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881

형용사를 싫어하는 이유 (2025년 1월 21일)

모든 단어는 기능, 의미, 형태에 따라 명사, 동사,형용사, 부사, 조사 등으로 나뉩니다. 제가 좋아하는 품사는 명사와 동사이고 좋아하지않는 품사는 형용사와 부사입니다. 형용사나 부사가 명사나 동사에 비해 사적(개인적)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특히 '아프다' '힘들다' '괴롭다' 처럼 고통을묘사하는 형용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단어들이 고통의 정도를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에, 즉 진짜 고통과 엄살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암에 걸린 사람이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받으며 '아프다'고 하는 것과 종이에 손가락을 베인사람이 '아프다'고 하는 것처럼, '아프다'는 진정한공감을 모르는 둔감한 사람 같습니다.  '힘들다'도 마찬가지입니다. 형편이 어려운 집에 태어나 예닐곱 살 때부터 병든 부모 수발을 ..

나의 이야기 11:20:50

노년일기 246: 기도에서 사라진 사람 (2025년 1월 17일)

하루는 기도로 시작하여 꿈으로 끝납니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빗고 기도 매트 위에무릎을 꿇으면 늘 울컥, 감정이 일어납니다.꿈이 현실이 되지 못할 때 하는 것이 기도이니그렇겠지요... 저를 이 세상에 데려다 주신, 그러나 이제이곳에 계시지 않은 부모님의 자유와 평안을위해 기도한 후,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과제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지혜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데  필요하고, 용기는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필요하니까요. 그다음엔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주십사고  기도하고, 재해와 전쟁을그치게 해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사람들이 그 어리석음에서 깨어나게 해 주십사고기도하고, 양심적으로 ..

나의 이야기 2025.01.17

노년일기 241: 과장된 슬픔 (2024년 12월 10일)

한국 소설이든 영미 소설이든 소설을 읽을 땐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사전을 찾지 않습니다. 단어보다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적어 두긴 합니다.그래야 나중에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버지니아 울프의 부인>을 읽다가, 91쪽에서 lugubriously라는 단어를 만났습니다. 평생 처음 보는 단어인데, 무슨 뜻일까 하며 적어 두었습니다. 저녁에 책상에 앉아 사전을 찾아보려는데 메모 하나가 보였습니다. 11월 1일, 같은 작가의 (등대로)>를 읽으며 적어 둔 단어가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처음 보는 단어라고 생각하며 적어 둔 lugubriously에서 'ly'를 뗀 형용사 lugubrious였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11월 1일에 본 단어를 오늘 아침40일 만에 다시 만났는데, 처음..

나의 이야기 2024.12.10

노년일기 239: 엄마의 속옷 (2024년 12월 1일)

동네 밖 외출을 거의 하지 않지만, 할 때는 어머니의옷이나 모자를 착용합니다. 그러면 지난 2월 돌아가신어머니와 동행하는 것 같으니까요.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날엔 어머니가 입으시던 속옷을입었습니다. 늘어난 목 부분을 어머니가 군데군데꿰매어 줄이신 걸 보니 괘 오래 입으셨던 옷입니다. 맨살에 닿는 감촉이 너무도 부드럽고 따뜻해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승에서 함께했던 시간, 어머니는 부드러움이나 따뜻함과는 거리가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저 세상으로 가시고 나니 그때 알아채지못하고 흘려보낸 따스함이 새록새록 그립습니다.  어머니의 속옷을 입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빨아 널며보니 옆구리에 꽤 큰 구멍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도저처럼 그 구멍의 존재를 모르고 무심히 입으셨던걸까요? 아니면 그 구멍을 발견하셨을 ..

