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숙 2573

삶은 헌 신발을 신고... (2023년 4월 24일)

삶은... 무엇일까요?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소풍'일까요? 테레사 수녀의 말처럼 '기회'일까요? 일러스트포잇 김수자 씨의 블로그 '시시한 그림일기'에서 만난 이기철 시인은 '삶은 헌 신발을 신고 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시(詩詩)한 그림일기'에 가면 더 많은 시와 일러스트를 볼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illustpoet&skinType=&skinId=&from=menu&userSelectMenu=true 시 한편 그림 한장 삶은 헌 신발을 신고 늙은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종이에 색연필 ​ ​ ​ ​ 삶은 헌 신발을 신고 늙은 길을 걸어가는 것 입니다 이기철 삶을 미워한다는 것은 삶을 사랑하자는 것이지요 저 길가..

동행 2023.04.24

딸 (2023년 4월 22일)

제겐 몸으로 낳은 딸이 없지만 마음으로 맺은 딸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는 제 어머니의 딸입니다. 어머니가 처음 만난 딸로서 때로는 시행착오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보람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딸'이며 딸 가진 어머니인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딸들'을 바라보는 눈엔 사랑과 안쓰러움이 가득합니다. 김일연 씨의 시집 는 바로 그 어머니이며 딸인 세상의 모든 딸들을 노래합니다. 이 한영대역 시집의 첫 시는 '딸'입니다. 딸 짐 빼고 집 내놓고 용돈 통장 해지하고 내 번호만 찍혀 있는 휴대전화 정지하고 남기신 경로우대증 품고 울고 나니 적막하다

동행 2023.04.22

참으로 술맛이란 (2023년 4월 19일)

술은 이길 수 없는 적과 같은데, 이기지 못할 싸움은 시작하지 않는 게 좋은데, 그런데도 가끔 술을 마십니다. 체질과 체력 모두 음주 자격 미달이니 '부어라 마셔라'는 꿈도 꾸지 못하고 기껏해야 입술이나 목 입구를 적실 뿐이지만, 뻔뻔한 자들, 용서할 수 없는 자들, 억울한 사람들이 술잔을 들게 합니다. 100년 전 현진건이 에서 주장한 대로 '이 사회란 것'이 술을 권하는 겁니다. 억울하기로 하면 다산 정약용 (1762-1836)만한 이도 드물 텐데... 그는 술을 얼마나 마셨을까요?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썼듯이 입술만 적셨을까요? 아니면 술맛은 포기하고 한 잔 또 한 잔 기울였을까요?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소 물 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에는 적시지도 않고 곧장 목구멍에..

오늘의 문장 2023.04.19

울어야 할 시간 (2023년 4월 16일)

4월 한가운데 라일락은 향기롭고 나무마다 연둣빛 새 잎들 아름답지만 오늘은 울어야 할 시간입니다.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지 9년... 아직도 우리는 왜 세월호의 승객들을 구하지 않았는지, 왜 단원고의 수많은 학생들이 불귀의 객이 되는 것을 보고만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지미 스트레인의 영상/노래 'Time 2 Cry (울어야 할 시간)'... 돌아가신 백기완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옷깃을 여밉니다. 선생님,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v5a21bY7og&ab_channel=JimmyStrain

동행 2023.04.16

배움을 방해하는 지식 (2023년 4월 14일)

지식은 기억하는 것, 즉 과거의 산물입니다. 가끔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인해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자꾸 퇴행하는 것도 살아오며 쌓은 지식으로 인해 새로운 것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인도에서 태어나 세계 시민으로 살다 간 철학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Jiddu Krishnamurti: 1895-1986)의 책에서 비슷한 생각을 발견했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저의 나쁜 기억력에 감사하면서... 말없음표는 문장의 생략을 뜻합니다. 90쪽: 배움은 지식을 축적하지 않는 과정입니다. 나는 지식을 쌓아놓았습니다. 자전거 타는 법, 말하는 법 같은 모든 것을. 그러나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축적한 지식은 어떤 것이든 더 많이 배우는 걸 방해할 뿐이지요. '나'는 살아 있는 것..

오늘의 문장 2023.04.14

문창재 선배님, 떠나가시네 (2023년 4월 11일)

선배님 아주 떠나시는 날, 귀한 비 날립니다. 어제 아침에야 부고를 보고 놀란 가슴으로 강 건너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그래도 선배님이 떠나신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저보다 5년 앞서 한국일보사의 기자가 되신 선배님, 편집국이 달라 함께 일한 적은 없어도 스치며 뵙는 풍모가 넉넉하고 시원하여 절로 존경심을 불러 일으키셨습니다. 그러던 선배님과 훗날 아름다운서당의 교수로 만났을 땐 얼마나 기쁘고 영광스럽던지요.. 선배님은 제주의 클라스를 맡으시고 저는 서울에 있어 자주 뵙진 못했지만, 선배님과 저의 지향점이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전 선배님이 를 상재하신 후 선배님을 연희동 고미정에 모시고 점심 대접 올린 것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그때 집밥 닮은 한식을 맛있게 잡수시고 ..

동행 2023.04.11

코끼리 발 앞의 개미 (2023년 4월 7일)

요즘 베란다에 나가면 소리 없는 소리, 생명의 소리가 가득합니다.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꽃과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잎을 내는 모습이 신나게 일하는 일꾼들 같습니다. 꽃마다 잎마다 눈을 주며 '어찌 그리 아름다우신가' 경탄합니다. 봄은 참 소란하고 아름다운 침묵의 계절입니다. 참으로 '큰 소리는 소리가 없고 큰 모양은 모양이 없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송혁기의 책상물림 없음과 있음의 역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자신의 집에 ‘오무헌(五無軒)’이라 써 붙인 이가 있었다.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다섯 가지 중 자신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뜻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다섯 가지를 하늘에서 부여받았으므로 이를 실마리로 삼아 확충해 감으로써 본래의 바름을 회..

오늘의 문장 2023.04.07

폴 고갱이 받은 거절 편지 (2023년 3월 23일)

이라는 제목의 책 63쪽을 읽다가 '거절의 미학'도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타히티 섬에서 그린 그림이 파리에서 좋은 평을 받지 못하자 고갱 (1848-1903)은 전시회를 열어 그 수익금으로 다시 타히티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는 저명한 스웨덴 작가 오거스트 스트린베리 (August Strindberg: 1849-1912)에게 전시회 카탈로그의 서문을 써달라고 부탁하지만 스트린베리는 정중한 편지를 보내 거절합니다. 아래는 그 편지의 일부입니다. 오랫동안 소설 출간을 시도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한 저는 고갱이 참 부럽습니다. 고갱과 저를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저도 스트린베리의 편지와 같은 거절 편지를 받아보고 싶습니다. 고갱은 스트린베리의 편지를 전시회 카탈로그의 서문 자리에 게재하고, 몇 년 후 성명서이자 ..

오늘의 문장 2023.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