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오래 전에 졸업한 학교를 상기시킵니다.
십 대, 이십 대... 몸은 지금보다 나앗겠지만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해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산 날이
드물었습니다.
그때 저를 붙잡아준 건 도서관의 친구들,
바로 책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취직이 되던 시절이라
취업 준비를 위해 도서관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텅 빈 도서관에 앉아 에머슨과 소로우를 읽으면
괴로운 실존과 피로한 현실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동시대를 산 사람 모두가 그런 위로를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제 나이 또래의 7퍼센트만이 대학에 간다고 했으니까요.
대학 생활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에 보탰다고 해도
대학에 다닌다는 건 선택된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었습니다.
그 드문 행운을 누렸던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낡은 버스처럼 한 곳에 멈춰 선 채, 자녀들에 대한 동물적 사랑을
자랑하거나 끼리끼리 몰려 다니며 '노년의 여유'를 만끽하는 걸 보면
부끄럽습니다. '운좋은 7퍼센트'가 저렇게 이기적으로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지요.
도서관엔 가지 않지만 책을 읽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못 되어도
어리석음을 광고하거나 소음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으니까요.
혹시 압니까? 입 다물고 읽다 보면 지혜란 것이 시나브로 스며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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