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855

완벽한 인간을 위한 자연의 시도 (2023년 3월 6일)

오래전 읽은 책이 문득 찾아와 영 떠나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하는 수 없이 다시 읽어야 합니다. 수십 년만에 미국 작가 손턴 와일더 (Thornton Wilder: 1897-1975)의 를 읽고 있는 이유입니다. 제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엔 대학 축제 때 연극 '우리 읍내'를 공연하는 학교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3막으로 이루어진 이 희곡은 그로버스 코너즈 (Grover's Corners)'라는 가상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읽은 2막의 문장 몇 개를 아래에 옮겨둡니다. 말없음표는 단어들이 생략됐음을 뜻합니다. "... every child born into the world is nature'..

오늘의 문장 2023.03.06

2월이 28일인 이유 (2023년 2월 14일)

어린 시절 저희 집 살림엔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신문을 세 가지나 구독하시니 어머니가 둘은 끊고 하나만 보면 안 되겠느냐고 하셨답니다. 아버지는 하루에 한 신문에서 한 가지만 배워도 한 달 신문값은 하는 게 아니냐고 말씀하셨고 어머니는 그 말씀이 맞다고 생각하여 다시는 신문을 끊자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제 인터넷 시대가 되었으니 종이 신문을 볼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는 여전히 신문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에선 포털사이트가 선정한 기사를 보거나 관심 있는 주제만 찾아 보게 되지만, 신문은 세상의 소식과 의견을 두루 보여주고 선정적 정보들이 주류인 인터넷과 달리 변치 않는 지식도 제공하니까요. 우리말 산책 집권자 이기심에 무너진 달력의 원칙 엄민용 기자..

오늘의 문장 2023.02.14

책상 위의 고양이 (2023년 1월 30일)

작년 가을쯤 고양이 한 마리가 제 책상 위 스탠드 아래에 자리 잡았습니다. 부드러운 흰 헝겊 피부, 검은 머리에 붙인 분홍 리본이 어여쁘지만 큰 눈의 눈썹이 위로 올라가고 입을 꾹 다물고 있어 제 게으름을 감시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새해 첫 달이 끝나가는 오늘에야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양이의 이름은 엘리엇으로 지었습니다. 미국인으로 태어나 영국인으로 죽은 T.S. 엘리엇의 시 '고양이 이름 짓기 (The Naming of Cats)' 때문입니다. 영문까지 쓰려니 너무 길어 대충 번역해 올려둡니다. 고양이 이름 짓기 고양이 이름 짓기는 어려운 일이야 쉬는 날 재미로 할 일이 아니야 이렇게 말하면 내가 미쳤다고 할지 모르지만 고양이에겐 세 개의 이름이 필요해 우선 가족..

오늘의 문장 2023.01.30

<월든>이 하는 말 (2022년 9월 15일)

어느새 9월의 한가운데입니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 사유하기 좋은 시간입니다. 8월 말 송파위례도서관 인문학 열전 수업 덕에 적어두었던 의 문장들 소개합니다. 아래의 문장들은 모두 1장 경제 (Economy)에 나옵니다. 말없음표는 문장의 생략을 뜻합니다. “Age is no better, hardly so well, qualified for an instructor as youth, for it has not profited so much as it has lost.” “나이가 많다는 게 젊음보다 나은 선생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그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나이 먹는 과정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기 때문이다.” “Most of the luxuries, and many of the so ca..

오늘의 문장 2022.09.15

텅 빈 캔버스 (2022년 8월 22일)

책의 다양함은 사람의 다양함을 닮았습니다. 심각한 사람, 웃기는 사람, 가슴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듯 어떤 책은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고 어떤 책은 소리 내어 웃게 하고 어떤 책은 먼 곳을 바라보게 합니다. 네델란드 화가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가 동생 테오 (Theo van Gogh: 1857-1891)에게 보낸 편지들은 읽을 때마다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줄곧 동생에게 신세를 지고 살아야 했던 형, 그 형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6개월 후 서른셋 젊은 나이에 사망한 동생... 에서 형이 동생에게 보낸 편지 일부를 옮기며 고흐처럼 '진리를 알고' 있으나 동료 인간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채 외로이 '나아가는' 천재들을 생각합니다. 우리 보통 인간들은 모두 그들에게 빚..

