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668

시, 그리고 '시시한 그림일기' (2023년 2월 3일)

이름 있는 병에 잡혀 3년 간 투병하느라 애쓴 제 아우 일러스트 포잇 (Illust-poet) 김수자 씨가 다시 현업에 복귀했습니다. (원래 남에게 제 아우를 얘기할 때는 '씨'라는 존칭을 붙이지 않는 게 옳지만 그도 이제 회갑이 지나 '씨'를 붙였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오랜만에 그의 블로그 '시시(詩詩)한 그림일기'에 새 그림이 걸렸습니다. 투병하는 동안 '나의 아픔은 별것 아니라는 주문으로 엄살 부리지 않으려 애썼다.'는 그의 토로를 읽으니 머리가 다 빠지고 키가 줄어들 만큼 고통을 겪으면서도 의연했던 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자랑스러운 아우, 존경스러운 사람, 김수자 씨의 건강과 활약을 축원하며 그의 새 작품을 아래에 옮겨둡니다. 이르사 데일리워드(Yrsa Daley-Ward)의 시 아래 글은..

동행 2023.02.03 (3)

소설가란... (2023년 1월 27일)

책을 읽는 사람은 계속 줄고 있지만 글을 쓰는 사람도 줄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 중에 소설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있는 건, 책을 읽는 사람이 아무리 줄어도 글을 쓰는 사람은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 중엔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1994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121쪽: "이처럼 소설가란 가슴이 두근거리는 자신의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이다. 그리고 일단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어떤 식으로든 뻔뻔스러워져서 끝까지 계속 이야기를 하고야 마는 인간인 것이다." -

동행 2023.01.27 (3)

피아니스트 임윤찬 (2023년 1월 24일)

오랫동안 인터넷의 폐해를 견뎌온 보상을 오늘 받았습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런던 위그모어홀 콘서트. 아래 링크에서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JeGcWZ-K5Q&ab_channel=WigmoreHall '그는 천재다, 그와 동시대에 살게 되어 영광이다...' 그를 칭송하는 무수한 댓글들을 읽는데 문득 떠오르는 한 생각: 2004년 3월 20일에 태어났다지만 그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라는.

동행 2023.01.24 (1)

톨스토이의 누나 (2023년 1월 12일)

며칠 전 카페에서 법정 스님의 을 읽다가 홀로 웃었습니다. 스님이 165쪽에 인용해 두신 의 구절들 때문인데, 이 책은 러시아의 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딸인 알렉산드라 톨스토이가 썼다고 합니다. 아래에 저를 웃긴 문장들을 옮기다 보니 고기 반찬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는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우리 고모는 먹는 것을 좋아하는 식도락가였는데 어느 날 야채 일색의 식탁을 대하고서는 크게 화를 냈다. 자기는 이런 허섭쓰레기 같은 것은 못 먹겠으니 고기와 닭을 달라고 했다. 다음 번에 식사를 하러 온 고모는 자기 의자에 매여 있는 살아 있는 닭과 접시에 놓인 부엌칼을 보고 '이게 뭐야' 라고 놀라서 물었다. '누님이 닭을 달라고 했잖아' 하고 아버지가 대답했다. '우린 아무도 그걸 죽일 생각이 없거든. 그래서 누님..

동행 2023.01.12 (1)

그녀를 기리며 (2022년 12월 28일)

꽤 오래 직장생활을 했지만 일하다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습니다. 월급은 적고 집도 없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보다는 제가 한 일의 결과가 성에 차지 않아 어두운 얼굴일 때가 많았습니다. 더 나은 결과를 거두기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이 나라에선 젊은 시절 제 고민 같은 것은 '사치'가 되고 일터에서 죽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생활을 위해 일하는 곳이 '생활 전선'이라고는 하지만 그 전선에서 사망자가 속출하다니... 세계 10위 권에 드는 경제력을 가진 국가는 이런 것일까요? 일터에서 죽은 사람들의 명단은 길고 길지만 지난 시월 SPC 계열사에서 숨진 스물셋 젊은이가 유독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그녀의 죽음이 2주 후에 일어난 이태원 참사로..

