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731

김수자 전시회 '동심원' 3 (2023년 9월 13일)

김수자 씨의 전시회 '동심원 (Concentric Circles)'이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갤러리 담에서 진행 중입니다. 어제 예고한 대로 오늘은 그 전시를 소개하는 영문 자료를 올립니다. 중간에 갑자기 글씨가 커진 건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소치입니다. Press Release on Kim Soo-ja Solo Exhibition Color Pencils Erasing Digital Stains Amid the ever-increasing influence of social network services (SNS), the world grows more shallow and noisy than any other time. The digital craze encourages peopl..

동행 2023.09.13

김수자 전시회 '동심원' 2 (2023년 9월 12일)

어제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갤러리 담에서 일러스트레이터 김수자 씨의 전시회 '동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래에 전시회 소개글을 옮겨둡니다. 지면 관계상 오늘은 우리말로 쓴 글만 올리고 내일은 영어로 쓴 글을 올리겠습니다. 글을 쓴 사람이 누구냐고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색연필로 지우는 디지털시대의 얼룩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영향력이 날로 확대되며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럽고 천박하다. 사람들은 디지털 광풍을 타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오염시킨다. 가장 큰 해악을 저지르는 건 어줍잖은 지식을 떠벌려 소음을 가중시키는 사람들과 예술가연함으로써 예술의 격을 떨어뜨리는 사람들이다. 40년 경력의 일러스트레이터 김수자는 특유의 묵묵함으로 소음쟁이들과 사이비 예술가들이 남기는 시대..

동행 2023.09.12

노년일기 188: 나의 잘못! (2023년 9월 6일)

먹는 것, 그중에서도 단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는 제 룸메이트가 단 것을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흰밥, 떡, 팥빵, 과자, 유과, 곶감, 수박, 잼, 고구마, 콜라 등... 오래 좋아하던 것들과는 멀어지고 양배추, 토마토, 버섯, 우유, 오이, 당근, 미역, 두부, 톳, 콩 등과 더 돈독한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혈당이 많이 높아져서 식이요법이 필수가 된 지금, 룸메는 어떤 마음일까요? 좋아하는 떡과 잼 바른 빵을 먹지 못하게 되어 기분이 나빠졌을까요? 아니면, 그래도 아직 먹을 수 있는 게 많으니 다행이라고 안도할까요? 그의 마음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음식 만들기 좋아하는 제가 그의 혈당을 올리는 데 한몫했다는 것이지요. 그가 어린 아이였을 때, 막내아들 귀엽다며 사탕을 물려주시던 아..

동행 2023.09.06

김수자 전시회 '동심원' 1(2023년 9월 3일)

가끔 이 블로그에 일러스트레이터 김수자 씨의 그림을 올릴 때가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김수자 씨는 제 동생 중 한 명인데, 그는 여러모로 언니인 저보다 훌륭합니다. 그가 근 3년 혈액암으로 고생할 때는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고통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지만 고통은 나눌 수 없는 것... 그가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주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투병 전후에 그린 그림들을 모아 북촌 윤보선 가 부근 갤러리 담에서 전시회를 엽니다. 11일부터 20일까지 낮 12시부터 열린다니 시간이 허락할 때 찾아와 격려해 주시면 깊이 감사하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제가 특별히 감사를 표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카페에 다달이 선결제를 해주는 수양딸 ..

동행 2023.09.03

노년일기 187: 아이러니 (2023년 8월 30일)

가끔 '저 사람은 다른 건 몰라도 음식점만은 안 했으면 좋겠어' 라고 하는 말을 듣습니다. '저 사람은 다른 일은 다 해도 좋으니 아기 돌보는 일은 안 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보고 음식점만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할 때는 대개 그 사람이 깔끔하지 않거나 인상이 너무도 험악하여 소화불량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을 때입니다. 누군가를 보고 아기 돌보는 일만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면, 그건 그 사람이 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맡은 일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인생은 아이러니라는 말도 있지만, 그 일만은 안 했으면 좋을 사람이 그 일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가족 덕에 매일 병실에 드나들며 다양한 환자들과 의료종사자들을 접하다 보니 ..

