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730

홍세화 선생 별세 (2024년 4월 19일)

4.19 혁명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선생이 별세했습니다. 향년 77세. 봄꽃 세상을 두고 아주 떠나가기엔 좀 이른 나이입니다. 선생은 작년 1월 한겨레신문에 쓴 마지막 칼럼에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합니다. 한때 민주주의적 진보를 주창하던 수많은 '운동가'들이 사람보다 소유를 중시하는 자본주의의 상층부에서 활약하지만, 선생은 끝내 '소박한 자유인'으로, 이상을 실천하는 '장발장 은행' 대표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삼가 선생의 영면을 빌며, 한겨레에 실린 선생 별세 관련 기사를 조금 줄여 옮겨둡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기사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인용문에 나오는 말없음표 (...)는 문장의 생략을 뜻합니다. https://w..

동행 2024.04.19

세월호 참사 10주기 (2024년 4월 16일)

잊고 살던 부끄러움이 살아나는 날입니다. 정치(政治)는 정치(正治)가 아니니 우리는 아마도 죽는 날까지 '왜' 세월호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았는지 모를 겁니다. 세월호 참사 덕에, 3백 명이 넘는 희생자들 덕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고 그 참사 덕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정계에 진출한 사람도 여럿입니다. 그러나 그 정부와 그 정치인들은 '왜'를 밝히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 정부에 몸담았던 사람들과 그 정치인들중에 그 실패를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는지, 살 수 있었지만 살 수 없었던 세월호 승객들에게 부끄러워하며 사는 사람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나이 들 시간, 자신의 몸이 자신의 정신을 배반하는 시간 혹은 자신의 정신이 자신을 배반하는 시간을 경험하지 못하고 죽은 단원고 학생들... 추하게 늙어 가는 욕망가들..

동행 2024.04.16

좋은 날 (2024년 4월 11일)

경기도 화성 함백산추모공원에 가는 길엔 봄꽃이 화려했습니다. 장례식장과 화장장, 봉안당이 함께 있는 함백산추모공원은 경기도의 6개 지자체가 함께 만든 시설이라고 합니다. 간선도로와 추모공원 주변에 흐드러진 벚꽃이 바람을 타고 눈처럼 날렸습니다. 아름다운 날이구나, 떠나기 좋은 날이구나, 살기에도 좋고 죽기에도 좋은 날이구나... 장례식장 사진 속엔 세 살 아래인 사촌 동생이 웃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열심히 당차게 살던 이정자... 어쩌다 한 번 만나도 살갑게 '언니 언니'하던 정자, 투병 중이면서도 지난 2월 우리 어머니 장례식에 와서 "고모가 돌아가셨는데 내가 당연히 와야죠" 큰눈으로 웃던 정자, 67년 생애 동안 온갖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꺾이지 않던 정자...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항암치료에 핏기 잃..

동행 2024.04.11

봄아씨 꽃아씨 (2024년 3월 23일)

꽃마다 엄마 얼굴 엄마 목소리입니다. 지난 목요일이 엄마 95번 째 생신이었는데 저는 여전히 안개처럼 몽롱한 채 아무것도 못하고 아우 김수자가 자신의 블로그 '시시(詩詩)한 그림일기'에 올린 엄마 기리는 편지와 그림만 옮겨둡니다. 박목월 시인의 시 아래 글은 김수자의 글입니다. 시 한편 그림 한장 봄 부르는 소리 - 박목월 종이에 분채, 부분 봄 부르는 소리 박목월 뒷산에는 눈 녹은 개울물 소리 돌돌돌 돌돌돌 봄을 부르네 봄아씨 꽃아씨 어서 오세요 꽃수레 꿈수레 타고 오세요 얼음이 풀려서 시냇물 소리 돌돌돌 돌돌돌 봄을 부르네 은실비 봄비를 앞장 세우고 봄아씨 꽃아씨 어서 오세요 산에도 들에도 꽃방석 펴면 우리도 즐겁게 봄잔치 하자 ----------------------------------------..

동행 2024.03.23

슬픔을 위한 자리 (2024년 3월 17일)

고아가 된 지 33일. 유명한 사람들의 삶을 엮은 기록이 역사라면 평범한 사람의 일생은 그가 겪은 슬픔의 기록일지 모릅니다. 낯선 고아 생활, 책과 음악 덕에 견디고 있습니다. '우리는 슬픔 속에서만' 자람을 기억하며 가슴 한쪽에 슬픔을 위한 자리를 내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HidJXZl8gc&ab_channel=JimmyStrain Peace of Mind You're not getting stronger or slower You're not growing, but just getting old You gotta set aside a spot for sorrow so you can live with it and have peace of mind We o..

