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861

노년일기 184: 우리는 하나 (2023년 8월 24일)

노년은 발견의 시기입니다. 내 몸에 이렇게 많은 기관이 있었던가, 이렇게 다양한 고통이 숨어 있었던가... 끝없이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손목에서 어깨 사이 어디를 눌러도 아픕니다. 무릎과 발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을 내야지 하고 평소보다 조금 더 열심히 먹으면 배를 채우고 있는 각종 장들이 힘들다고 불평합니다. 혼자 샤워를 하실 수 없게 된 어머니를 씻어 드리고 오면 제 몸 이곳저곳에 파스를 붙이고도 밤새 끙끙 소리를 내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도 대개 몸의 불평을 듣습니다. 타고난 튼튼 체질 덕에 주변의 약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갑자기 태업에 들어간 당신의 다리를 내려다 보며 "내가 이런 꼴이 될 줄이야" 탄식하십니다. 젊은 시절 훈련 한 번 받지 않고도 기록적 속도로 100미터를 주..

나의 이야기 2023.08.24

노년일기 183: 사랑 때문에? (2023년 8월 20일)

몇 군데 돈을 보내야 할 곳이 있어서 텔레뱅킹을 하는데, 암호 숫자를 두 번이나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세 번 잘못하면 거래를 할 수 없게 된다'는 투의 ARS 협박을 들었습니다. 마트에 생강을 사러갔습니다. 흙생강은 100그램에 2,300원인데 바로 옆 '깐 생강'은 698원이라기에 한 봉을 샀습니다. 집에 돌아와 찬물로 땀을 씻고 나서야 698원이 아니라 6980원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본래 숫자에 어둡고 눈도 몹시 나쁘지만 깐 생강이 흙생강보다 비싼 게 당연한데 그런 실수를 하다니... 부끄러웠습니다. 저녁밥을 해 주겠다는 아들에게 찬밥이 많으니 달걀볶음밥을 해 달라고 했는데 아들이 밥을 볶으려 하니 찬밥이 없었습니다. 찬밥 있던 것을 점심에 먹고도 냉장고에 있다고 착각한 겁니다. 다행히 텔레뱅킹 ..

나의 이야기 2023.08.20

조문을 놓치다 (2023년 8월 19일)

젊은 시절엔 매일 죽는다는 사실로부터 위로 받았지만 머리가 하얘진 후로는 이달처럼 죽음을 가까이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재해로 인한 사망, 젊은이들의 사고사와 돌연사, 어머니의 입원과 노쇠한 어른들에 대한 걱정 등이 끝없이 죽음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러다 정작 중요한 사별의 자리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카톡 사용자였으면 알았을지도 모르는데 섬처럼 살다가, 가시는 분께 마지막으로 인사 올리고 그분의 아들을 위로할 기회를 놓친 겁니다. 기억은 조문보다 오래가니 기억으로나마 오늘의 송구함을 덜어볼까 합니다... 툭 툭 던지는 듯한 말투로 여린 마음을 애써 감추시던 그분... 그분을 생각하며 기도하다 보니 눈이 젖어옵니다. 마침내 고단하고 외로운 생애를 벗어나신 우말순 여사님... 최선을 다하셨으니 부디 자유와 평..

나의 이야기 2023.08.19

노년일기 182: 닮은 눈 저편 (2023년 8월 15일)

8월 한가운데 햇볕 쨍쨍한데 우리 엄마 또 주무시네 기쁨 슬픔 원망 분노 감긴 눈 뒤에 숨어 보이지 않네 아프네 아프네 하지만 정말 죽을 때 되면 아픈 데 없다더라 하시더니 눈 뜬 엄마 아픈 곳 없다네 얼마 전만 해도 서운한 것 많더니 이젠 8년 전 떠나가신 아버지 얘기뿐 그 옆에 가 누울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 금방 갈 줄 알았는데 왜 안 가는 걸까 뭐가 그리 급하셔요 천천히 가셔요 엄마 가시면 나는 고아 되는데 불효한 딸은 엄마 닮은 눈 저편에 눈물 숨기며 엄마 발을 붙드네 https://www.youtube.com/watch?v=PwbdzarEoNg&ab_channel=JHChung

나의 이야기 2023.08.15

찰나를 위한 기도 (2023년 8월 11일)

후두둑... 쏴아... 자박자박... 빗소리는 세상의 소리를 지우고 일찍 깬 새벽은 늙은 구도자처럼 울먹이며 기도합니다. 저 비에 젖는 모든 것들을 동정하소서, 자라는 것들과 자라지 못하는 것들 모두의 목마름을 달래 주소서. 존재의 유한함을 각성하여 무한한 순간을 살게 하소서. 이국으로 치닫던 발길 되돌려 제 안으로 자박자박 들어가게 하소서. 이윽고 사랑하게 하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QS2QVXh9Mb8&ab_channel=JimmyStrain-Topic

나의 이야기 2023.08.11

노년일기 181: 천사를 만난 시간 (2023년 8월 9일)

