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동네에 묶어 두고 입을 닫고 살지만
눈은 세상을 봅니다. 1980년대를 2020년대에
와서 말하듯, 40년쯤 흐른 후엔 지금을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땐 제 입이 사라지고 없을 테니
다른 이의 입이겠지요.
어제 선물받은 책에 눈 가는 글이 있어 옮겨둡니다.
원래 제목은 ' 浪吟낭음', 즉 '아무렇게나 읊다'라고
합니다.
이 한시를 쓴 사람은 조선 전기 문신 박수량
( 朴遂良: 1491-1554)입니다. 인용자에 따라 원문
첫머리 '口耳'가 ' 耳口'로 쓰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말하리라
벙어리에 귀 먹은 지 오래지만
여전히 두 눈만은 그대로이네.
어지럽고 어수선한 세상일들은
볼 수는 있지만 말할 순 없네.
--박동욱, <하루 한편 우리 한시>, 빅퀘스천
浪吟
口耳聾啞久(구이롱아구)
猶餘兩眼存(유여량안존)
紛紛世上事(분분세상사)
能見不能言(능견불능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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