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숙 2632

빙판 (2024년 1월 19일)

며칠 전 어머니 계신 병원에서 오빠 내외를 만났습니다. 오빠가 넘어져 오른손 뼈에 금이 갔다고 했습니다. 젊은 시절 네다섯 번이나 깁스를 했던 제겐 못 미치지만 오빠의 깁스가 처음은 아닙니다. 블로그를 찾아주신 분 덕에 다시 만난 2012년 12월 16일 자 ‘빙판’이라는 제목의 글에도 오빠가 오른팔에 깁스를 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때 그 글.. 거울 보듯 보고 나서 조금 줄여 옮겨 둡니다. 그 글의 전문을 읽고 싶으신 분은 링크를 클릭하십시오. https://futureishere.tistory.com/953 ----------------------------------------- '빙판' 하면 누구나 추운 겨울을 생각하지만 삶의 골목 골목엔 빙판처럼 우리를 시험하는 곳들이 늘 있습니다. 때로는 ..

동행 2024.01.19

솔 벨로의 문장들 5: 좋은 남편 (2024년 1월 13일)

제가 9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아버지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밤중에 자신을 해치러 온 사람을 감복시켜 들고 온 칼을 두고 나가게 하신 '영웅'이니까요. 그런 아버지지만 상대하면 늘 지는 대상이 있었으니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에게 몰리면 아버지는 "밖에 나가면 다들 내게 고개를 숙이는데. 저 조그만 여자만 나를 만만히 본단 말이야" 하시며 겸연쩍게 웃으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좀 다정하게 굴 걸, 아버지를 좀 인정해 드릴 걸 하고 후회하신 적이 많았고, 이제는 병실에서 아버지와 만날 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부모님의 경우도 그렇지만, 부부란 일반적인 힘의 법칙이나 관계의 법칙을 적용할 ..

오늘의 문장 2024.01.13

이영애 씨에게 (2024년 1월 9일)

저는 배우 이영애 씨를 좋아합니다. 그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이름에 걸맞게 처신합니다. 이 나라에 이영애 씨 같은 사람이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어머니가 누워 계신 방엔 세 분의 고령 환자들이 계십니다. 혼자서는 거동이 불가능한 분들입니다. 오후 세 시가 되도록 어머니 곁에 붙어 있다 잠시 병실 근처 휴게 공간에서 때늦은 점심을 먹는데, '아퍼? 어디가 아퍼!' 잘못한 아이를 야단치는 듯한 큰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니 병실로 달려가니 4, 50대로 보이는 간호사가 젊은 동료를 옆에 두고 아흔넷 어머니에게 반말로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청력이 나빠 못 들으실까봐 큰소리쳤겠지 하고 이해한다 해도 반말은 용서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시엔 기가 막혀 명찰을 볼 생각도 못했는데 나중에 다시 ..

동행 2024.01.09

솔 벨로의 문장들 4: 분노의 힘 (2024년 1월 5일)

시간이 투스텝으로 달아나는 아이 같습니다. 사위어가시는 어머니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 차 문득 고개 들면 그새 2, 3일이 지나 있습니다. 요절한 가난한 선비의 딸로서 어려서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교육이라곤 일제 때 야학에 다닌 게 전부였지만, 어머니는 제가 아는 누구보다 정의로웠고, 정의로운 분노를 망설임 없이 표출해 손해를 입은 적도 많았습니다. 바뀌어 가는 세상에서도 어머니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흔이 넘도록 신문을 보시며, 부정을 저질러 이익을 취하는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을 가차없이 비판하시는가 하면, 윗사람이 성희롱이나 성 착취를 할 때 훗날의 피해나 불이익을 생각해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맞서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근 94년 생애 동안 어머니의 정신을 지켜준 건 바로 그..

오늘의 문장 2024.01.05

솔 벨로의 문장들3: 노인이 생각하는 것 (2023년 12월 18일)

외출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가 빠뜨리고 온 게 생각나서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젊은이는 '아이쿠, 서두르다 빠뜨렸구나!' 생각하지만 노인은 '나이 때문이구나!' 생각하는 일이 많습니다. 음식을 먹다가 흘리거나 사레들어 고생할 때도 젊은이는 나이 생각을 하지 않지만, 늙은 사람은 나이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인들은 거의 항상 쌓여가는 나이와 그 나이로 인해 가까워지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죽음이 가까우니 손주를 돌보기보다는 친구들과 놀러 다녀야 하고, 죽음이 멀지 않으니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아무 데서나 큰소리로 떠들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확율의 문제일 뿐, 죽음은 젊고 늙음을 가리지 않고 찾아옵니다. 솔 벨로의 에서 주인공 토미 윌헬름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아버지를 ..

