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830

비, 비, 물, 물 (2025년 6월 16일)

반가운 비, 부지런하기도 하지!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밤새 세상을 씻어준 고마운 물. 물만큼 무서운 것도 없지만 물처럼 아름다운 것도 없을 겁니다. 무심히 집어든 에서 이태준도 노래합니다. '조선의 모파상'으로 불렸던 이태준. 그의 글을 읽으며 여러 번 결심했으나 아직 이루지 못한, 꿈 같은 목표를 상기합니다. '물 같은 사람이 되자!' "흙 속에서 스며나와 흙 위에 흐르는 물. 그러나 흙물이 아니요 정한 유리그릇에 담긴 듯 진공 같은 물, 그런 물이 풀잎을 스치며 조각돌에 잔물결을 일으키며 푸른 하늘 아래에 즐겁게 노래하며 흘러가고 있다. 물은 아름답다. 흐르는 모양, 흐르는 소리도 아름답거니와 생각하면 이의 맑은 덕, 남의 더러움을 씻어 줄지언정, 남을 더럽힐 줄 모르는 어진 덕이 거기 있..

동행 2025.06.16

대기만성과 비육지탄 (2025년 6월 10일)

고등학교에 다닐 때 저희 반에는 ㅅ이라는 학생이있었습니다. 얼굴이 하얀 그 아인 늘 빳빳하게 풀 먹인흰 칼라를 단 새것 같은 교복을 입고 학교에 왔습니다. 머리 또한 바로 어제 미용실을 다녀온 사람처럼 단정하니,한 번도 다린 적 없는 교복을 입고 대충 빗은 머리로 학교에 가던 저와는 참 달랐습니다. 워낙 멋에 무심했던 탓인지, 책 재미에 흠뻑 빠져 있을 때라 그랬는지 ㅅ을 부러워하진 않았는데, 어느 날 문득 그 아일 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는 지금이 네 인생의 정점이지만, 내 인생의 정점은 한참 후에 오겠구나.' 2학년 때 같은 반을 한 후 지금까지 ㅅ을 다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으니, 그 애 인생의 정점이 그때였는지 훗날 더 빛나는 시기가 왔는지 확인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한 가지 분명..

동행 2025.06.10

노년일기 257: 나의 꿈은 전문가 (2025년 6월 7일)

지난달 독일 유명 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 주자로활동하는 지인이 한국에 왔을 때였습니다.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 동네 제 단골 카페로커피를 마시러 갔습니다. 조금 늦게 가서인지 카페에 손님이 없었습니다.커피를 마시고 맛을 칭찬하고 난 음악가는 생후 9개월된 아들 루드비히를 안고 카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루드비히?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 떠올랐습니다. 조금 있다 아기가 엄마에게 가겠다며 보채자 아이를아내에게 안겨준 후 그가 카페 주인에게 영어로 물었습니다. "여기 이 악기 만져봐도 되나요?"카페 주인이 그러라며 오래 쓰지 않아 쓸 수 없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 카페의 단골이 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 악기가 그 자리를 벗어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참 동안 악기를 만지작거리던..

동행 2025.06.07

파란 하늘 큰 나무 아래 (2025년 5월 26일)

이 블로그를 찾아 주신 어떤 분 덕에 오래 전에 썼던 글을 만났습니다. 제가 룸메이트를 갖게 된 사연을 적은 글입니다. 오래 전에 가 본 여행지를 다시 찾은 기분이 들어 여기 옮겨둡니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그런 기분을 느끼시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원래 제 아우인 일러스트포잇 김수자 씨와 제가 오래 전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한 평 반의 평화'에 "파란 하늘 큰 나무 아래'라는 제목으로 게재했던 것입니다. 이 블로그의 '오마이뉴스' 폴더에도 수록돼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김수자 씨의 그림입니다. 김수자 씨는 제 아우이지만 그도 환갑이 넘은 나이라 이름에 '씨'를 붙였으니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파란 하늘과 평상만 하던 큰 나무 그늘 ⓒ 김수자 그때도 나무들이 서둘러 몸을 키우고 있었으니 꼭 ..