동행 2022.12.28 (1)

일본 가는 한국인들 (2022년 12월 22일)

지난 달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일본이 밉다고 일본제 볼펜을 발로 밟고 유니클로를 사면 매국노라 욕하던 한국인들은 아니겠지요? 최근 일본정부는 평화헌법을 포기하고 국방 예산을 대폭 늘릴 계획을 발표해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우리 국회와 대통령실과 외교부가 이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부 국수주의자들은 일본의 '몰락'을 얘기한다고 합니다. 장담하건데 일본은 몰락하지 않습니다. 아니, 몰락할 수 없습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한국은 사라져도 일본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한국이 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 큼을 보여주는 현상이 많듯 일본이 몰락할 가능성이 적음을 보여주는 현상도 많습니다. 일본의 대표적 월간지 '문예춘추 文藝春秋'가 내년 ..

동행 2022.12.22 (2)

성냥팔이 소녀 (2022년 12월 20일)

이 나라가 천민 자본주의의 대로를 질주하는 동안 소위 '우리 것'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그중 가장 엉망이 된 건 우리말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방송국 아나운서들까지 엉터리 우리말을 합니다. 그런 것을 지적하는 사람은 '꼰대질'하는 사람이나 '속좁은' 사람으로 비난받습니다. 그러니 제가 우리말을 사랑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우리말에 대해 배우고 우리말로 쓴 글을 읽는 것입니다. 그러다 오랜만에 '성냥팔이 소녀'를 만났습니다. 담배 한 개비 물고 불붙이고 싶은 아침입니다. 우리말 산책 성냥팔이 소녀를 죽게 한 어른들의 무관심 엄민용 기자 요즘처럼 추운 날이면 생각나는 동화 하나가 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지은 ‘성냥팔이 소녀’다.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죽어간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

동행 2022.12.20 (1)

행정안전부의 문자 (2022년 12월 16일)

본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지만 요즘 들어 밤늦게까지 봐야 할 것이 있다거나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자정 넘어 잠자리에 드는 날이 많았습니다. 출근하는 사람도 아니니 이튿날엔 7시나 8시에 일어나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행정안전부가 자꾸 잠을 깨웠습니다. 천재지변이 난 것도 아니고 큰 사건이 터진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요? 엊그제 수요일엔 아침 6시 1분에 문자가 왔습니다. 전화기를 거실의 충전기에 꽂아 놓고 방에서 잠을 자도 귀가 예민한 저는 문자 도착 소리를 들었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니나 따로 사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닐까, 걱정을 안고 문자를 보니 이랬습니다: "기온이 떨어져 매우 춥습니다. 외출시 보온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길이 미끄러우니 낙상 사고를 조심하시고 출근시 ..

동행 2022.12.16 (1)

노년일기 146: 아이와 노인 (2022년 12월 6일)

이 나라엔 태어나는 아이가 적어 큰일이라는데 태어난 아이는 외롭게 살거나 시달리거나 방치되거나 학대받곤 합니다. 노인들이 오래 살게 된 이유는 젊은이들이 세상을 진보시킬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서라는데 이 나라의 노인들은 먹고 사느라 혹은 여생을 즐기느라 바쁘고 젊은이들 중엔 노인들을 백안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쁜 젊은이들이 낳은 아이들을 노인들이 돌보며 어울리면 아이들은 덜 외롭고 노인들은 기쁨과 보람을 느낄 텐데... 이 나라는 이래저래 낭비 많은 나라입니다. 아래의 시를 보면 제가 좋아하는 셸 실버스틴도 그런 생각을 했나 봅니다. The Little Boy and the Old Man Said the little boy, "Sometimes I drop my spoon." Said the lit..

동행 2022.12.06 (1)

노년일기 144: 나이테 (2022년 11월 25일)

낙엽 몰려다니는 길을 걷다 보면 문득 고개 들어 저 높이 나무의 정수리께를 보게 됩니다. 높아지느라, 속으로 영그느라 이렇게 버리는구나... 인생의 겨울에 들어선 사람들은 대개 자라기를 멈추지만, 나무는 겨울에도 자라기를 멈추지 않는구나... 20년 넘는 억울한 옥살이, 그 겨울 같은 시절에도 자신을 키우신 신영복 선생. 선생의 에서 같은 마음을 발견했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1984년 12월 28일 대전교도소에서 쓰신 글에 '나이테'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2016년 1월 15일 저세상으로 떠나신 선생님, 지금은 어디에서 '자라고' 계신지요?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사실입니다...

동행 2022.11.2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