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844

실비아 플라스: "죽음은 예술" (2021년 12월 4일)

시는 달고나처럼 맛있습니다. 달고나를 매일 먹으면 안 되는 것처럼 좋아하는 시집도 가끔 보아야 합니다. 며칠 만에 의 Vol.2 "Contemporary Poetry"를 펼쳤습니다. 613쪽. 실비아 플라스 (Sylvia Plath: 1932-1963)의 '나자로 부인 (Lady Lazarus)'의 한 연이 훅 들어옵니다. "Dying is an art, like everything else. I do it exceptionally well." "죽음은 모든 것이 그렇듯, 예술이라네. 난 그걸 특별히 잘하네." 영어 단어 'art'는 흔히 '예술'로 번역되지만 '기술'의 뜻으로도 많이 쓰입니다. 연마해서 얻게 되는 기술이지요. 잘 죽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고 자살도 연습해야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 겁니..

오늘의 문장 2021.12.04

독서: 수전 손택의 말 (2021년 11월 29일)

일년 열두 달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11월. 새벽 같고 황혼 같은 11월. 책 덕에 춥지 않은 11월. 열흘 전에 읽은 이 떠오릅니다. "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세상이 못 견디겠으면 책을 들고 쪼그려 눕죠. 그건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 -- , 마음산책, 번역 김선형, p. 66 수전 손택: Susan Sontag: 1933-2004

오늘의 문장 2021.11.29

전혜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2021년 10월 16일)

시월 한가운데에 들어선 겨울 같은 추위가 옛날을 소환합니다. 책장을 기웃거리다 전혜린 (1934-1965)의 를 집어 듭니다. 전혜린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가슴 속이 싸해집니다. '이런 완벽한 순간이 지금 나에게는 없다. 그것을 다시 소유하고 싶다.' 는 소제목에 이어지는 문장들: "예전에는 완벽한 순간을 여러 번 맛보았다. 그 순간 때문에 우리가 긴 생을 견딜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을....." --p. 97, 전혜린, , 삼중당문고 제게도 가끔 그런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오늘 동네 횡단보도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갑작스런 추위도 하늘의 아름다움을 지우진 못합니다. 아니 추위는, 아름다운 문장 아래 그어진 밑줄처럼 하늘과 녹슬고 있는 나뭇잎들을 강조합니다.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는 아..

오늘의 문장 2021.10.16

경험, 반항. 죽음 (2021년 10월 4일)

작은 노트에서 9월 23일에 적은 일부를 만났는데 이 책의 원제가 무엇인지, 누가 번역했는지는 써놓지 않았으니 답답합니다. 원제가 무엇이든 번역자가 누구이든 원저자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분명하고, 글이 전하려는 메시지 또한 분명하니 아래에 옮겨둡니다. 말없음표는 문장이 생략되었음을 뜻합니다. 먼저 인용 구절을 쓰고 괄호 안에 제 생각을 적습니다. p. 201 경험을 통해 배울 만큼 나이를 많이 먹은 이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경험을 통해 배우는 사람도 많습니다. 나이들어가며 조금이나마 지혜로워진다면 경험에서 배운 것을 숙고하며 실천하는 덕이겠지요.) p. 242 한 사람의 인생을 특징 짓는 것은 천성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반항이다. 인간은 여러 가지 방향으로 ..

오늘의 문장 2021.10.04

게으름에 대한 찬양 (2021년 10월 1일)

새해나 새달에 들어설 때면 대개 '더 열심히 00해야겠다'는 각오들을 다지는데, 저는 오히려 반대입니다. 구월은 계단을 한 번에 몇 개씩 오르듯 살았지만 시월엔 좀 게을러져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구월 끝자락에 몸살이 나서 며칠 누워 있으려니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최소한 나잇값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좋아하는 카페에 갔더니 테이블에 쌓인 책 중 한 권이 자꾸 말을 걸었습니다. .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버트란드 러셀 (Bertrand Russell: 1872-1970)의 책입니다. 못 마시던 커피를 마시게 된 것만 해도 즐거운데 친구 같은 책을 만나 '게으름을 찬양'하는 소리를 들으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게으름에 관한 구절은 마음에 담고, 작은 노트엔 ..

