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855

이삭 줍기 (2022년 7월 19일)

'이삭 줍기' 하면 제일 먼저 장-프랑수아 밀레 (Jean-Francois Millet: 1814-1875)의 유화 '이삭 줍는 여인들 (The Gleaners)'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삭 줍기'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가 자신의 일기를 표현한 말입니다. 그는 1837년부터 1862년 5월 6일 사망하기 반년 전까지 쓴 일기의 첫머리에 제목처럼 "Gleanings or What Time Has Not Reaped of My Journal" 이라고 썼습니다. "이삭 줍기 또는 시간이 거둬가고 남은 것들"쯤 되겠지요. 그의 일기는 2백만 단어 분량이라고 하는데, 장편소설이 대개 8만 단어에서 10만 단어로 이루어짐을 생각할 ..

오늘의 문장 2022.07.19

누워야겠다 (2022년 6월 11일)

이 블로그에 고백한 대로 저는 셸 실버스틴 (Shel Silverstein)의 팬입니다. 그가 떠난 후에야 그를 알았으니 어리석은 팬이지요. 오늘은 그의 시 '서 있는 건 어리석어'를 읽으며 웃었지만, 시의 내용과 달리 다시 눕진 않았습니다. 이 시를 소개하는 것처럼, 앉아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으니까요. Standing Is Stupid Standing is stupid, Crawling's a curse, Skipping is silly, Walking is worse. Hopping is hopeless, Jumping's a chore, Sitting is senseless, Learning's a bore. Running's ridiculous, Jogging's insane-- Gues..

오늘의 문장 2022.06.11

유월이 오면 (2022년 5월 31일)

오월은 사월보다 스물네 시간이나 길었지만 새로이 깨달은 것은 두엇뿐입니다. 저만치 유월의 정수리가 보입니다. 유월엔 오월에 놓친 것들을 찾고 싶습니다. 영국의 계관시인 로버트 브리지스 (Robert Bridges: 1844-1930)의 노래처럼 유월이 우리 모두에게 기쁨의 보따리를 선물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 선물을 찾아내는 건 우리에게 달려 있겠지요. 의사이며 시인이고 많은 찬송가를 쓴 브리지스... 그를 보며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상기합니다. When June Is Come When June is come, then all the day I’ll sit with my love in the scented hay: And watch the sunshot pal..

오늘의 문장 2022.05.31

이기적인 아이의 기도 (2022년 5월 17일)

사랑은 참으로 묘한 것입니다. 처음 보는 순간 '이 사람이다!' 하고 빠져들게 하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늘 만나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하다 그가 떠난 후에야 사랑이었음을 아는 일도 있습니다. 셸 실버스틴(1930-1999)에 대한 저의 사랑은 뒤늦은 사랑입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엔 존재조차 알지 못하다가 그가 떠나고 2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사랑에 빠졌으니까요. 어쩌면 그는 저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많을 것을 알고 그렇게 많은 시와 그림과 책을 남긴 것인지 모릅니다. 큰사람이 작은 사람을 위로하는 방식이지요. 그를 가까운 친구에게 소개했더니 그도 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친구가 사다준 셸의 책을 열 때는 기대와 슬픔이 동시에 찾아옵니다. 그의 반짝이는 위트와 그 위트가 이 세상을 완전히 떠났음을 깨닫는..

오늘의 문장 2022.05.17

대만을 배울 시간 (2022년 5월 6일)

저는 대만을 좋아합니다. 온화한 기후도 좋고 그 기후 같은 사람들도 좋습니다. 10년 전인가 국제회의 참석 차 가본 대만은 외화내빈 (外華內貧)적 한국과 정반대여서 좋았습니다. 정신없이 빠르고 현란한 서울과 달리 담담해 보이는 타이페이가 편했습니다. 피로해 보이거나 너무 바빠 보이는 한국인들과 달리 밝고 여유로워 보이는 시민들도 좋았습니다. 밤늦게 지방에서 돌아와 대만 외교부가 타이페이 공항 부근에 잡아준 Pearl Hotel에 들어갔습니다. 호텔 부근이 예전 사회주의 국가처럼 어두웠습니다. 좁은 입구를 들어서자 마자 프론트데스크였는데, 그 데스크도 작고 그 앞 로비 비슷한 공간도 좁고 장식 또한 매우 조촐했습니다. 한 사람뿐인 듯한 직원에게 내일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 하니 모닝콜과 택시 대기를 부탁..

