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숙 노년일기 172

노년일기 211: 그 방이 자꾸 가라앉는 이유 (2024년 2월 7일)

1415호는 가라앉고 있습니다. 한 침대 주인의 84년 한 침대 주인의 94년 한 침대 주인의 58년 한 침대 주인의 87년 리베로 간병인의 77년 작은 방에 400년이 실려 있습니다. 꼬마 문병객 둘이 바쁜 경비원 뒤로 숨어듭니다. 꼬마들은 애드벌룬이 되어 1415호를 밀어올립니다. 침대의 주인들과 간병인의 웃음이 날개를 단 듯 솟구칩니다. 꼬마들이 떠난 1415호는 길고 무거운 침묵입니다. 꼬마들 뒤에 놓인 짧은 시간과 꼬마들 앞에 놓인 긴 시간이 거주자들의 뒤에 놓인 긴 시간과 앞에 놓인 짧은 시간과 오버랩되어 낡은 몸들이 뒤척입니다. 이윽고 코 고는 소리가 들립니다. 거주자들 모두 기억해 낸 것이지요. 결국 세계의 배들은 모두 침몰하거나 해체된다는 걸.

동행 2024.02.07

노년일기 210: 이웃 사람, 이웃 선생 (2024년 2월 5일)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2024년 한국에서는 '이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층간소음 문제로 다투던 이웃의 손에 죽었다는 뉴스가 낯설지 않습니다. 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서둘러 카페를 벗어날 때도 있습니다. '이웃 복'이 필요한 곳이 또 하나 있음을 어머니 덕에 알았습니다. 바로 병실입니다. 몇 년 전 2인실에 입원한 환자를 돌보느라 병실에서 며칠 동안 지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있던 이웃 환자는 가끔 신음소리를 낼 뿐이었는데, 뒤이어 들어온 이웃은 특정종교와 관련된 말과 노래를 크게 틀어놓아 잠을 잘 수도 없고 쉴 수도 없었습니다. 직접 얘기했다가 싸움이 될까봐 간호사실에 얘기하자 간호사실에서 병실 규칙을 들어 중단시켰습니다. 어머니 병상 바로..

동행 2024.02.05

노년일기 209: 낡은 것은 몸뿐 (2024년 1월 25일)

병원 침상에 누우신 어머니의 몸을 만지다 보면 이 몸이 우리 어머니 것인가 낯설기만 합니다. 탄탄하시던 근육이 한두 달 만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매끄럽던 피부는 막대기를 덮은 낡은 옷 같으니까요. 그러나 시선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어머니의 영혼은 여전히 낯익은 사랑입니다. 나이 들면 누구나 몸이 낡고 피부엔 주름이 생기지만, 그 몸에 깃든 영혼은 낡음과 주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일까요?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William Butler Yeats:1865-1939)도 그렇게 느꼈던가 봅니다. An aged man is but a paltry thing, A tattered coat upon a stick, unless Soul clap its hands and sing,..

동행 2024.01.25

노년일기 208: 잠시 숨어 있는 순간 (2024년 1월 22일)

어머니가 입원하신 지 17일째... 병원에 드나들다 보면, 특히 연세가 많아 회복의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분들 사이에 있다 보면 자연히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다가 죽고 싶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혼자 죽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어떻든 상관없다고 합니다. 죽음은 아픔처럼 혼자 겪는 일이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의 순간도 살던 방식대로 맞으려 하는가 봅니다. 부디 각자가 원하는 죽음을 맞기를, 아니 그 죽음을 맞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생生을 살아내기를 바랍니다. 안락사를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개방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의사 베르테 케이제르는 수많은 환자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쓴 책 에서, 밤 사이에 홀로 죽은 반 리에트 씨에 대해 얘기합니다. 케이제르..

동행 2024.01.22

노년일기 207: 강물이 흘러가는 곳 (2024년 1월 17일)

가끔은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망연히 바라보곤 했는데, 근래엔 한참 그러지 못했습니다. 강물을 바라보는 건 생生을 바라보는 것인데... 그러다 헌책방에서 산 작은 책을 읽었습니다. 팀 보울러(Tim Bowler)의 . 표지에 강이 있어 이 책을 집어든 건지 모릅니다. River Boy는 뭐라고 번역해야 할까요? '강물 소년'이 될 수도 있고 '강의 소년'이 될 수도 있겠지요. 이 소설의 '강'은 인생을 은유한다고 합니다. 소설의 첫 장이 시작하기 직전 페이지에 구약성경의 전도서에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Ecclesiastes 1:7 All the rivers run into the sea; yet the sea is not full; unto the place from whence the rivers c..

