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793

사고 권하는 정전 (2025년 1월 18일)

이른 아침 눈을 뜨니 저를 에워싼 정적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머리맡의  다지털 라디오는검은 얼굴뿐 시간을 알려 주던 녹색 숫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거실로 나가니 거실이 산속 절집보다 조용합니다.절집엔 새소리라도 들리지만 동네 새들은 아직수면 중인가 봅니다. 충전 중이던 전화기와작은 청소기, TV와 연결된 셋톱박스 등에서 늘보이던 작은 불빛이 전혀 보이지 않고, 냉장고기계음도 들리지 않습니다. 빛이 사라지면 소리도 사라지나 봅니다.  우리 집 차단기가 내려갔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베란다로 나가니 불 켜진 창문이 하나도 없고동네 전체가 낯선 정적에 휩싸여 있습니다.우리집 차단기가 내려간 게 아니고 동네 전체가정전된 게 확실합니다. 한국전력 상담 전화(국번 없이 123)로 신고하니이미 신고 전화를 여러 통 받았..

동행 2025.01.18

SK텔레콤 홍기정 님께 (2025년 1월 14일)

홍기정 님,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 불쑥 편지를 보내어놀라시지 않을지... 우려를 안고 몇 자 적습니다.  SK텔레콤이 오래 쓰던 2G폰 사용을 강제 종료시킨 후그 회사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홍기정 님과 통화한 후 마음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기정 님은 그 회사의 수많은 직원 중 한 분이어서회사 자체와는 다르다고 할 수도 있지만, 기정 님 같은 분이 머물고 있는 회사라면 제가 모르는 장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제가 근 일년 동안 누려온 혜택이 종료되니 문의하라는 SK텔레콤의 문자를 받고 전화기의 114를 누를 때만 해도 기정 님 같은 분을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상담원들 중엔 기계적 말투를 사용하고, 질문을 하면 질문에서 빗나간 답을 기계적으로 반..

동행 2025.01.14

노년일기 245: 제사의 효용 (2025년 1월 11일)

1월은 언제나 9일을 기준으로 나뉩니다.9일 이전에는 외출을 삼가며 건강을 지키려 애쓰고9일 이후 며칠은 할 일을 미뤄두고 쉬며 지냅니다.9일이 무슨 날이냐고요? 9일은 제삿날입니다. 룸메의 부모님과 일년에 한 번 만나는 날입니다.아버님은 제가 뵙기 전에 돌아가셔서 모습과 인품을들은 얘기로만 짐작하지만, 어머님은 저와 함께 사신 적이 있어 더욱 그립습니다.  인간이 2,30대에 70대의 1년쯤을 미리 경험해 볼 수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노년의 부모를  이해하는 자식이 훨씬 많아질 거고, 저도 어머님과 함께하던 시간 동안 어머님의 몸과 마음 상태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젊은이가 노년을 미리 경험할 수는 없으니젊은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노인을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행 2025.01.11

노년일기 244: 인생을 다시 산다면 (2025년 1월 8일)

새해 초엔 늘 시를 읽게 됩니다.시로써 머릿속을 씻고 정리하고 새 마음으로 새해 살이를 시작하는 것이지요. 단골 카페에서 류시화 씨가 엮은 시집을보다가 낯익은 시를 발견했습니다.제 졸저 에 인용했던'인생을 다시 산다면'이었습니다. 그 시는 오랫동안 나딘 스테어 (Nadine Stair)의시로 알려져 왔는데, 사실은 나딘 스트레인(Nadine Strain)이 쓴 에세이에 나온 것입니다.저는 에 그 사실을 적고, 그 글이 1978년 미국의 여성 잡지 (Family Circle)>에 실리는 과정에서 작가 이름이 잘못 기재되었다는 것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에는 그 시가 여전히 나딘 스테어의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제가 본  그때도 알았더라면>에도 나딘 스테어의 시로 적혀 있었습니다. 그 책은 수십 쇄..

동행 2025.01.08

노년일기 243: 화는 천천히 (2025년 1월 6일)

늙는다는 건 한마디로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겁니다.에너지가 줄어드니 많은 일을 하거나 신경 쓸 수가없습니다.  늘 하던 일만 하면 그런대로 지낼 만하지만,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해야 하거나 그런 일에 신경을써야 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여 날카로운상태가 됩니다. 그럴 때 누군가 옆에서 그 일에 대해말하면 곱게 반응하기 어렵습니다. 금세 격앙되어화를 내기 일쑤입니다. 이 나라가 초고령국가가 되며 화내는 노인이 많아지는 건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그러나 화내는 건 가난한 사람이돈 쓰듯 해야 합니다. 화낸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고화를 내고 나면, 감정에 휘둘려 돈 쓴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돈을 쓴 가난뱅이처럼 반드시 후회하게 되니까요. 새해 목표를 화내지 않는 것으로 정한 분들에게린다 엘리스(Lind..

