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타이레놀 친구 (2025년 2월 16일)

divicom 2025. 2. 16. 11:20

아주 잠깐이라도 삶에 취해 죽음을 잊을라치면

오래된 친구가 찾아옵니다. 친구는 제 눈과 뺨을

벌겋게 물들이며 주위의 소음을 지웁니다. 몸은

있던 곳에 있는데, 그 장소와 함께 있던 사람 모두

멀어지는 느낌이 들고, 발이 바닥에서 떨어져 둥둥

떠있는 것  같습니다.

 

혈압이나 혈당이 갑자기 상승한 걸까요? 언젠가처럼

앨러지 공격을 받은 걸까요? 뜨거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물음표들을 못 본 척 하던 일을 하니

우리 집 의사가 타이레놀을 먹으라 합니다. 

 

제 몸은 제 정신보다 훨씬 정직합니다. 조금 힘에

부치면 바로 고열로써 제게 경고하는데, 한번은

그 경고를 무시했다가 병원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경고가 오면 타이레놀을 먹고 죽은 듯이 쉬어야 합니다.

쉬고 나서 다시 삶이라는 기차에 올라타는 거지요.

 

타이레놀 덕에 다시 일어나 책상 앞에 앉습니다.

아스피린을 먹지 못하는 제게 타이레놀은 참 좋은

친구입니다. 코로나19에 걸렸을 때도 타이레놀을

먹으며 버텼습니다. 조금 일찍 만났으면 그전에 겪은

고통도 많이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타이레놀 콜드-에스 정'이 담긴 곽을 찬찬히 살펴

봅니다. 6면 모두 한글만 쓰여 있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수입자는 '한국존슨앤존슨판매'입니다.

존슨앤존슨은 베이비 로션 회사로만 알았는데, 궁금해서

영문 위키피디아를 찾아봅니다. 본래 이 약을 개발해 판매한

것은 미국의 가족 회사인 맥닐 러버러토리인데, 1959년에

존슨앤존슨에 팔았다고 합니다.   

 

감사의 마음이 솟구칩니다. 타이레놀을 개발한 맥닐가,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는 존슨앤존슨, 제가 먹는 약을

만든 인도네시아 일꾼들, 제게 이 약을 먹으라고 해준

우리 집 의사... 무엇보다도 제가 고열로 둥둥 떠다닐 때

저를 붙잡아 앉혀 주는 타이레놀에게 감사합니다.

고맙다, 타이레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