동행 2024.01.17

노년일기 206: 재활용 어려움 (2024년 1월 11일)

선물받은 수분크림을 다 썼습니다. 빈 통을 재활용품 수거함에 넣으려다 보니 통 표면에 통은 PET, 뚜껑은 Other라고 표기되어 있고 Other 아래에 '재활용 어려움'이라고 써 있습니다. 며칠 전 선물받은 다른 수분크림을 꺼내 봅니다. 통은 플라스틱, 뚜껑은 PP '재활용 우수'라고 써 있습니다. 혹시 사서 쓰게 된다면 이 제품을 써야겠습니다. 병원에 드나들며 고령의 환자들을 많이 보아서 일까요? 전 같으면 공분을 일으켰을 '재활용 어려움'이 어머니 병실의 노인들을 상기시켜 슬픔을 일으킵니다. 우리 어머니를 비롯해 그 방의 모든 분들은 각자 타고난 능력은 물론 타고나지 못한 능력까지 동원하며 죽어라 살아내신 후에 지금에 이르렀을 겁니다. 언젠간 내 몸도 재활용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

동행 2024.01.11

노년일기 205: 지금, 준비 중입니다 (2024년 1월 7일)

나이 든 사람들은 종종 얘기합니다. '자다가, 고통 없이 죽고 싶어' 라고. 누군가 자다가 죽었다는 얘기를 가끔 듣지만 그가 고통도 없이 죽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고통이 있었다 해도 몇 시간의 고통이었을 테니 부러움을 살 만합니다. 그 고통의 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지만. 생(生)과 사(死)를 잇는 다리 위에 계시는 듯한 어머니를 보며 살아가는 일과 죽어가는 일을 생각합니다. 사고사나 자살이 아닌 한 죽음도 삶처럼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입니다. 삶의 과정과 죽음의 과정이 결정되는 건 언제일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삶의 과정은 대개 10대 초반에 결정되고, 죽음의 과정은 65세 전후에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15세쯤 어렴풋하게나마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구나 깨닫고 그것을 좇아 살다가 65..

나의 이야기 2024.01.07

노년일기 204: 인생을 다시 산다면 (2023년 12월 31일)

2023년의 마지막 날. 다 잤다는 기분이 들어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 어젯밤 11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으니 좀 더 자야할 거야 생각하며 누워 있었지만 떠난 잠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상승은 드물고 낙하는 풍성했던 일년. 중력이 있는 지구에선 떨어지는 게 당연하겠지만 한 번쯤은 중력을 이기고 싶었는데 ... 그래도 사랑 많은 한 해였습니다. 아는 사람들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늘 기도하며, 지혜와 용기가 그들과 함께하기를 빌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친구들은 선물과 다정한 말로 격려해 주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친절로 위로해 주었습니다. 다시 새 달력을 걸며 자문합니다. 지나간 일년을 다시 산다면, 아니 지나간 인생을 다시 산다면, 다르게 살까... 어린 시절 아버지의 책상에 앉아 책을 읽던 시..

나의 이야기 2023.12.31

노년일기 203: 생애가 끝나갈 때 (2023년 12월 29일)

아침 기도 시간에도 낮에 산책을 하다가도 눈시울이 젖습니다. 생애의 끝 언저리에서 한 해의 끝을 맞는 분들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물 찬 제비 같던 어머니가 갑자기 거동을 못하게 되시고, 얼마 전만 해도 새로 나가는 데이케어센터가 재미있다고 밝게 웃으시던 이모가 요양병원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선균 씨처럼 떠나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태어나서 1세기 안팎의 시간을 산 뒤에 삶이 죽음으로 치환되는 시간을 거쳐 마침내 죽음과 만납니다.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육체에서 시작된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미 죽음의 과정이 시작된 후에 당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 과정을 대비하고 준비하는 건 삶이 한창일 때만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인생의 아이러니이겠지요. 삶이 한창일 때부터 감사..

동행 2023.12.29

노년일기 202: 우리는 살아있다 (2023년 12월 26일)

2023년의 마지막 달이 바쁘게 지나갑니다. 수많은 실패를 묻느라 마음이 바쁘지만 지나가는 해의 실패는 새해의 거름이 되겠지요. 몇 달 후면 94세가 되실 어머니는 자꾸 침묵에 빠져드시니, 앞서 가신 아버지와의 해후가 멀지 않은가 봅니다. 뵌 지 한참된 선배님이 소식을 주시고 만난 지 오랜 후배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옵니다. 수양딸들은 가족들을 돌보느라 바쁘면서도 안부를 묻고, 아들은 악조건과 싸우면서도 늙은 부모를 챙깁니다. 가난은 부끄럽지 않지만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선물하지 못하니 자괴감이 드는데 친구들이 말해 줍니다. '네가 있어 감사해'라고. 올해도 참 많은 사람들이 동행을 그쳤지만 우리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나 봅니다. 아직 갚아야 할 사랑이 많은가 봅니다.

나의 이야기 2023.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