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에 대한 회의가 극에 달했던 대학 1학년 때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1803-1882), 소로우 (Henry David Thoreau:
1817-1862) 같은 초월주의 시인들에게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회의'를 '결심'으로 누르며 살았는데 언제부턴가
'결심' 위로 '피로'의 그림자가 짙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무거운 피로를 밀어올리며 중력의 세계에 계속 존재해야 하는가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런걸까요?
지난 연말부터 자꾸 소로우의 <월든: Walden; or, Life in the Woods>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집안의 모든 책꽂이를 다 뒤져도 <월든> 원서도
번역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학가에 살지만 서점은 하나도 없습니다.
시장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헌 책방에 들러 보았지만 없었습니다.
인터넷 서점보다는 책을 직접 만지고 들춰 볼 수 있는 서점에 가서
사고 싶었지만 시절이 시절인 만큼 쉬이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책 한 권을 배달받았습니다. 아는 사람 중에 누군가가
책을 냈나 보구나 하며 봉투를 여니 수문출판사가 펴낸 <월든: 숲속의 생활>이
있었습니다.
원서 초판본에 소로우의 여동생 소피아가 그렸던 숲속 오두막을 꼭 닮은 표지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게다가 번역자가 안정효 선배였습니다. 안 선배와는
코리아타임스에서 함께 근무했으나 1980년대쯤 각기 신문사를 떠난 후론
통 뵙지 못했는데, 책에서나마 함자를 접하니 반가웠습니다.
첫 장의 '계산서'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웃음이 나왔습니다.
원서에 'economy'로 되어 있어서 대개 '숲속 생활의 경제학'으로 번역하는데
안 선배는 '계산서'라고 번역한 겁니다. 웃음 끝에 맨 뒤에 있는 '옮긴이의 말:
월든 주변의 단상들'을 읽으니 안 선배와 마주 앉아 얘기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함께 일하던 시절보다 더 젊고 자유로워지신 듯한 선배를 글로나마 만나며
정신과 육체 두루 골골 중인 저를 돌아보니 참으로 한심했습니다.
젊은 시절 저를 위로했던 <월든>의 단어들이 오늘의 저에게도 힘이 되어줄지
찬찬히 읽어 봐야겠습니다. 그래야 이 아름다운 우연과 우정에
보답할 수 있을 테니까요.
승정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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