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882

노년일기 226: 늙은 애인 (2024년 8월 25일)

저의 노화도 낯설 때가 있지만 애인의 노화는더더욱 낯섭니다. 때로는 처음 보는 노인 같을때도 있습니다. 누구세요?  제 안에서 생겨나는 물음표들이 그의 안에서도생겨날 겁니다. 가끔 그가 낯선 눈으로 저를 보며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바로 그래서일 겁니다.  그와 제가 이렇게 바래가면서도 우리로 남아 있는 건우리 안에 변하지 않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겠지요.그건 아마도 우리를 우리로 만든 시선일 겁니다.  1976년 어느 봄날 처음 주고받았던  그 시선...우리의 세상이 나뉜 후에도 여전히 우리 안에남아 있을 그 시선... 그 늙지 않는 시선! 아이고...

나의 이야기 2024.08.25

매미는 엄마처럼 (2024년 8월 21일)

내일이 '처서'이니 더위도 여름도 끝자락이겠구나 생각했지만, 어제도 매미는 매앰~맴, 쓰... 뒷산을흔들었습니다. 오늘 새벽은 번쩍번쩍 쿠르릉 쾅! 딱! 시끄러웠습니다.천둥과 벼락이 어찌나 요란한지 대기만이 아니라대지까지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매미 소리는 바랜 나뭇잎처럼,1월의 어머니처럼 미약합니다. 뒷산 전체를 흔들던매미의 패기는 새벽 노성벽력에 꺼져가는 촛불이 되었습니다. '물 찬 제비' 같던 우리 어머니의마지막 한 달을 닮았습니다. '머리가 그게 뭐니? 염색 좀 하지?'  기세등등하시던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내가 우는 한 아무도잠잘 수 없다!'는 듯 온 산을 울리던 매미 울음이듣고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wbdzarEoNg

나의 이야기 2024.08.21

노년일기 225: 버섯 농사 (2024년 8월 18일)

한국에는 약 1,900여 종의 버섯이 서식하는데그중 400여 가지만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식용버섯은 대개 색깔이 화려하지 않고세로로 잘 찢어지며 벌레가 먹은 것들이라고합니다.  저는 버섯농사를 지어 본 적이 없지만 언제부턴가버섯을 키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버섯은 얼굴,손등, 팔 등 아무 곳에서나 자라는데, 그 시작은 대개 핑크와 자주를 섞어 찍은 마침표 같은 점입니다. 점은 며칠 지나면 연갈색이 됩니다. 핑크자주 점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흐르다 지친 피로구나, 나는 사느라 지치고내 몸의 피는 흐르다 지치는구나, 검버섯은피의 무덤이구나, 검버섯이 자꾸 생가다보면내 몸이 나의 무덤이 되겠구나...  그러다 또 생각했습니다. 표고버섯, 송이버섯, 느타리버섯... 먹을 줄만알고 키울 줄은 몰랐더니..

나의 이야기 2024.08.18

노년일기 224: 내 인생은 초과 달성 (2024년 8월 12일)

제가 아버지와 같은 인생을 살 거라고는 감히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모든 면에서저의 스승이셨고 뛰어나신 분이었으니까요.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은 '초과 달성'의 인생이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와 끼니를걱정하며 살았기에 하루 세 끼만 거르지 않고살면 성공이라고 생각하셨는데, "세 끼는 물론 다섯 끼도 먹을 수 있으니 초과 달성이 아니냐?"며 웃으셨습니다. 그런데, 모든 면에서 아버지에 미치지 못하는저도 초과 달성의 인생을  살게 되었으니겸연쩍지만 감사합니다.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 덕에 끼니를 걱정하지않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두 분이 받고 싶어했으나받지 못한 교육도 받았습니다. 그러니 아버지가생각하신 '성공'과 제가 꿈꾼  성공 또한 매우달랐습니다.  저..

나의 이야기 2024.08.12

노년일기 223: 노인은 반성 중 (2024년 8월 9일)

십 대 때는 제가 70세가 될 때까지 살 거라고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미래 모습은 아예 그려지지않았고 억지로 그리면 마흔 언저리가 고작이었습니다. 마흔 넘어 쉰을 거치면서는 '나이 들수록 훌륭한 사람이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현실은 다릅니다.나이가 쌓이는 만큼 목표는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제가 매일 반성(反省)하는 이유입니다. 반성은 '자신의 언행에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거리가 있는 사람들에겐 그런대로 친절하게 말하고 행동했지만, 가족에겐 냉정하고 공감보다 비판을  앞세우기 일쑤였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그들과 저를 동일시하는 경향 때문이었습니다.  큰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 중엔 큰 자동차가 자신인 양'자아 확대'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저는..

