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 8

사고 권하는 정전 (2025년 1월 18일)

이른 아침 눈을 뜨니 저를 에워싼 정적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머리맡의  다지털 라디오는검은 얼굴뿐 시간을 알려 주던 녹색 숫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거실로 나가니 거실이 산속 절집보다 조용합니다.절집엔 새소리라도 들리지만 동네 새들은 아직수면 중인가 봅니다. 충전 중이던 전화기와작은 청소기, TV와 연결된 셋톱박스 등에서 늘보이던 작은 불빛이 전혀 보이지 않고, 냉장고기계음도 들리지 않습니다. 빛이 사라지면 소리도 사라지나 봅니다.  우리 집 차단기가 내려갔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베란다로 나가니 불 켜진 창문이 하나도 없고동네 전체가 낯선 정적에 휩싸여 있습니다.우리집 차단기가 내려간 게 아니고 동네 전체가정전된 게 확실합니다. 한국전력 상담 전화(국번 없이 123)로 신고하니이미 신고 전화를 여러 통 받았..

동행 2025.01.18

노년일기 246: 기도에서 사라진 사람 (2025년 1월 17일)

하루는 기도로 시작하여 꿈으로 끝납니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빗고 기도 매트 위에무릎을 꿇으면 늘 울컥, 감정이 일어납니다.꿈이 현실이 되지 못할 때 하는 것이 기도이니그렇겠지요... 저를 이 세상에 데려다 주신, 그러나 이제이곳에 계시지 않은 부모님의 자유와 평안을위해 기도한 후,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과제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지혜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데  필요하고, 용기는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필요하니까요. 그다음엔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주십사고  기도하고, 재해와 전쟁을그치게 해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사람들이 그 어리석음에서 깨어나게 해 주십사고기도하고, 양심적으로 ..

나의 이야기 2025.01.17

SK텔레콤 홍기정 님께 (2025년 1월 14일)

홍기정 님,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 불쑥 편지를 보내어놀라시지 않을지... 우려를 안고 몇 자 적습니다.  SK텔레콤이 오래 쓰던 2G폰 사용을 강제 종료시킨 후그 회사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홍기정 님과 통화한 후 마음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기정 님은 그 회사의 수많은 직원 중 한 분이어서회사 자체와는 다르다고 할 수도 있지만, 기정 님 같은 분이 머물고 있는 회사라면 제가 모르는 장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제가 근 일년 동안 누려온 혜택이 종료되니 문의하라는 SK텔레콤의 문자를 받고 전화기의 114를 누를 때만 해도 기정 님 같은 분을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상담원들 중엔 기계적 말투를 사용하고, 질문을 하면 질문에서 빗나간 답을 기계적으로 반..

동행 2025.01.14

노년일기 245: 제사의 효용 (2025년 1월 11일)

1월은 언제나 9일을 기준으로 나뉩니다.9일 이전에는 외출을 삼가며 건강을 지키려 애쓰고9일 이후 며칠은 할 일을 미뤄두고 쉬며 지냅니다.9일이 무슨 날이냐고요? 9일은 제삿날입니다. 룸메의 부모님과 일년에 한 번 만나는 날입니다.아버님은 제가 뵙기 전에 돌아가셔서 모습과 인품을들은 얘기로만 짐작하지만, 어머님은 저와 함께 사신 적이 있어 더욱 그립습니다.  인간이 2,30대에 70대의 1년쯤을 미리 경험해 볼 수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노년의 부모를  이해하는 자식이 훨씬 많아질 거고, 저도 어머님과 함께하던 시간 동안 어머님의 몸과 마음 상태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젊은이가 노년을 미리 경험할 수는 없으니젊은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노인을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행 2025.01.11

노년일기 244: 인생을 다시 산다면 (2025년 1월 8일)

새해 초엔 늘 시를 읽게 됩니다.시로써 머릿속을 씻고 정리하고 새 마음으로 새해 살이를 시작하는 것이지요. 단골 카페에서 류시화 씨가 엮은 시집을보다가 낯익은 시를 발견했습니다.제 졸저 에 인용했던'인생을 다시 산다면'이었습니다. 그 시는 오랫동안 나딘 스테어 (Nadine Stair)의시로 알려져 왔는데, 사실은 나딘 스트레인(Nadine Strain)이 쓴 에세이에 나온 것입니다.저는 에 그 사실을 적고, 그 글이 1978년 미국의 여성 잡지 (Family Circle)>에 실리는 과정에서 작가 이름이 잘못 기재되었다는 것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에는 그 시가 여전히 나딘 스테어의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제가 본  그때도 알았더라면>에도 나딘 스테어의 시로 적혀 있었습니다. 그 책은 수십 쇄..

동행 2025.01.08

노년일기 243: 화는 천천히 (2025년 1월 6일)

늙는다는 건 한마디로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겁니다.에너지가 줄어드니 많은 일을 하거나 신경 쓸 수가없습니다.  늘 하던 일만 하면 그런대로 지낼 만하지만,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해야 하거나 그런 일에 신경을써야 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여 날카로운상태가 됩니다. 그럴 때 누군가 옆에서 그 일에 대해말하면 곱게 반응하기 어렵습니다. 금세 격앙되어화를 내기 일쑤입니다. 이 나라가 초고령국가가 되며 화내는 노인이 많아지는 건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그러나 화내는 건 가난한 사람이돈 쓰듯 해야 합니다. 화낸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고화를 내고 나면, 감정에 휘둘려 돈 쓴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돈을 쓴 가난뱅이처럼 반드시 후회하게 되니까요. 새해 목표를 화내지 않는 것으로 정한 분들에게린다 엘리스(Lind..

동행 2025.01.06

언젠가 말하리라 (2025년 1월 4일)

몸은 동네에 묶어 두고 입을 닫고 살지만눈은 세상을 봅니다. 1980년대를 2020년대에와서 말하듯, 40년쯤 흐른 후엔 지금을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땐 제 입이 사라지고 없을 테니다른 이의 입이겠지요. 어제 선물받은 책에 눈 가는 글이 있어 옮겨둡니다.원래 제목은 ' 浪吟낭음', 즉 '아무렇게나 읊다'라고 합니다. 이 한시를 쓴 사람은 조선 전기 문신 박수량 ( 朴遂良: 1491-1554)입니다. 인용자에 따라 원문 첫머리 '口耳'가 ' 耳口'로 쓰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말하리라 벙어리에 귀 먹은 지 오래지만 여전히 두 눈만은 그대로이네.어지럽고 어수선한 세상일들은볼 수는 있지만 말할 순 없네.--박동욱, , 빅퀘스천  浪吟口耳聾啞久(구이롱아구)猶餘兩眼存(유여량안존)紛紛世上事(분분세상사)能見不能..

오늘의 문장 2025.01.04

새해 첫 노래: 지상의 영광은.. (2025년 1월 2일)

무지개 빛 희망으로 시작했던 2024년,회색으로 어두워지더니 검붉은 연기 속에막을 내렸습니다.  새해는 시작되었지만 지상에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은산 자들의 몫... 새로운 것 속에서 불멸의암시를 찾는 건 영혼을 잃지 않은 자들만이할 수 있는 일...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1770-1850)의 '어린 시절 회상 속 불멸의 암시(Ode: Intimations of Immortality from Recollections of Early Childhood)'를읽습니다. 2The Rainbow comes and goes,and lovely is the Rose,The Moon doth with delightLook round her when the ..

동행 2025.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