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숙 2632

김수자 전시회 '동심원' 1(2023년 9월 3일)

가끔 이 블로그에 일러스트레이터 김수자 씨의 그림을 올릴 때가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김수자 씨는 제 동생 중 한 명인데, 그는 여러모로 언니인 저보다 훌륭합니다. 그가 근 3년 혈액암으로 고생할 때는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고통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지만 고통은 나눌 수 없는 것... 그가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주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투병 전후에 그린 그림들을 모아 북촌 윤보선 가 부근 갤러리 담에서 전시회를 엽니다. 11일부터 20일까지 낮 12시부터 열린다니 시간이 허락할 때 찾아와 격려해 주시면 깊이 감사하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제가 특별히 감사를 표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카페에 다달이 선결제를 해주는 수양딸 ..

동행 2023.09.03

9월은 (2023년 9월 1일)

9월은 개선장군 귀뚜라미 웃음 소리 매미 시신들 위를 날고 오래 전 어둠을 빼앗긴 밤 저만치 엉거주춤 슈퍼블루문* 달아나네 14년 후에나 돌아온다고 지금 나를 조롱하는 자들 14퍼센트쯤 바라기는 41퍼센트쯤 오늘의 매미처럼 적막한 날 9월은 개선장군 승리의 슬픔으로 반짝이는 *슈퍼블루문(super blue moon): 2023년 8월 31일 밤 한반도에 찾아온 보름달. 14년 후에 다시 온다 함.

나의 이야기 2023.09.01

조문을 놓치다 (2023년 8월 19일)

젊은 시절엔 매일 죽는다는 사실로부터 위로 받았지만 머리가 하얘진 후로는 이달처럼 죽음을 가까이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재해로 인한 사망, 젊은이들의 사고사와 돌연사, 어머니의 입원과 노쇠한 어른들에 대한 걱정 등이 끝없이 죽음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러다 정작 중요한 사별의 자리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카톡 사용자였으면 알았을지도 모르는데 섬처럼 살다가, 가시는 분께 마지막으로 인사 올리고 그분의 아들을 위로할 기회를 놓친 겁니다. 기억은 조문보다 오래가니 기억으로나마 오늘의 송구함을 덜어볼까 합니다... 툭 툭 던지는 듯한 말투로 여린 마음을 애써 감추시던 그분... 그분을 생각하며 기도하다 보니 눈이 젖어옵니다. 마침내 고단하고 외로운 생애를 벗어나신 우말순 여사님... 최선을 다하셨으니 부디 자유와 평..

나의 이야기 2023.08.19

'마중'해야 '배웅'한다 (2023년 8월 14일)

2주 전인가 '나는 솔로'를 보다가 '뭐지?' 했던 적이 있습니다. 먼저 만남의 장소에 도착해 있던 사람이 새로 온 사람을 맞이하며 자신이 '배웅' 나왔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중'이라고 해야 할 때 배웅이라고 하는 게 매우 이상했지만 너무 긴장해서 실수하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 후에도 마중이라는 말을 써야 하는 경우 언제나 배웅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놀라웠는데 더 놀라운 건 그 사람의 '자기 소개'였습니다. 어른들의 단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에게나 어울릴 '마중'과 '배웅'의 혼동을 거듭한 그 사람이 소위 서울 명문대 출신의 직장인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저지른 실수 -- 같은 실수를 두 번 이상 하면 '실수'가 아니고 '실력'이라 하지요..

동행 2023.08.14

찰나를 위한 기도 (2023년 8월 11일)

후두둑... 쏴아... 자박자박... 빗소리는 세상의 소리를 지우고 일찍 깬 새벽은 늙은 구도자처럼 울먹이며 기도합니다. 저 비에 젖는 모든 것들을 동정하소서, 자라는 것들과 자라지 못하는 것들 모두의 목마름을 달래 주소서. 존재의 유한함을 각성하여 무한한 순간을 살게 하소서. 이국으로 치닫던 발길 되돌려 제 안으로 자박자박 들어가게 하소서. 이윽고 사랑하게 하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QS2QVXh9Mb8&ab_channel=JimmyStrain-Topic

나의 이야기 2023.08.11

불을 끄면 (2023년 8월 3일)

수양딸 덕에 한국에서 가장 첨단적인 백화점이라는 '더현대' 구경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그냥 백화점이 아니라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2023년 현재 한국인의 생활 방식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보았던 무수한 사람들, 지하 6층 주차장까지 빼곡히 들어찬 자동차들... 그곳의 사람들은 그곳 밖의 사람들처럼 '다름'에 민감하겠지만, 그 '다름'은 불만 끄면 모두 사라지겠지요. 셸 실버스틴의 시가 얘기하듯... 다르지 않아요 땅콩처럼 작든, 거인처럼 크든, 우린 다 같은 크기에요 불을 끄면. 왕처럼 부유하든, 진드기처럼 가난하든, 우리의 가치는 다 같아요 불을 끄면. 붉든, 검든 주황 빛이든, 노랗든 하얗든, 우린 다 같아 보여요 불을 끄면. 그러니 모든 걸 제대로..

