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숙 노년일기 172

노년일기 71: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거부함 (2021년 2월 2일)

내일은 한 해의 첫 절기 '입춘.' 어김없이 봄이 오고 있습니다. 갈색 나뭇가지마다 푸른 피가 돌고 사람들은 검은 옷과 털모자를 벗겠지만, 마스크는 아마도 오랫동안 피부의 일부로 남을 겁니다.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마스크를 벗으려면 마스크를 쓰게 한 원인이 사라져야 하는데 그 원인은 여전히 우리들 사이에, 우리 사회에, 우리 지구촌에 남아 있습니다. 한마디로 '반성'의 부재 혹은 부족이지요.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고 유통되면서 국민 중 누구에게 먼저 접종할 것인가를 두고 말이 많습니다. 선거가 코앞이니 정치적 저울질도 하겠지요. 그러나 접종의 순서는 명약관화합니다. 코로나19는 그간의 생활 행태가 초래한 바이러스이니 잘못된 행태로 지구촌을 황폐화시키고 오염시킨 나이든 사..

나의 이야기 2021.02.02

노년일기 70: 마이너스의 어려움 (2021년 1월 31일)

호아... 2021년의 첫달도 오늘로 끝이 납니다. 한달 동안 제 안팎에서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동네에는 '임대'가 붙은 상점이 많아졌고 제 마음에선 어떤 이름들이 의미를 잃거나 사라졌으며 자꾸 눈과 비가 내려 지상의 낯을 씻었습니다. 새 달력을 달고 먹고사는 일에 매진하느라 새로운 생각을 하는 시간이 짧았습니다.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않는 날은 죽은 날과 같으니 이제라도 생生에 숨을 불어 넣어야겠습니다. 책꽂이에서 이라는 책을 뽑아 목차를 훑어봅니다. 수학 얘기입니다. 처음 치른 대학 입학시험에서 수학은 0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 학교에 가지 못한 것이 잘된 일이지만 당시에는 실패가 부끄러웠습니다. 입학시험에서 떨어진 것보다 부끄러운 것은 수학에서 0점을 맞은 것이었고, 0점 맞은 것보다 ..

오늘의 문장 2021.01.31

노년일기 69: 꼬마 눈사람 (2021년 1월 28일)

일년 전엔 귀하던 눈이 이번 겨울엔 제법 자주 옵니다. 아침 나절 작은 눈송이들이 무리지어 동쪽에서 서쪽으로 내닫더니 천지가 금세 하얗습니다. 창가 난간에 쌓인 눈을 훑어 쥐어봅니다. 눈물을 품고 있는지 축축합니다. 축축한 만큼 잘 뭉쳐져 이내 돌이 됩니다. 좀 큰 덩어리로는 몸을 만들고 작은 덩어리로는 얼굴을 만듭니다. 사인펜으로 눈, 코, 입을 그려넣고 제라늄 마른 꽃잎을 머리 위에 얹습니다. 그렇게 보아서 일까요? 눈사람은 저를 닮았고, 빨간 꽃잎은 영락없이 제가 산책길에 쓰고 다니는 빨간 비니입니다. 눈사람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오늘 오후부터 주말까지 강추위라니 며칠은 견뎌낼까요? 문득 각오가 솟구칩니다. 꼭, 이만큼만, 이 꼬마 눈사람만큼만 하자. 그만큼 아름답자. 슬픔으로 오히려 단단해..

나의 이야기 2021.01.28

노년일기 68: 동창 같은 것은 (2021년 1월 21일)

2021년이 시작되는가 했더니 벌써 3주가 흘렀습니다. 아직 새해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는데... 그야말로 시간이 흐르는 물과 같음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가두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동창'입니다. 며칠 전 날아든 '00동창'이라는 얇은 책 표지엔 오래전 제가 다녔던 학교가 있습니다. 책을 여니 저처럼 오래전 그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의 늙은 얼굴이 이어집니다. 대개는 자랑입니다. 새로운 직함을 얻었다거나 상을 탔다거나...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바뀌지만 그 책의 지향점은 바뀌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모교를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처럼 기억력이 나쁘고 먹고 사느라 바쁜 사람이 수십 년 전에 다닌 학교를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교를 기억하는 방..

나의 이야기 2021.01.21

노년일기 67: 지수 형님, 길수 형님 (2021년 1월 11일)

지수 형님, 길수 형님, 뵈온 지 한참입니다. 두 분은 이곳을 아주 잊으셨을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두 분의 죽음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저처럼 두 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살아 있으니까요. 엊그제 시부모님을 위한 제사상을 차리며 처음으로 두 형님의 진지를 올렸습니다. 문득 두 형님을 위한 상을 차릴 사람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왜 좀 더 일찍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두 분 생전에나 머리가 하얘진 지금이나 저는 이렇게 어리석습니다. 지수 형님, 길수 형님, 오랜만에 부모님과 한 밥상에 앉으신 기분이 어떠셨는지요? 혹시 이승에서 외롭고 괴로웠던 일들이 떠올라 그곳에서 얻은 평안에 금이 간 것은 아닌지요... 아무 것도 모르던 저를 자매로 받아주시고 귀여워해주시던 두 분... 부끄러움이 ..