동행 2025.01.06

새해 첫 노래: 지상의 영광은.. (2025년 1월 2일)

무지개 빛 희망으로 시작했던 2024년,회색으로 어두워지더니 검붉은 연기 속에막을 내렸습니다.  새해는 시작되었지만 지상에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은산 자들의 몫... 새로운 것 속에서 불멸의암시를 찾는 건 영혼을 잃지 않은 자들만이할 수 있는 일...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1770-1850)의 '어린 시절 회상 속 불멸의 암시(Ode: Intimations of Immortality from Recollections of Early Childhood)'를읽습니다. 2The Rainbow comes and goes,and lovely is the Rose,The Moon doth with delightLook round her when the ..

동행 2025.01.02

새해 소원 (2024년 12월 31일)

어젯밤에도 잠들기 어려웠습니다.'계엄'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모르고 계엄을 시행한 대통령 때문에 놀란 가슴이 밤이 와도 잠을 자려 하지 않아 힘든 날들을 보냈습니다.  밤에는 악몽과 싸우고 낮이면 애써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탄핵의 도미노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무안국제공항에서 179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제 새해 소원은 이런 식의 놀라운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기상이변은 이미 놀랍지 않은 일이 되었으니 놀랄 일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계엄도 무안공항 사고도 다 사람들이 일으킨 일입니다.  철새 도래지와 가까워 건설이 불허되었던 무안에공항을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경향신문(30일자) 보도를 보면, 항공기 이착륙시 조류 충돌 위험성이 커서 저감 방안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근거해 ..

동행 2024.12.31

겨울 까치집 (2024년 12월 29일)

2008년 12월 28일에 게재된 제 글을 만났습니다. 자그만치 16년 전. 자유칼럼의 '김흥숙 동행'과 희망제작소 웹사이트의 '김흥숙의 낮은 목소리'에  실린 글입니다. 글 아래에 머리 검은 제 사진과 소개가 있습니다.저서가 2권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지금은 7권이니지난 16년 동안 저의 소출은 5권의 책과 흰머리뿐...부끄럽습니다. 한겨울에 부암동 길가 가로수에 지어진 까치집을 보고 썼던 글...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더 나은 사람이되겠다고 결심하는 어린아이입니다. 김흥숙의 낮은 목소리 겨울 까치집나쁜 일 많은 한 해가 지나갑니다. 아주 떠나간 친구들, 병마에 잡혀 고생하는 친구들, 힘겨워지는 살림살이에 지쳐가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거리를 떠돕니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에게 화가 납니다. 쌩쌩 ..

동행 2024.12.29

우는 남자들 (2024년 12월 28일)

웃을 때보다 울 때 더 아름다운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그런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하는 건 웃는 모습이 우는 모습보다 보기 좋기 때문에생긴 말이겠지요.  그러다 보니 웃는 건 남들 앞에서 해도 되지만 우는 건 되도록 개인적 공간에서 하는 관습이 생겼고, 누군가의 앞에서 마음껏 울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그 사람을 신뢰한다는의미가 되었습니다.  성인이 공공장소에서 울어도 질시를 받지 않고 공감이나 동정을 일으키는 경우는 나라나 가족을 잃었을 때, 가족 같은 존재를 잃었을 때,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스승이나 친구를 잃었을 때처럼 매우 제한된 경우일  겁니다.  그런데 요즘 '나는 솔로'에는 우는 얼굴이 꽤 흔합니다. 남자도 울고 여자도 우는데, 그들의 눈물이 얼마나 공감을일으키는지는 모..

동행 2024.12.28

크리스마스 케이크 (2024년 12월 24일)

오늘, 내일, 아니 매일, 케이크를 한 조각 더 먹을까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쉘 실버스틴 (Shel Silverstein)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명쾌한 답을 내놓습니다. 게다가 시(詩)의 형태로! 아래의 시는 '파이'에 대한 고민을 다루지만, 케이크에대한 고민의 해결책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대충 번역해 옮겨둡니다. 즐겁고 맛있는 크리스마스 보내세요!즐겁고 맛있는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없는 사람들도 많지만...  Pie Problem If I eat one more piece of pie, I'll die!If I can't have one more piece of pie, I'll die!So since it's all decided I must die,I might a..

동행 2024.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