동행 2023.08.03

8월, 위엄 있고 인상적인 (2023년 7월 31일)

7월이 끝나는 것을 이렇게 반긴 적이 있을까요? 장군으로서, 정치가로서 적들을 물리치는 데 능해 결국 독재자로 군림했던 시저 (Julius Caesar: 100 BC-44 BC), 그의 이름을 딴 달이어서 그럴까요? 7월은 물과 열로 세계를 통치한 폭군이었습니다. 눈물과 화상으로 얼룩진 7월을 둘둘 말아 우주 멀리 던져버리고 싶습니다. 어제 저녁 대차게 내린 소나기는 남은 7월을 씻어내고 8월을 맞으려는 자연의 몸짓이었겠지요. 8월은 열 달로 구성되었던 로마의 달력에선 여섯 번째 달이어서 여섯 번째를 뜻하는 'Sextilis'로 불렸다고 합니다. 기원 전 700년쯤, 1월과 2월이 추가되어 열두 달이 되면서 여덟 번째 달이 되었고, 로마제국을 세워 초대 황제로 군림한 어거스트 (아우구스투스: Caesar..

나의 이야기 2023.07.31

졸부들의 합창 (2023년 7월 27일)

한 동네에 오래 살면 동네를 닮는 걸까요? 오래된 동네의 주민들은 대개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옷으로 얘기하면 헌옷 같은 것이지요. 집에서 멀지 않은 오래된 동네를 '재개발'한 곳에 고층아파트 타운이 생기며, 본래 그 동네에 살던 사람들과는 좀 달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새 동네의 주민들은 새옷 같아서 가만히 있어도 티가 나는데 덧붙여 티를 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입주한 아파트들의 값이 비싸기 때문에 그곳에 산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아파트들이 늘어나며 제 단골 카페에도 새로운 고객들이 늘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목소리가 크다는 겁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애, 너 뭐 먹을래?" "난 아아!" 하고 외치는 식인데 카페에 자리잡은 후, 즉 카페가 조그맣..

동행 2023.07.27

양심의 소리 (2023년 7월 24일)

성공의 본래 뜻은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지만 요즘엔 '부자가 되는 것'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 혹은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성공'하지 못하는 건 남의 부러움을 사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까요? 수백 만 명의 유대인을 조직적으로 탄압하고 죽게 한 홀로코스트 (Holocaust: 1933-1945)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오스트리아 심리학자-정신의학자 빅토르 프랑클 (Viktor Frankl: 1905-1997)의 책 에서 '성공'의 다른 정의를 만났습니다. 1984년 판에 부친 서문에 나오는 글인데, 거기 나오는 '양심의 소리'라는 표현이 뭉클합니다. 2023년 한국에서 가장 잊힌 것이 있다면 바로 '양심'일 테니까요. 역자가 빅토르 프..

오늘의 문장 2023.07.24

교도소의 셰익스피어 (2023년 7월 8일)

오랜만에 단골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셰익스피어의 을 읽었습니다. 옆방에서 떠드는 손님들 --나갈 때 보니 겨우 두명!--과 창가의 손님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에도 불구하고 화내지 않고 웃을 수 있었던 건 셰익스피어 덕입니다. 셰익스피어 생각을 하니 며칠 전 자유칼럼이 보내준 권오숙 박사의 글이 떠오릅니다.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글... 교도소의 재소자들이 셰익스피어를 읽고 달라지듯 카페를 소음 공장으로 만드는 이들도 셰익스피어를 읽으면 달라질까요... 오늘 한국의 문학은 초입 난파의 풍경을 닮았지만 누군가는 문학의 본령을 살리려 인공호흡하듯 글을 쓰고 있을 겁니다. 그들을 응원하며 권 박사의 글을 옮겨둡니다. 링크를 클릭하면 자유칼럼으로 연결됩니다. http://www.freecol..

동행 2023.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