나이가 쌓일수록 장례식장 방문도 늘어납니다.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저 같은 사람에게나 죽음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나 장례식장은 심오한 교육이 행해지는 교실입니다. 그 교실의 어떤 학생들은 말이 없지만, 어떤 학생들은 평소보다 말이 많아집니다. 죽음의 힘은 사람의 행태도 바꾸나 봅니다. 어제 일산의 한 장례식장에 찾아갈 때는 그 어느 장례식장에 갈 때보다 힘겨웠습니다. 죽은 사람이 겨우 서른 넷 청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저께 전화로 그의 죽음을 전해 들은 순간엔 숨을 쉬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는 늦게 결혼한 친구의 아들로 실력 있는 스케이트 선수로서, 핸섬하고 다정한 선생님이자 코치로서 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직장 가까운 데서 홀로 살다가 돌연사했다니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

나의 이야기 2023.08.09

8월, 위엄 있고 인상적인 (2023년 7월 31일)

7월이 끝나는 것을 이렇게 반긴 적이 있을까요? 장군으로서, 정치가로서 적들을 물리치는 데 능해 결국 독재자로 군림했던 시저 (Julius Caesar: 100 BC-44 BC), 그의 이름을 딴 달이어서 그럴까요? 7월은 물과 열로 세계를 통치한 폭군이었습니다. 눈물과 화상으로 얼룩진 7월을 둘둘 말아 우주 멀리 던져버리고 싶습니다. 어제 저녁 대차게 내린 소나기는 남은 7월을 씻어내고 8월을 맞으려는 자연의 몸짓이었겠지요. 8월은 열 달로 구성되었던 로마의 달력에선 여섯 번째 달이어서 여섯 번째를 뜻하는 'Sextilis'로 불렸다고 합니다. 기원 전 700년쯤, 1월과 2월이 추가되어 열두 달이 되면서 여덟 번째 달이 되었고, 로마제국을 세워 초대 황제로 군림한 어거스트 (아우구스투스: Caesar..

나의 이야기 2023.07.31

노년일기 179: 생-로-병-병-병-병-사 (2023년 7월 29일)

생-로-병-사 (生老病死), 네 시기 중 '로'가 길어지며 '병'의 시간도 늘어납니다. 예순을 넘겨 살면 오래 살았다고 환갑 잔치를 했는데, 이젠 일흔을 넘겨도 막내 취급을 받는 일이 흔합니다. 병을 앓는 노인이 많아지며 '생로병병병병사'라는 말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죽었을 상태의 노인들이 의술과 의료의 발전 덕에 죽지 않고 삶과 죽음이 반반씩, 혹은 2 대 8이나 1 대 9로 구성된 나날을 보냅니다. 그런 상태로나마 살아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지요. '병병병병'의 기간엔 으레 병자의 진면목이 드러납니다. 큰병으로 수도 없이 고비를 넘기면서도 담담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훨씬 덜 고통스러운 것으로 알려진 병을 앓으면서도 끝없이 징징거려 주변을 괴롭히는 ..

나의 이야기 2023.07.29

노년일기 178: 두 가지 질문 (2023년 7월 21일)

지난 주 모임에서 한 친구가 토로했습니다. 이제는 이룰 것이 없어 살맛이 나지 않고 우울하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연했습니다. 제가 잘못 보았는지는 모르나 제가 보기에 그는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자신과 자녀들의 윤택한 생활을 성취, 보장했을 뿐 인생에 대해 모르기는 일곱 살 아이와 같으니까요... 그에게 무엇을 이루었느냐고 물으니 목표했던 것을 다 이뤘다고 말했습니다. 교수 노릇을 하다 은퇴했고 여러 개의 건물을 소유했으니 다 이룬 걸까요? 생각하기 전에 제 입이 묻는 소릴 들었습니다. "혹시 그 목표들이 너무 사소한 것들 아닌가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목표'를 얘기하는 사람이 많은 건 이 나라가 '목표' 지향 국가라 그럴까요? 지난 19일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KIAS)에 문을 연 허준..

나의 이야기 2023.07.21

노년일기 177: 노년의 적 1 (2023년 7월 18일)

'적 (敵)'은 '해를 끼치는 요소' 또는 '승부를 겨루는 상대편'을 뜻합니다. 공적으로 노년에 들어선 지금 저의 첫 번째 적은 저 자신입니다. 자고 일어나 옷을 갈아입는 순간부터 제가 저를 괴롭힙니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 때 오늘 입을 옷을 꺼내놓았어야 하는데 꺼내놓지 않아 짜증이 날 때가 있고, 옷을 벗고 입는 단순한 일을 수행하는 손이 둔해진 것을 느끼며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부엌에서 일하다 양파를 가지러 베란다에 가서는 베란다 빨랫줄의 빨래만 걷고 빈손으로 올 때가 있는가 하면, 빨래를 널다가 베란다가 지저분하다고 생각해 베란다를 청소한 후 판판하게 펼쳐 널어야지 하고 빨랫줄 한쪽에 걸쳐 놓았던 손수건을 그냥 두고 올 때도 있습니다. 오래 산 집인데도 집안에서 여기저기 부딪치고 조금만 오래 서서..

나의 이야기 2023.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