나의 이야기 2024.08.09

노년일기 217: 사일러스 마너 (2024년 6월 6일)

오늘은 현충일, 나라를 위해 전사하거나 순직한 사람들, 즉 나라를 사랑하다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조기를 걸며 '사랑'을 생각합니다. '사랑'을 생각하니어제 읽기를 끝낸 책이 떠오릅니다.조지 엘리엇 (George Eliot: 1819-1880)의입니다. 2024년에 1861년에 출판된 소설을 읽는다는 건무슨 뜻일까요? 독자가 19세기 영문학 전공자라는 뜻? 지금 자신을 둘러싼 21세기적 현상들보다 19세기를 더 편하게 느낀다는 뜻? 저는 영문학자가 아니니 후자에 속하는 사람일까요? 그러나 19세기 또한 21세기만큼 불합리했던--불합리의유형만 다를 뿐--시대임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어떤 시대에 태어나도 그 시대를 낯설어 하는  사람들이 있고, 저는 그들 중 하나일 겁니다.   그럼에도..

나의 이야기 2024.06.06

노년일기 216: 숫자 게임 (2024년 5월 28일)

그 사람과 나는 4에서 시작했지요.5, 7, 3, 9... 우리는 두서없이 달렸지요. 그 사람과 나는 70에서 시작했지요.80, 30, 100... 우리는 띄엄띄엄 그네를 탔지요. 그 사람과 나는 301에서 시작했어요.오래된 시간들이 우리 사이로 흘렀지요.우린 느리지만 빠르게 흘렀어요.1003, 4012, 8654... 때로 시간은 우리를집어삼키고 우리는 깊은 바다의물고기들처럼 떠오르고 가라앉아요. 숫자마다 얼굴, 숫자마다  훌쩍임, 노오력, 신기루, 뒷걸음질... 숫자에서 도망치다 보면 또 다른 숫자의 구멍에 빠지는 거예요. 이 게임은 언제 어떻게 끝이 날까요...

나의 이야기 2024.05.28

노년일기 214: 타인의 죽음 (2024년 5월 12일)

4월만큼은 아니겠지만 5월 또한 잔인한계절입니다. 배추꽃과 군자란과 재스민과라일락, 아카시아... 아름다운 풍경과 향기에 깃들인 지난한 인내와 몸부림을 생각하면꽃 앞에서 절로 숙연해집니다. 5월은 또한 생로병사를 은유하는 달입니다.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입양의 날(11일),성년의 날(20일), 부부의 날(21일), 희귀질환극복의 날(23일)까지... 삶이라는 모자이크를구성하는 갖가지 요소들을 다 기념합니다.  사람들은 스물만 넘어도 삶에 대해 아는 척을 합니다. 20년쯤 살아보니까 인생은 이러저러한 것이더라 하는 거지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 셀 수 없이  다양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만큼 '삶의 진실'을 정의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젊을수록 쉽게 정의합니다. 죽음에..

나의 이야기 2024.05.12

미안해 수국, 미안해 파프리카! (2024년 5월 7일)

비 오니 좋구나눈물도 세상도 지워지는구나걸음마다 일어서던 먼지도 잔잔하구나 빗속 떠돌다 화분 사이에 서니손금 선명하던 수국과 파프리카 잎들오래된 기억처럼 흐릿해지고 있네 미안해 수국, 미안해 파프리카!노란 파프리카, 분홍 수국 꽃들물 두어 잔에 서서히 몸 일으키며괜찮아 새 고아야, 그럴 수 있어우린 네 생각보다 강하단다너도 그렇고

나의 이야기 2024.05.07

숨바꼭질 (2024년 5월 4일)

어버이날 선물을 골라야지,뭐가 드시고 싶을까, 파스타? 자장면?울엄마 좋아하시게 얼굴에 뭘 좀 바르고옷도 그럴싸하게 입어야지... 아, 엄마다! 엄마!!두 발짝에 한 번씩 엄마가 보이지만닮은 것은 몸집과 자세뿐입니다. 봄길이 느리게 흐르는 건 엄마와 숨바꼭질하는 늙은 아이들 때문입니다. 머지 않아 사라질 엄마들 때문입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PwbdzarEoNg&list=RDPwbdzarEoNg&start_radio=1&ab_channel=JHChung

나의 이야기 2024.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