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을 가득 채운 공기는 다른 어느 곳의
공기와도 다릅니다. 고통의 냄새라고 하기엔
너무 뭉근하고 오래 전 할머니 내음이라고
하기엔 너무 현대적이고...
낯익고도 낯선 그 공기 속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 알 수 없는 피로가 업습합니다.
그대로 누워 버리고 싶은 마음을 떨치려면
베란다로 나가야 합니다.
나가는 순간, 종일 운동화에 갇혀 뜨거워진 발과
무거운 다리부터 축 처진 어깨, 자꾸 아래로 향하는
눈꺼풀까지 봄비 맞고 일어서는 풀처럼 삽상하게
살아납니다. 초라한 플라스틱 화분에서 앙상하게
자란 천리향의 향기 덕입니다.
베란다를 채우고 있던 서늘하고 오묘한 향기가
눈물이 핑 돌게 반갑습니다. 보아 주는 이 드문
겨울 베란다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홀로 노력하여
향기 세상을 만든 걸까요?
천리향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스스로 고개를 젓습니다. 천리향은 고사하고
백리향도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아니 십리향도 언감생심이겠지요.
고통을 줄여주는 병실도 못 되고 지친 사람
위로하는 천리향도 못 되지만, 지척의 사람만이라도
위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일 아픈 한 사람,
그 하나만이라도 위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