오늘의 문장 2022.08.22

그림자 경주 (2022년 8월 7일)

한낮 햇볕 속을 걸을 땐 언제나 귀여운 작은 아이가 제 앞에서 저와 함께 걷습니다. 제 몸의 4~5분의 1쯤 되는 제 그림자 ... 때로는 그 속에 숨고 싶습니다. 셸 실버스틴도 자기 그림자를 만났나 봅니다. Shadow Race Every time I've raced my shadow When the sun was at my back, It always ran ahead of me, Always got the best of me. But every time I've raced my shadow When my face was toward the sun, I won. -- Shel Silverstein. 그림자 경주 내가 내 그림자하고 경주할 때 해가 내 등 뒤에 있을 땐 언제나 내 그림자가 앞서 달려 나..

오늘의 문장 2022.08.07

아름다운 책 (2022년 8월 4일)

7월 끝자락, 하필 낮 기온이 35도를 오르내리는 날 저희 동네까지 찾아와준 친구의 손에 책 한 권이 들려 있었습니다. . 표지부터 속살까지 온통 하얀데 '전각, 篆刻 세상을 담다'부터 '글 석한남'과 출판사 이름으로 보이는 '廣場'까지 표지의 문자들은 모두 음각하듯 눌러 쓴 글씨이고, 표지 한가운데엔 붉은 색으로 전각된 '유음遊吟'이 눈밭에 앉은 장미꽃처럼 또렷했습니다. 표지 날개 안쪽에 " '유음'은 '정본 여유당전서 定本 與猶堂全書' 19권의 "세상 밖에 놀며 읊조리다 遊吟物外"에서 유래한 것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책을 펼치니 6.25전쟁 전후 부산의 작가들, 화가들, 지식인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던 후원자들에 대한 서술이 있고 '인장을 새겨서 제작하는 서예'인 전각 예술에 대한 소개가 이어..

오늘의 문장 2022.08.04

8월 시의 외침! (2022년 8월 1일)

7월 잔인한 마지막 주를 살아남은 살진 몸집에 8월 소금 품은 아침 이슬이 맺히고 흐르며 맥이 풀립니다. 새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 널브러진 정신이 살아낼 수 있을까, 살아내야 할까, 허둥댑니다. 문득 미국 시인 도로시 파커(Dorothy Parker: 1893-1967)의 시 '8월 (August)'의 외침이 들립니다. 'Summer, do your worst!' 그래, 여름아, 할 테면 해보아라! 널브러졌던 정신과 육체가 힘겹게 일어섭니다. 도로시 파커가 속삭입니다. '넌 살아낼 거야. 베테랑이잖아!' The Veteran Dorothy Parker When I was young and bold and strong, Oh, right was right, and wrong was wrong!..

오늘의 문장 2022.08.01

유산 (2022년 7월 30일)

재력과 권력의 세습으로 '개천의 용'이 멸종되어가는 세상에서 유산을 물려줄 수 없는 부모들은 자녀에게 미안함을 느끼기 쉽습니다. 그럴 땐 '결핍 속에서 창의력이 발현된다'는 사실과 의 몇 구절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월말이 올 때마다 월세와 공과금을 내느라 애쓸, '유산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의 아래 구절들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I see young men, my townsmen, whose misfortune it is to have inherited farms, houses, barns, cattle, and farming tools; for these are more easily acquired than got rid of. Better if they had been born in ..

오늘의 문장 2022.07.30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2022년 7월 28일)

더위는 육신을 점령하고 두통을 야기할 수도 있지만 정신을 점령하진 못합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점령당하진 않았으나 멍한 정신을 수돗물로 씻고 책을 봅니다. 우연히 펼친 책은 법정 스님의 . 책갈피에서 산바람 같은 것이 흘러나옵니다. 수돗물로나마 정신을 씻고 책을 보길 잘했습니다. 스님 말씀 대로 '읽지 않아도 될 글'은 읽을 필요가 없지만 '읽어야 할 글'은 읽어야 합니다. 그나저나 스님, 스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지요? -------------------------------------------------------------------- 110쪽: (법정 스님이 정채봉 선생을 기리며 쓴 글 중) "올 때는 흰 구름 더불어 왔고 갈 때는 함박눈 따라서 갔네 오고가는 그 나그네여 그대는 지금 어느 곳에..

오늘의 문장 2022.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