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천변을 잉크빛으로 물들인 수레국화들을 보면 아주 작은 몸이 되어 그 사이에 들어가 서고 싶습니다. 수레국화들 사이에서 시치미 떼고 그들과 함께 바람을 그리고 싶습니다. 함께 걷던 친구가 풀밭에 떨어진 수레국화 한 송이를 집어 줍니다. "보셨지요? 꺾은 게 아니고 떨어진 걸 주운 거예요." 결벽증도 때로는 사랑스럽습니다. 가장 작은 병도 수레국화 한 송이에겐 너무 큰집. 하얀 휴지 한 장을 접어 넣고 물을 담습니다. 휴지를 딛고 선 수레국화가 제법 꼿꼿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며 '어찌 그리 아름다우신가' 탄식합니다.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저 선명한 잉크 꽃잎이 마냥 지속될 것만 같습니다. 아,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어느 날 문득 꽃잎의 끝이 하얗게 바래기 시작합니다. 하양이 아래로 아래로 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