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746

김민기, 하늘 봉우리 (2024년 7월 24일)

오빠 또래였는데 스승이었습니다.대학 시절 대강당 채플시간에 연사로 온김민기 씨는 살아있는 신화였습니다.'아침이슬'을 부르는 몸 보이지 않는 곳에유신정권의 고문 흔적이 가득하다고친구들은 눈물을 떨궜습니다. 고문 흉터 없는 제 몸이 부끄러웠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변했습니다. 유신 반대 데모를 하던 사람들은 4.19 혁명을했던 사람들처럼 젊은 시절의 투쟁을자랑하며 술잔을 기율였습니다. 전두환 독재정부와 싸우던 386세대는뻔뻔한 정치가가 되거나 골프장 고객이되었습니다. 변하지 않은 사람은 오직 한 사람김민기 씨였는데 그가 지난 21일,이승을 떠났습니다.  가족에게 '고맙다,나는 할 만큼 다했다'라고 하셨다지요. 맞습니다, 스승이여,당신은 정말이지 할 만큼 다하셨습니다.당신과 동시대인이어서 감사하고...그..

동행 2024.07.24

조지 오웰의 충고: 미워하며 닮지 마! (2024년 7월 22일)

윌리엄 포크너의 를 읽은 후집어든 책은 조셉 콘래드 (Joseph Conrad)의 (Lord Jim)>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십 년 전 대학시절에산 페이퍼백의 쪽들이 자꾸 한 장씩 떨어지는 바람에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고른 책이 조지오웰 (George Orwell: 1903-1950)의 Farm)>입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무엇보다 책의 무게가 가벼워서이고두 번째 이유는 함께 있는 공간을 '동물농장'으로 만드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늘고 있습니다. 의 첫머리에서 수퇘지 메이저는 마노농장의다른 동물들에게 '인간은 적'이라는 주제로 연설하고그 결과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켜 마노농장의 주인 존스 씨부부는 농장에서 도망칩니다. 메이저의 연설은 듣는 이의가슴을 뜨겁게..

동행 2024.07.22

레모니 스니켓의 죽음 넘어 사는 법 (2024년 7월 19일)

지난달에도 이 블로그에 인용한 적이 있지만,심신이 힘들 땐 단골 카페에 가서 미국 작가 레모니 스니켓 (Lemony Snicket)의사건의 연속 (A Series of Unfortunate Events)>을 읽습니다. 요즘은 13권으로 구성된 연작 소설의 12권을 읽고 있습니다.  유머와 풍자와 촌철살인으로 가득한 그 청소년 소설을 읽으며 혼자 웃고 울다 보면 다시 세상으로 복귀할 힘을 얻게 되니, 스니켓에게 참 감사합니다. 그는 저보다 열여섯 살이나 어리지만, 저보다 많은 것을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래와 같은 문장이 그 증거입니다. ... one can remain alive long past disintegrationif one is unafraid of change, insatiable in i..

동행 2024.07.19

그림자놀이 (2024년 7월 16일)

창문을 열고 자니 새벽 다섯 시의소음이 한낮 같습니다. 누워서 빈둥거리느니일어나는 게 낫겠다 싶습니다. PC 앞에 앉아 메일을 봅니다.10분 전에 아들이 보낸 파일이 와 있습니다.잘 받았다고, 어서 좀 자라고 답장을 씁니다.답장을 보고 엄마가 깨어 있다는 걸 안 아들에게서 문자가 옵니다.오랜만에 아침 산책을 하시겠느냐고.  아침 산책길 바람은 오후 바람과 달리서늘하고, 홍제천의 오리들은 몸늘림이잽니다. 다리 긴 아들 옆에서 종종걸음 치다 보니 문득 어제 카페에서 우연히 본 제 졸저 속의 시 하나가  떠오릅니다.  그림자놀이 그림자 둘이 손잡고 걸어갑니다큰 그림자의 다리는 길어 작은 그림자는 강아지마냥 종종댑니다그렇게 삼십 년이 흘렀습니다 큰 그림자는 작은 그림자가 되었습니다그림자놀이 힘들어 손 놓고 싶..

동행 2024.07.16

노년일기 222: 닮은 사람 (2024년 7월 13일)

올 여름 매미는 지난 여름 매미보다 며칠 일찍왔습니다. 5일 전쯤엔 참매미가 매앰, 맴 우는 소리가선물처럼 반갑더니 그 다음 날엔 말매미가 스~~미소를 자아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 모두를 매미라 하고 작년에 왔던 매미가 돌아왔다고 하지만, 겉모습이 닮았을 뿐 이 여름의 매미는 지난 여름의 매미가 아닙니다. 언젠가 이 세상엔 아주 닮은 사람들이 셋씩 있다는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즉 저와 닮은 사람 둘이어딘가에 있다는 것이지요. 대학 시절 음악대학에저와 꼭 닮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그 사람을 만나보진 못했습니다. 그후 20여 년 지난 후 오랜 친구가 저와 닮은사람이 있다며 그이와 저를 만나게 해주었습니다.그이와 제가 어느 부분 닮았는지 꼭집어 말할 수는없었지만, 그는 독립운동가 정정화 선생의 손..