오늘의 문장 2023.12.18

솔 벨로의 문장들2: 지금, 여기(2023년 12월 16일)

하늘은 우유 탄 물 빛깔이고, 지붕은 얇게 쌓인 눈으로 덮여 있고, 아스팔트 길은 녹은 눈 덕에 아름답게 검어서 세상은 한 폭 수묵화입니다. 문제 많은 눈이지만 이 눈 덕에 저 풍경을 볼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주변에서 늘 감사할 일을 찾아내는 건 일종의 축복이지만, 그 축복을 받는 것은 대개 많은 일, 특히 힘들고 괴로운 일들을 겪은 후 자신의 시선을 바꾼 다음인 것 같습니다. 가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무엇보다 그 책이 인생의 아이러니를 아주 잘 포착해내기 때문일 겁니다. 주인공 토미를 등치는 사기꾼이 분명한 탐킨 박사가 인생의 진실을 얘기하는 식이지요. PP. 61-62 I am at my most efficient when I don't need the fee. When I only lov..

오늘의 문장 2023.12.16

솔 벨로의 문장들1: 오늘을 잡아라 (2023년 12월 13일)

서머싯 몸의 에 이어 산책길 동행이 된 책은 솔 벨로 (Saul Bellow: 1915-2005)의 입니다. 이 책에는 표제작인 를 비롯해 네 편의 단편소설과 한 편의 희곡이 실려 있습니다. 산책길 동행이 될 만한 책들 중 이 책이 제일 크고 무거워 망설였지만, 이 단편소설의 첫 문장 때문에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P. 7 "When it came to concealing his troubles, Tommy Wilhelm was not less capable than the next fellow. 토미 윌헬름은 골치아픈 상황을 숨기는 데 있어서는 누구 못지 않았다." 이 문장이 예고하는 대로, 그리고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토미는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그에겐 상황의 호전을 ..

오늘의 문장 2023.12.13

김종건 교수님... (2023년 12월 4일)

교수님, 마침내 제임스 조이스를 만나게 되셨군요. 조이스가 교수님께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면 교수님은 부끄러운 듯 웃으시겠지요. 세계의 국가들을 구분하는 다양한 기준 중에는 조이스의 와 를 제 나라 말로 번역한 번역서를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이 나라는 교수님 덕택에 번역본을 가진 소수의 국가 중 하나가 되었고, 번역본을 가진 네 번째 나라가 되었습니다. 1988년 11월 교수님은 소설 번역본 세 권과 주해서 한 권으로 구성된 완역본을 출간하셨고, 저는 12월 말 어느 날 고려대학교의 교수님 연구실로 찾아가 인터뷰를 했습니다. 교수님의 방은 조이스와 더블린 지도를 비롯한 자료로 가득했습니다. 철없던 저는 교수님을 깊이 존경하면서도 교수님을 놀렸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조이스가 ..

동행 2023.12.04

서머싯 몸의 문장들5: 이방인 (2023년 12월 1일)

오늘은 룸메이트의 생일입니다. 제가 대학 시절 마지막 미팅에서 만난 두 사람 중 한 명을 선택해 파트너가 되었는데, 그가 지금의 룸메입니다. 인생은 'B-C-D'라는 말이 다시 떠오릅니다. 'Birth(태어남)-Choice(선택)-Death(죽음)'. 수십 년 전 룸메를 선택하여 함께 죽음을 향해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선택이 좋은 선택인지 나쁜 선택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그가 이 사회의 방식에 잘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태어난 이후 줄곧 한국에 살았으나 이곳은 늘 이방처럼 느껴지는데, 그 또한 저와 비슷한 구석이 많습니다. 우리는 때로 이민자들처럼 이 사회를 낯설어 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부축합니다. 서머싯 몸의 에서 아래 문단이 눈길을 끈 이유입니다. P. 18..

오늘의 문장 2023.12.01

<달과 6펜스>와 폴 고갱 (2023년 11월 28일)

서머싯 몸의 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한참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어떤 책을 읽기 시작하는 건 낯선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부터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쉽게 이해되는 문장들이 있는가 하면, 잡힐 듯 잡히지 앉는 문장들도 있습니다. 는 쉬우면서도 어려운 책이었습니댜. 대학 시절에 읽고 다시 읽는데 처음 보는 책 같았습니다. 이 책은 서머싯 몸이 폴 고갱(Paul Gauguin)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식중개인이었던 주인공이 그림에 전념하겠다고 인생 항로를 바꾸고 타히티 등 남태평양의 섬에서 살다 죽는 것도 고갱을 닮았습니다. 를 읽고 난 후 영문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Paul_Gauguin)에서 폴 고갱을 찾..

오늘의 문장 2023.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