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96: 책 읽는 노인 (2021년 12월 9일)

divicom 2021. 12. 9. 08:25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오래 전에 졸업한 학교를 상기시킵니다.

십 대, 이십 대... 몸은 지금보다 나앗겠지만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해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산 날이

드물었습니다.

 

그때 저를 붙잡아준 건 도서관의 친구들,

바로 책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취직이 되던 시절이라

취업 준비를 위해 도서관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텅 빈 도서관에 앉아 에머슨과 소로우를 읽으면

괴로운 실존과 피로한 현실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동시대를 산 사람 모두가 그런 위로를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제 나이 또래의 7퍼센트만이 대학에 간다고 했으니까요.

대학 생활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에 보탰다고 해도

대학에 다닌다는 건 선택된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었습니다.

 

그 드문 행운을 누렸던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낡은 버스처럼 한 곳에 멈춰 선 채, 자녀들에 대한 동물적 사랑을

자랑하거나 끼리끼리 몰려 다니며 '노년의 여유'를 만끽하는 걸 보면

부끄럽습니다. '운좋은 7퍼센트'가 저렇게 이기적으로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지요.

 

도서관엔 가지 않지만 책을 읽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못 되어도

어리석음을 광고하거나 소음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으니까요.  

혹시 압니까? 입 다물고 읽다 보면 지혜란 것이 시나브로 스며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