동행 2023.08.30

노년일기 186: 당신을 생각합니다 (2023년 8월 28일)

칠십여 년 생애 처음으로 병원에서 밤을 보내게 된 당신을 생각합니다. 수전 손택은 '질병은 은유가 아니'라고 했지만, 당신을 입원시킨 질병은 무수한 해석을 품은 은유이겠지요. 당신은 평생 생각해 보지 않았던 당신의 몸에 대해 생각할 겁니다. 당신은 잊고 살다시피한 당신의 나이에 대해서도 생각할 겁니다. 그 생각이 당신의 이성을 고양시키길, 우울이나 비관을 부추기진 않기를 바랍니다. '제트'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빨랐던 당신이니, 당신의 몸은 제 몸의 서너 배쯤 일해야 했을 겁니다. 부디 당신 몸의 노고를 위로해주길 바랍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당신은 다양한 '처음'을 경험하겠지만, 어떤 '처음'에도 겁먹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전에 겪었던 모든 처음들처럼 지금 겪는 처음들도 곧 익숙해질 테니까요. 아무..

동행 2023.08.28

'마중'해야 '배웅'한다 (2023년 8월 14일)

2주 전인가 '나는 솔로'를 보다가 '뭐지?' 했던 적이 있습니다. 먼저 만남의 장소에 도착해 있던 사람이 새로 온 사람을 맞이하며 자신이 '배웅' 나왔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중'이라고 해야 할 때 배웅이라고 하는 게 매우 이상했지만 너무 긴장해서 실수하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 후에도 마중이라는 말을 써야 하는 경우 언제나 배웅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놀라웠는데 더 놀라운 건 그 사람의 '자기 소개'였습니다. 어른들의 단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에게나 어울릴 '마중'과 '배웅'의 혼동을 거듭한 그 사람이 소위 서울 명문대 출신의 직장인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저지른 실수 -- 같은 실수를 두 번 이상 하면 '실수'가 아니고 '실력'이라 하지요..

동행 2023.08.14

노년일기 180: 고통의 시한 (2023년 8월 6일)

어머니는 제가 아는 누구보다 외출을 좋아하셨고 걷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여든이 넘어서도 주말에 밖에서 두 딸과 점심을 하시고 나면 1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어 귀가하시곤 했습니다. 중년엔 등산을 즐기셨고 노년 초입엔 건강을 위해 춤을 배우시기도 했습니다. 올봄 만 아흔셋을 넘기신 어머니가 얼마 전부터 다리가 아프고 고꾸라질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가끔 통증의학과에 가서 주사를 맞으시면서 견디셨습니다. 그러던 어머니가 나흘 전 집 앞 경로당에서 함께 사는 맏며느리에게 전화를 하셨다고 합니다. 혼자 집에 갈 수가 없으니 경로당에 와서 자신을 데리고 가 주었으면 좋겠다고. 100 미터도 안 되는 거리인데... 이튿날 아침엔 아예 혼자 일어서는 일조차 어렵게 되었고, 처음으로 그런 상태가 되신 어머니는 극심..

동행 2023.08.06

불을 끄면 (2023년 8월 3일)

수양딸 덕에 한국에서 가장 첨단적인 백화점이라는 '더현대' 구경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그냥 백화점이 아니라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2023년 현재 한국인의 생활 방식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보았던 무수한 사람들, 지하 6층 주차장까지 빼곡히 들어찬 자동차들... 그곳의 사람들은 그곳 밖의 사람들처럼 '다름'에 민감하겠지만, 그 '다름'은 불만 끄면 모두 사라지겠지요. 셸 실버스틴의 시가 얘기하듯... 다르지 않아요 땅콩처럼 작든, 거인처럼 크든, 우린 다 같은 크기에요 불을 끄면. 왕처럼 부유하든, 진드기처럼 가난하든, 우리의 가치는 다 같아요 불을 끄면. 붉든, 검든 주황 빛이든, 노랗든 하얗든, 우린 다 같아 보여요 불을 끄면. 그러니 모든 걸 제대로..

동행 2023.08.03

졸부들의 합창 (2023년 7월 27일)

한 동네에 오래 살면 동네를 닮는 걸까요? 오래된 동네의 주민들은 대개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옷으로 얘기하면 헌옷 같은 것이지요. 집에서 멀지 않은 오래된 동네를 '재개발'한 곳에 고층아파트 타운이 생기며, 본래 그 동네에 살던 사람들과는 좀 달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새 동네의 주민들은 새옷 같아서 가만히 있어도 티가 나는데 덧붙여 티를 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입주한 아파트들의 값이 비싸기 때문에 그곳에 산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아파트들이 늘어나며 제 단골 카페에도 새로운 고객들이 늘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목소리가 크다는 겁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애, 너 뭐 먹을래?" "난 아아!" 하고 외치는 식인데 카페에 자리잡은 후, 즉 카페가 조그맣..

동행 2023.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