동행 2024.03.17

노년일기 211: 그 방이 자꾸 가라앉는 이유 (2024년 2월 7일)

1415호는 가라앉고 있습니다. 한 침대 주인의 84년 한 침대 주인의 94년 한 침대 주인의 58년 한 침대 주인의 87년 리베로 간병인의 77년 작은 방에 400년이 실려 있습니다. 꼬마 문병객 둘이 바쁜 경비원 뒤로 숨어듭니다. 꼬마들은 애드벌룬이 되어 1415호를 밀어올립니다. 침대의 주인들과 간병인의 웃음이 날개를 단 듯 솟구칩니다. 꼬마들이 떠난 1415호는 길고 무거운 침묵입니다. 꼬마들 뒤에 놓인 짧은 시간과 꼬마들 앞에 놓인 긴 시간이 거주자들의 뒤에 놓인 긴 시간과 앞에 놓인 짧은 시간과 오버랩되어 낡은 몸들이 뒤척입니다. 이윽고 코 고는 소리가 들립니다. 거주자들 모두 기억해 낸 것이지요. 결국 세계의 배들은 모두 침몰하거나 해체된다는 걸.

동행 2024.02.07

노년일기 210: 이웃 사람, 이웃 선생 (2024년 2월 5일)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2024년 한국에서는 '이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층간소음 문제로 다투던 이웃의 손에 죽었다는 뉴스가 낯설지 않습니다. 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서둘러 카페를 벗어날 때도 있습니다. '이웃 복'이 필요한 곳이 또 하나 있음을 어머니 덕에 알았습니다. 바로 병실입니다. 몇 년 전 2인실에 입원한 환자를 돌보느라 병실에서 며칠 동안 지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있던 이웃 환자는 가끔 신음소리를 낼 뿐이었는데, 뒤이어 들어온 이웃은 특정종교와 관련된 말과 노래를 크게 틀어놓아 잠을 잘 수도 없고 쉴 수도 없었습니다. 직접 얘기했다가 싸움이 될까봐 간호사실에 얘기하자 간호사실에서 병실 규칙을 들어 중단시켰습니다. 어머니 병상 바로..

동행 2024.02.05

파리 대왕 (2024년 2월 3일)

어머니의 병실에 드나들며 다시 한 번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병실이나 대합실처럼 제한된 곳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적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 토막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많습니다. 어머니가 주무시는 시간에 잠깐씩 보았지만 그새 손바닥만한 책 두 권을 다 읽었는데 그 중 한 권은 입니다. 언젠가 이라는 표현을 처음 접했을 땐 '파리'가 프랑스 파리인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의 '파리'가 사람들이 싫어하는 곤충 파리라는 걸 알고 적잖이 부끄러웠습니다. 이 작품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의 작가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 1911-1993)이 1954년에 발표한 첫 소설로, 전쟁 대피 중에 고립된 섬에 추락한 비행기에 함께 탔던 소년들이 섬에서 자기들끼리 사회를 이루..

동행 2024.02.03

한국의 '호빗들' (2024년 1월 31일)

'호빗(Hobbits)'은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영국 작가 톨킨(J.R.R. Tolkien)의 소설에 등장하는 작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 키의 절반쯤 되는 키에 맨발로 다니는데, 인류 종족 중 하나이거나 인류의 가까운 친척으로 묘사됩니다. '반지의 제왕 (The Lord of the Rings)' 속 호빗들은 단순 소박한 삶을 영위하지만, 그들의 세상인 '가운데 땅: 중간계 (The Middle Earth)'가 위험에 처할 때는 온 힘을 다해 싸웁니다. 그 호빗들이 지금 한국에도 있습니다. 아늑한 지하굴에 사는 톨킨의 호빗들과 달리 한국의 호빗들은 병실 한쪽 구석에 놓인 침대를 집 삼아 방삼아 생활합니다. 그들은 톨킨의 호빗들처럼 눈에 띄는 차림으로 병실을 오가는 간병인 아주머니들입니다..

동행 2024.01.31

동신병원 '은탁 선생' (2024년 1월 28일)

룸메이트는 TV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지만 SBS에서 시즌3까지 방영했던 '낭만닥터 김사부'의 열렬한 팬입니다. 그가 그 드라마에 빠져든 건 그 드라마가 얘기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관에 부합하기 때문일 겁니다. 일터에선 무엇보다 실력이 있어야 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실력을 발휘해야 하고, 그 바탕엔 인간, 특히 약자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머니가 20일 넘게 누워 계신 동신병원은 '남만닥터 김사부'가 일하는 '돌담병원'과 많이 다를 겁니다. 돌담은 드라마 속에 있고, 동신은 서대문구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제 동신병원에서 돌담병원 '은탁 선생'처럼 멋진 간호사를 발견했습니다. 제 시력이 워낙 나빠 그의 명찰에 적힌 이름을 보진 못했지만 그는 틀림없는 '은탁 선생'입니다. 가끔 마..

동행 2024.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