오늘의 문장 2021.10.01

추석달, 천고마비, 오곡백과 (2021년 9월 22일)

어제 추석 새벽엔 비 뒤로 숨었던 달이 오늘 새벽엔 환히 가을 오는 길을 밝히고 있습니다. 달을 올려다보며 두 손을 마주잡고 갖가지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과 살아가느라 애쓰는 모든 동행들을 생각하니 눈이 젖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동행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어제 본 풍경이 떠오릅니다. 어머니댁에 가며 본 사람들, 나무들, 길에 떨어져 구르던 푸르고 붉은 감들, 검은 개, 어머니댁에서 만난 가족들 -- 아흔 넘은 어머니부터 태어난 지 한 달을 갓 넘긴 아기까지 --,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 본 파란 하늘 흰 구름, 길가의 꽃들과 그들을 흔들던 맑은 바람, 호기심 가득한 고양이의 눈, 과자 부스러기를 보..

오늘의 문장 2021.09.22

'자연인' (2021년 8월 29일)

지구별, 대한민국, 서울. 이곳에 산 지 수십 년이지만 이곳은 여전히 낯설어 이곳을 걷다 보면 늘 여행 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진면목과 마주하지 못하는 여행은 허사... 제가 매일 하는 여행은 유의미한 걸까요?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여행을 통해 자연을 발견하고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지요. 서울 한복판에 살며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해본 사람은 알 겁니다. 그 일이 가능하다는 걸. 지리산 속이 '자연'이듯 서울 한복판도 '자연'이라는 걸. 1973년 처음 만나 꽤 오랫동안 친구가 되어주었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 (Henry D. Thoreau: 1817-1862)... 오늘 문득 펼친 그의 일기에도 같은 생각이 있습니다. 1856년 8월 30일자 일기에서 몇 구절 옮겨둡니다. 이 일기가 쓰인..

오늘의 문장 2021.08.29

어느 날의 독서 일기 (2021년 8월 22일)

새책을 읽지 못하니 노트에 적어둔 구절을 읽습니다. 박준상 교수의 에서 발췌한 구절들입니다. 91쪽부터는 모두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혁명적 정치인인 사드 후작 (1740-1814)에 관한 기술이거나, 사드의 말이라고 합니다. 사드의 이름에서 '가학증'을 뜻하는 '사디즘 (sadism)'이 나왔습니다. 말없음표는 단어나 문장이 생략됐음을 뜻합니다. 45쪽: "사상가가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입구에 이렇게 쓰여져 있다. '너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 니체 82쪽: 어떻게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91-92쪽: 사드는 절대적으로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글쓰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집요하게 수행한 작가이다... 다시 말해 그가 언어를 통해, 언어를 거쳐 완벽한 어둠으로..

오늘의 문장 2021.08.22

두려움에 갇힌 사람들에게 (2021년 8월 15일)

코로나19 팬데믹 공포가 세계를 사로잡고 있다고들 하지만 두려움에 잡혀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은 코로나19가 오기 전에도 두려움의 포로였습니다. 가진 것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주변 사람들이 떠나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미래가 현재보다 궁핍하거나 불편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두려워하는 사람에겐 모든 것이 두려움의 대상이지요. 두려움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들과 기관도 많았습니다. 정치인들과 종교기관이 대표적이지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두려움 바이러스' 또한 강력한 힘을 얻었습니다. '나는 바이러스 따윈 두렵지 않아!'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입으로 나오는 말과 마음 속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아주 많으니까요. 진실로 두려움이 없는..

오늘의 문장 2021.08.15

8월 1일의 질문 (2021년 8월 1일)

8월은 일요일에 왔습니다. 출장지에 하루 먼저 도착해 하루 쉬고 다음날부터 일하려는 사람 같습니다. 8월이 일요일에 온 것은 어쩌면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시간의 배려일지 모릅니다. '2021년에 들어선 지 일곱 달이 지났다, 너는 그 일곱 달을 뭐 하는 데 썼느냐?' 절박한 매미들의 울음 사이로 시간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2021년 8월 1일의 우리는 나날의 삶과 그 삶이 수반하는 무게에 눌려 질문을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뫼비우스의 띠를 닮은 숫자 8 8월이야말로 잃어버린 질문을 찾아내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어디서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을 땐 19세기 영국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 (Alfred, Lord Tennyson: 1809-1892)의 시 '합창 (Choric Song)의 2연에서 시작..

오늘의 문장 2021.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