오늘의 문장 2022.05.05

오월의 기도 (2022년 5월 3일)

피는 꽃이 많은 계절엔 시드는 꽃도 많습니다. 피는 꽃엔 박수를 쳐주고 시드는 꽃엔 숨을 불어넣습니다. 티베트 불교의 스승 한 분의 기도가 떠오릅니다. 하루헌에서 나온 에 실린 1대 판첸 라마 (Panchen Lama)*의 기도입니다. "고통이라면 나는 조금도 바라지 않습니다. 행복이라면 나는 아무리 많아도 좋습니다. 이 마음은 다른 사람도 나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도 내 일처럼 기뻐하겠습니다." * 판첸 라마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에 필적하는 지도자이자 학자.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여겨지며 환생으로 후계자가 정해짐.

오늘의 문장 2022.05.03

<어린 왕자>를 읽는 시간 3 (2022년 4월 25일)

'사랑'은 무엇일까요? 늘 보고 싶은 것. 함께 있고 싶은 것. 자꾸 뭔가를 주고 싶은 것. 그를 위해 내 시간을 낭비하는 것. 21장의 마지막 문단에서 여우는 이렇게 말합니다. And he went back to meet the fox. "Goodbye," he said. "Goodbye," said the fox. "And now here is my secret, a very simple secret: It is only with the heart that one can see rightly; what is essential is invisible to the eye." "What is essential is invisible to the eye," the little prince repeated, ..

오늘의 문장 2022.04.25

김대중 대통령의 쉰 목소리 (2022년 4월 18일)

김택근의 묵언 성공한 대통령이 있었다 김택근 시인·작가 2008년 10월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대검찰청 국정감사장에서 김대중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다. 100억원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 사본을 흔들며 김대중 비자금의 일부로 추정된다고 수사를 촉구했다. 퇴임 대통령 김대중은 다음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김택근 시인·작가 “한나라당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 내가 100억원의 CD를 가지고 있다는 설이 있다고. 간교하게도 ‘설’이라 하고 원내 발언으로 법적 처벌을 모면하면서 명예훼손의 목적을 달성코자 하고 있다. 나는 그동안 사상적 극우세력과 지역적 편향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 엄청난 음해를 받아왔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는다. 하느님이 계시고 나를 지지하는 많은 국민이 있다. 그리고 당대에 오해하는 사람들도 ..

오늘의 문장 2022.04.18

잃어버린 언어 (2022년 4월 16일)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인천과 제주를 오가던 정기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돼, 삼백 여 명이 사망, 실종되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박근혜 씨가 대통령 직에서 파면되고 문재인 씨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구할 수 있었던 세월호의 승객들을 왜 구하지 않았던 건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소위 MZ세대 한국인들을 기성세대 한국인들이 이해할 수 없게 된 데는 세월호 사건이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믿었던 어른들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걸,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걸 가르쳐준 세월호 사건... 추모도 위로도 오직 말에 그치는 것... 입을 닫습니다. 셸 실버스틴이 '잊어버린 언어 (Forgotten Language)'라고 표현한 것은 어른이 되어가며 잊어버린 감수성을 뜻하겠지만, 우리..

오늘의 문장 2022.04.16

<어린 왕자>를 읽는 시간 2 (2022년 4월 13일)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마트가 문을 열었습니다. 대학 캠퍼스에 지은 상가 건물 1층 거의 전부를 차지한 것입니다. 대학들이 캠퍼스 안에 상가를 만들어 수익사업을 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식당이나 카페, 영화관 같은 게 아니고 이마트라는 게 좀 어색합니다. 어쩌면 이마트의 캠퍼스 입점이 어색한 게 아니고 그것을 어색하게 느끼는 제가 풍조에 뒤진 거겠지요. 이마트와 동네 수퍼들의 차이는 무엇보다 '관계'일 겁니다. 이마트를 자주 간다 해도 '단골'을 알아보는 직원은 드뭅니다. 이번에 새로 생긴 이마트에선 계산원 자체를 보기 힘듭니다. 마트 한 쪽에 계산원을 대신해 계산해 주는 기계들이 죽 놓여 있습니다. 소위 '4차 산업혁명기'에는 가상의 관계가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관계를 대체합니다. 어떤 사람..

오늘의 문장 2022.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