동행 2024.07.13

실험 음악 콘서트 (2024년 6월 28일)

2012년에 출간한 졸저 의 시 중에 '처음으로 (For the First Time)'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제목을 한글과 영어로 쓴 것은이 시집의 시들이 그 두 개의 언어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의 마지막 연은 "늦게라도 보아야 하는 게 있다/늦게라도 해봐야 하는 게 있다"입니다.살아있어 좋은 점은 무엇보다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있다는 것이고, 어제는 바로 그래서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실험 음악 (Experimental Music) 콘서트에 갔습니다. 콘서트의 주인공은 멀리 노르웨이에서 온 두 명의 음악가, 신드러 저르가( SINDRE BJERGA)와호어콘 리에( HÅKON LIE)였습니다. 콘서트 장소가 마침집에서 가까운 홍은동의 복합문화공간 '서재 (Loud Libr..

동행 2024.06.28

노년일기 221: 부모의 잘잘못 (2024년 6월 21일)

누구나 말년은 위험합니다.마지막 몇 해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평생의 잘못이 옅어지기도 하고, 애써 쌓은성취가 무너지기도 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우리보다 먼저 말년을 맞는부모는 우리의 스승입니다. 늙은 부모의언행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모두 자기 부모보다 나은 노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와 사별하며 흘리는 눈물은 부모의 잘못을 지워주는 지우개일지 모릅니다.처음으로 부모 노릇을 하느라 실수하신 거라고.부모 또한 죽음 앞에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처럼한탄했을 거라고. '깊이 사랑했으나 현명하게 사랑하지 못했구나!' 그러니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분들의잘못을 되뇌이며 원망하는 것처럼 어리석은일도 없을 겁니다. 미국 작가 레모니 스니켓 (Lemony Snicket:본명: Daniel Handler: ..

동행 2024.06.21

블로그와 애도 (2024년 6월 19일)

그전에도 이 블로그를 찾는 방문객은기껏해야 하루 수십 명이었습니다.그리고 이제 그 수는 한 자리에 그칠 때가많습니다. 방문객의 감소는 지금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데 혹은 잊히는 데 걸리는 시간을 보여줍니다.  9년 전 아버지 장례를 치를 때 들은장례지도사의 말이 떠오릅니다. "옛날에는 3년상을 치렀지만, 이젠 돌아가신 분을 3년씩 애도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아요.요즘은 보통 3일장을 치르는데, 3일장이끝나면 애도도 끝나요. 3일장이 곧3일상이지요." 9년 전 첫 스승이자 친구인 아버지를 잃고다시 생활로 복귀하는 데 몇 해가 걸렸습니다.여러 사람이 제게 위로하듯 핀잔하듯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아흔에 돌아가셨는데환갑 넘은 딸이 이렇게 오래 슬퍼하다니.' 그새 제 나이는 아홉 살이나 늘었고 어머니는 아흔넷에..

동행 2024.06.19

노년일기 220: 세상에서 제일 고약한 냄새 (2024년 6월 16일)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예능 프로그램에출연한 경찰 출신 범죄학자 김복준 씨를 보았습니다. 1982년에 경찰이 되어 2013년에 명예퇴직할 때까지그는 강력계 형사로 일하며 수많은 범죄를 해결하고범죄자를 검거했습니다. 그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 씨가연기한 박두만 형사의 실제 모델이라고도 하는데,  특히 후각이 예민해 시신의 냄새를 맡고 사망 시점을 유추해 내는 데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세상에서 제일 고약한 냄새가 뭔지 아느냐고묻자, 그와 함께 있던 연예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오래된시신의 냄새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오래 전 어떤집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 집에서 아주 심한 악취가 나자 동료들 모두 사망한 지한참 된 시신의 냄새라고 했다고..

동행 2024.06.16

노년일기 219: 그들을 용서하지 마!(2024년 6월 14일)

저의 하루도 성장의 시간이었던 때가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 저의 하루는 슬픔과 탄식의 시간인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제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하는 건 지난 5월 23일 '얼차려 군기훈련' 중에 쓰러져 이틀 후 숨진 훈련병입니다. 5월 27일 한겨레신문 사설을 보면 훈련병은 얼차려를 시킨지휘관으로 인해 죽음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에 사설 일부를 옮겨둡니다.  "당시 훈련병들은 전날 밤에 떠들었다는 이유로 이튿날 오후 약 20㎏에 이르는 완전군장을 차고 연병장을 구보(달리기)로 도는 군기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통상 ‘얼차려’로 불리는 군기훈련은 지휘관 지적 사항이  있을 때 군기 확립을 위해 장병들에게 지시하는 일종의 벌칙으로, ‘공개된 장소에서 훈련 대상자의 신체 상태를 고려해 체력을 증진시키거..

동행 2024.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