을 많이 띤다. 이 날에는 죽은 영혼들이 되..

동행 2022.10.30 (1)

노년일기 135: 제일 좋은 친구 (2022년 10월 4일)

'좋은 친구'는 누구일까요? 내게 좋은 것을 주는 친구? 얘기 상대가 되어주는 사람?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를 때 돈을 빌려주는 사람? 그러면 '제일 좋은 친구'는 누구일까요? 제 생각에 그는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존재입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죽고 싶을 때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매게 하는. '당신의 제일 좋은 친구가 누구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대개 이름이나 호칭을 댑니다. 아버지, 어머니, 영희, 철수 등 등. 하지만 제게 제일 좋은 친구는 늘 죽음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죽고 싶을 땐 언제나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언제든 죽을 수 있으니 지금 죽지는 말자, 이보다 더 힘들 때 죽자' 하고 생각한 적이 많았습니다. 죽음을 시도했다가 운명 덕에 살아남은 후에도 죽음은 변함없이 힘든 상황을 견디게 ..

동행 2022.10.04 (2)

'다음'과 '개악'(2022년 9월 29일)

제가 편협해서 그런 걸까요? 우리 사회에서 변화는 대개 '개악 (改惡)'입니다. 2009년 9월부터 글을 연재해온 포털사이트 '다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다음' 블로그의 변화는 늘 개악이었습니다. 내일 오전부터 다음 블로그가 티스토리로 통합되어 사라진다니, 이 글이 제가 다음 블로그에 쓰는 마지막 글이 되겠지요. 이번 변화만큼은 개악이 아니길, 그래서 13년 전 다음과 인연을 맺은 것을 후회하지 않게 되길 빕니다. 제 블로그를 방문하는 분들은 하던 대로 하시면 된다고 합니다. 김흥숙 블로그를 방문하면 저절로 티스토리의 김흥숙에게 연결된다는 것이지요. 부디 '다음'이 말하는 대로 실행되기를, 저를 찾는 분들에게 불편이 없기를 바랍니다. 안개 자욱한 9월 29일 아침입니다. 세상도 앞날도 안개 속이지만..

동행 2022.09.29 (2)

번역자의 부탁: 최소한의 성실성 (2022년 9월 18일)

직장생활을 하던 때나 프리랜서로 번역을 하는 지금이나. 제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은 '최소한'입니다. 신문사와 통신사에서 일할 때 동료들에게서 기대한 것도 최소한의 성실성이었습니다. 기자로서 기사를 잘 쓰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최소한 육하원칙에 입각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했는가는 밝혀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빠뜨리거나 틀리게 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신문 1판이 나온 후 그런 기사를 발견하면 교정부에 비치된 교정지에 표시를 했습니다. 다른 부 기자들이 교정을 많이 보면 교정부원들의 일이 늘어나니 교정부원들은 싫어했지만, 하는 수 없었습니다. 잘못된 것을 보고 못 본 척하는 것은 근무태만이고 독자들을 무시하는 처사이니까요. 번역을 하는 지금, 대개 다른..

동행 2022.09.18 (1)

달 보러 망 보러.. (2022년 9월 10일)

부모도 자식도 평생 함께하진 못하지만 해와 달은 우리가 태어나는 날부터 죽는 날까지 우리를 지켜봅니다. 21세기 백년 동안 보름달은 1241번 나타나는데 완전히 둥글어 '망望'을 이루는 날은 대개 음력 16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밤 한반도 위의 달은 지난 백년 간 뜬 달 중에 떠오를 때부터 가장 완벽한 망을 이뤘다고 합니다. 서둘러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보아야겠습니다. '望'은 말 그대로 '바랄 망', 가슴에 바람을 품고 달님을 우러러보아야겠습니다. 우리의 처음과 마지막을 두루 아실 달님, 달님 덕에 태어나는 시와 노래...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소서. 사람은 누구나 달님 같아 남들에게 보여주는 얼굴 아닌 얼굴 있으니 당신 닮은 그들의 노고를 위로해주소서.

동행 2022.09.10

고추 선물, 배보다 큰 배꼽 (2022년 9월 8일)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배나 배꼽을 본 적은 없고 그 속담이 은유하는 상황도 별로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어제까지는! 어제 오랜만에 동생과 점심을 먹고 시골의 공동체에서 가꾼 푸성귀와 곡식을 파는 가게에 들렀습니다. 투명 비닐봉지에 든 초록잎들이 눈길을 끌기에 물어보니 고춧잎이었습니다. 베란다에서 시들고 있는 고춧잎이 떠올라 3천 원을 주고 한 봉을 샀습니다. 집에 도착해 봉지를 여니 고춧잎과 고추가 달린 고춧대가 엉켜 있었습니다. 고추를 따로 따서 팔았으면 돈을 더 많이 받았을 텐데 손이 부족해 일일이 따지 못하고 고춧대째 잘라 판 것 같았습니다. 고춧잎과 고추를 따서 분리했습니다. 빨갛게 익은 고추, 몸이 새우처럼 휜 고추, 긴 고추 등 온갖 형태의 고추들을 줄기에서 ..

동행 2022.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