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ㅌ씨와 ㄷ씨 (2025년 3월 17일)

divicom 2025. 3. 17. 12:28

어젠 처음으로 제 집을 방문한 귀한 손님 덕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4김씨'라고

부르는 둘째 수양딸 가족입니다. 수양딸 부부의

아들은 ㅌ씨와 ㄷ씨인데, 나이 차이는 있되

둘 다 초등학교 입학 전입니다.

 

전에도 ㅌ씨와 ㄷ씨를 만난 적이 있지만, 그땐

두 사람이 엄마 배 속에 있을 때였습니다. 엄마가 

힘들 때 찾아온 ㅌ씨가 참 고마웠습니다.

ㅌ씨가 태어나고 그가 자라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며

수양딸이 참 좋은 엄마로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몇 해 후에 태어난 ㄷ씨는 ㅌ씨와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조금 더 자유롭다고 할까요? 만나본 적 없으니 혼자

상상하고, 산책길에 남의 아이들을 보며 생각만 했습니다.

 

그러던 ㅌ씨와 ㄷ씨를 드디어 만났으니, 그 반가움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두 사람 다 수줍음과 당당함이

적당히 섞인 태도로 저와 룸메이트를 매료했습니다. 

 

햇살만 놀던 거실이 어린이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저러다 다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어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집안 지형지물을 이용해 노는데, 특히 소파 등받이

위의 좁은 담 위에서 거꾸로 떨어질 때는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ㅌ씨가 보드게임을 하자고 하는데 보드판도 주사위도

없기에 만들어서 해보자고 하니 선선히 그러자고 했습니다.

달력 종이 한 장과 싸인펜을 주니 종이에 쓱쓱 보드판을

그렸습니다. 고무 지우개의 양쪽 곡면을 잘라내고 주니

ㅌ씨는 6면에 하나, 둘, 셋... 점을 그려 넣었습니다.

 

ㅌ씨와 제가 즐겁게 보드게임을 하는 동안 ㄷ씨는 우유컵에

오렌지를 넣어 새로운 음료를 만들고, 가장자리를 조금 먹은

쿠키로 컵을 덮어 '뚜껑'이라며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ㄷ씨가 제일 좋아한 건 식물이었습니다.

 

베란다에 핀 꽃과 겨우내 열려 있는 토마토에 대해

얘기하더니 햇살에 말리고 있는 빨간 고추를 만지며

좋아했습니다. 화분에 물도 주었는데 모든 화분에 골고루

주고 싶어하는 것을 보니 '공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ㅌ씨와 ㄷ씨와 보낸 서너 시간은 정말 신나고 신기한

시간이었습니다.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지만, 그때

두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체력과 지력을 유지하고

가능한 한 외모의 악화를 늦추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ㅌ씨와 ㄷ씨를 이 세상에 데려온 수양딸 부부에게 깊이

감사하며, 4김씨 가족이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