나의 이야기 2021.01.11

노년일기 65: 노인의 기도 (2020년 12월 19일)

특정 종교의 신도는 아니어도 기도는 합니다. 몸은 나이들수록 무거워지고 기도는 나이들수록 길어지니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리면 한참씩 그대로 머뭅니다. 기도가 나이들수록 길어지는 건 나이와 함께 자라는 사랑 때문이겠지요. 굶주림과 재앙, 불안으로 고통받는 존재들, 두려움, 외로움, 괴로움 속에서 자꾸 작아지는 사람들, 갖가지 결핍으로 신음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돕고 싶지만 도울 능력이 없는 사람들... 기도가 필요한 곳이 도처에 있으니 노인의 기도는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기도합니다. 고통받는 존재들의 고통을 줄여주시고 두려움에 떠는 존재들의 두려움을 줄여주시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을 도와주소서. 지혜를 얻은 후에야 늙게 하시어 흰머리의 움직임 그대로 사랑이 되게 하소서!

나의 이야기 2020.12.19

노년일기 64: 겨울 풍경 (2020년 12월 17일)

푸른 줄기와 잎, 그 잎 뒤꿈치에서 시작된 노랑이 꽃보다 어여뻐 차마 돌아설 수 없었다지요. 철없는 어머니의 철 든 아들이 제 엄마 웃는 얼굴 보려고 주먹만 한 무 여덟 개 암말 않고 들어다 주었다지요. 어떤 무는 무색 동치미가 되고 어떤 무는 붉은 깍두기가 되었지만 무청은 장미처럼 거꾸로 말라갔다지요. 아들은 미소 띤 어머니 맞은편에서 흰밥에 깍두기를 먹고 어머니는 창밖 무청 친구 덕에 돌아가는 일을 생각했다지요. 모두 아무렇지 않았다지요.

나의 이야기 2020.12.17

노년일기 63: 자주 저지르는 실수 (2020년 12월 5일)

아버지, 어머니를 잃는 친구들이 늘어납니다. 친구들 나이가 60대, 70대이니 부모님들은 대개 90대이고 더러는 백수를 넘기신 분들도 계십니다. 저도 5년 전 아버지를 여의어 이제는 어머니를 뵐 수 있을 뿐입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정신과 육체가 기운다고 한탄하시지만, 저는 어머니가 그저 지금처럼 옆에 계셔주시길 기원합니다. 아흔을 넘긴 아버지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호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흔합니다. 환갑을 지나 부모를 잃었으니 무어 그리 슬프냐는 투로 상주를 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삼십 대 친구들은 그런대로 삼가는 태도를 보이지만 나이가 든 사람들 중엔 ‘그만큼 사셨으면 됐지’라고 말하는 사람조차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나이가 많다는 것은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 그만큼 오래 되었다는 뜻이고,..

나의 이야기 2020.12.05

노년일기 62: 깻잎이 치매 예방에 좋은 이유 (2020년 11월 23일)

예전에도 깻잎을 좋아했지만 치매 예방에 좋다는 말을 들은 후로는 더 열심히 먹습니다. 날로 먹기도 하고 김치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부침개로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어떻게 요리를 하더라도 깻잎의 향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향기를 유지하는 깻잎의 속성이 치매 예방 효과와 연관이 있는 걸까요? 며칠 전 시장에서 세일 중인 깻잎을 만났습니다. 향기가 얼마나 진한지 비닐봉지에 담겨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한 봉지에 핑크색 띠를 두른 깻잎 묶음이 열 개씩 담겨 있기에 한 봉지를 사들고 왔습니다. 찬물에 담가두었다 꺼내니 빛깔은 더 아름답게 짙어지고 향기는 여전했습니다. 한 장 한 장 사이마다 양념을 넣어 깻잎 김치를 만들어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계획을 싫어한다는 ..

나의 이야기 2020.11.23

노년일기 61: ‘38점’짜리 바느질 (2020년 11월 14일)

가끔 바느질을 합니다. 가족들의 양말도 꿰매고 바지의 허리나 길이를 줄이기도 하고 늘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긴팔 옷을 잘라 짧은 옷으로 만들기도 하고 원피스를 잘라 조끼를 만들기도 하는데 바느질을 하다 보면 언제나 중학교 때로 돌아갑니다. 제가 중학생일 때는 ‘수예’라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기본적인 바느질을 배운 다음 베갯잇에 수를 놓거나 액자나 병풍에 넣을 수예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수예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장식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바느질을 할 줄 알면 되지 수놓는 것까지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가 불만이 많았습니다. 수예 선생님이 수예 재료를 사라고 하면 하는 수 없이 샀지만, 수업시간에 수놓는 흉내만 낼 뿐 완성한 작품이 드물었고, 한참 소설 읽는 재미에 빠져 있을 때라..

나의 이야기 2020.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