동행 2025.05.26

싱가포르가 부러워 (2025년 5월 23일)

나라 안팎이 그 어느 때보다 뒤숭숭한 요즘친구 덕에 혼돈 속 길을 보여 주는 연설문을읽었습니다. 지난 4월 16일 로렌스 웡 (LawrenceWong) 싱가포르 총리가 S. 라자라트남 강연에서발표한 것입니다. 이 강연은 지난 2006년 별세한 존경받는 정치가이며 언론인이고 외교관인 S. 라자라트남을 기념해 매년실시됩니다. 싱가포르는 1965년에 독립해 올해 독립 60주년을 맞습니다. 웡 총리는 이 강연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질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싱가포르를 포함하는 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로시작하여, 미국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후 세계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과같은 상황에서 우리, 자원이 없는 작은 아시아 국가와 국민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

동행 2025.05.23

대통령 후보들의 관상 (2025년 5월 17일)

기호 1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2번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4번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5번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 6번 구주와 자유통일당 후보, 7번 황교안 무소속 후보, 8번 송진호 무소속 후보. 산책길에 나붙은 21대 대통령 선거 후보 벽보를 보면'마흔이 넘으면 누구나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의 말이 떠오릅니다. 정말이지 얼굴처럼 노골적인 성적표는 없을 겁니다. 교활한 사기꾼 관상이 두엇 있는가 하면, 죽어도양심 따라 살 '꼴통'도 있고, 타고난 운이 좋아 벽보에낀 듯한 얼굴도 있습니다. 좋은 사람처럼 보이도록,혹은 대통령감으로 보이도록 '뽀샵'을 했겠지요.3번이 없는 이유는 원내 3당인 조국혁신당이 후보를내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저도 한때는 관상 잘 ..

동행 2025.05.17

칸 국제영화제와 한국 영화 (2025년 5월 14일)

현지 시각 13일 프랑스 칸에서 국제 영화제가 개막했습니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영화제입니다. 그러나 한국 영화는 3년 연속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칸에서 상영하는 한국 영화는 정유미 감독의 애니메이션 '안경'과 허가영 감독의 단편 '첫여름'뿐입니다. 한국 영화가 이렇게 지지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비평가들 중에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중심으로영화산업 구조가 바뀌어서라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그와 같은 변화는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가장 근본적 이유는 '돈'입니다.하고 싶은 말을 시네마라는 종합예술을 통해서 하고 싶은 사람들은 사라지고 '천만 관객'을 염두에 둔 사람들이 영화판을 점령했기 때문..

동행 2025.05.14

내 사랑은 하얀 재스민 (2025년 5월 11일)

화분에선 보라빛 재스민 꽃이 하얗게 바래 시들고뒷산엔 아카시아가 피었습니다. 옥상의 뽕나무엔 작은 새의 부리 같은 초록잎이 돋고, 울 안의 장미와 울 밖의 장미들 모두 꽃을 피우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기후 변화가 재앙이라 해도 욕심 많은 사람들이 일으키는풍파만 할까요? 기후 위기 속에서도 꽃들은 제 할 일을 하지만, 사람들은 '기후 위기'라는 제목만 붙여두고 앞서산 사람들이 하던 어리석은 게임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능력은 미천하나 양심적인 삶을 지향하는 소시민의 위로는 사람보다는 꽃에서 옵니다. 가수로서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 (Bob Dylan)이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밝힌 시, 스코틀랜드 국민 시인 로버트 번즈 ( Robert Burns: 1759-1796) 의 '붉고 붉..

동행 2025.05.11

'헛똑똑이'들의 나라 (2025년 5월 8일)

이 나라처럼 성적 좋은 아이들을 편애하는 나라는 없을 겁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할 일을 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하지않으며 예의를 몰라도 성적만 좋으면 문제되지 않습니다. 부모와 형제는 물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웬만큼 못 되게 굴어도 성적이 좋으면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형편 없는 인간성의 소유자도 소위 명문대 출신이면 비난과 벌을 면하거나 덜 받고사소한 성취에도 큰 칭찬을 받는 일이 흔합니다. '합력하여 선善을 이룬다'는 말이 있지만, 이 나라의 성적 우선주의는 '합력하여 악惡'을 이룹니다. '헛똑똑이' 부모들이 '헛똑똑이' 자식을 기르고, 그들이 자라 사회 지도층으로 행세하니 나라 또한 '헛똑똑이' 나라가 되어 동네북이 되기 일쑤입니다. 이 불행한 추세를 막을 수 있을까요..

동행 2025.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