나의 이야기 2024.12.01

슬픔: 성경 말씀 (2024년 11월 14일)

2015년 가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달 후,아직 깊은 슬픔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이 하나가 조각나 치과에 갔습니다. 올 설 연휴 끝 어머니가 떠나시고 여러 달이흘렀습니다. 아직도 어머니가 저세상으로가셨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 나날을보내고 있는데, 이 하나가 조각났습니다. 내 것인 마음은 슬픔을 눈물로 표현하고,부모님이 주신 몸은 부모님이 주신 이를 조각냄으로써 슬픔을 표현하는가, 생각했습니다. 좋아하는 북카페에 갔더니 평소에 앉던자리에 이미 손님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플래너리 오코너의 소설을읽으려 했는데... 하는 수 없이 다른 자리에앉았지만 오코너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앓다 돌아가신 홍반성 루푸스에  걸려 39세에 요절한 오코너...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지만 속좁은 신자들..

나의 이야기 2024.11.14

부은 얼굴 (2024년 9월 14일)

울고 난 눈이 통통 부어 볼 만합니다.하늘도 한참 울었지만 하늘은 울기 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데...  올고 난 사람 눈은 붓는데 하늘 눈은 왜붓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소금 때문인 것 같습니다.지상의 생명체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다소금을 필요로 하지만, 하늘은 신체에 갇히지 않으니소금 또한 필요하지 않겠지요.    나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하늘을 꿈꿉니다.45억 살을 먹고도 여전히 아름다운 저 얼굴의 비밀을알고 싶습니다,  아무리 울어도 붓지 않는 저 얼굴의 비밀을...

나의 이야기 2024.09.14

노년일기 229: 비님 목소리 (2024년 9월 12일)

더위 끝 빗소리가 잠을 깨웁니다.창밖에선 달구어졌던 세상이 식고 있습니다.나무, 건물, 자동차 모두 행복하게 젖습니다. 비가 자꾸 무어라 두런거립니다.어둠을 응시하며 귀를 기울이니비의 목소리가 들립니다.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반가운 것들은 늘 미안해합니다.비도, 꽃도, 사람도, 가을도... 어제까지 새벽을 울리던 가을벌레들은 침묵한 채 빗소리의 변주를 듣고 있습니다. 진짜 음악가들은 압니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라는 것을. 세상이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것,아이러니 때문일 겁니다.긴 더위를 식혀 주는 비가 오히려 늦게 온 것을미안해하고, 청아한 가을벌레들이 오히려 침묵하고...  공부하며 사는 사람은 무지를 부끄러워하고,  책 읽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다 안다고 생각하고,나쁜 부모가 자..

나의 이야기 2024.09.12

노년일기 228: 공원에서 우는 사람 (2024년 9월 6일)

어제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지9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오랜만에들른 아버지의 방, 방은 그대로인데아버지와 어머니는 사진이 되어 맞아주시니아이가 되어 엉엉 울었습니다. 할아버지를 그리는 아이와 다시부모님 사시던 동네를 찾았습니다.골목마다 지난 2월 돌아가신 어머니의발자국이니 걸을 때마다 눈물이 났습니다.도저히 그 얼굴로 부모님 방에 들 수가 없어아이만 들여보내고 집 앞 꼬마공원에머물렀습니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문득 어머니가 보고 싶으면 연락도 없이 찾던 공원, 언젠가 어머니를 발견했던 오른쪽 한갓진 곳으로 가 보았지만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엄마, 엄마... 제 안의 아이가 소리내어 울며 공원을 헤매었지만 어머니를 찾을 수는없었습니다. 저만치 서너 사람이 흘깃거리는것을 보면서도 울음을 그치지..

나의 이야기 2024.09.06

노년일기 227: 오은영 손수건! (2024년 8월 30일)

TV에 나오는 사람 중에 제가 제일 반가워하는 사람은오은영 박사입니다.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아이가 아이답게 자랄 수 없는 나라,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부모가 되는 나라, 부부가 어떤 관계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부부가 되는나라에서 오 박사의 존재는 참으로 고맙습니다.  오 박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은눈물을 흘리는 일이 흔합니다. 출연자가 울 때도있고 오 박사의 진행에 추임새를 넣는 패널들이울 때도 있습니다. 오 박사 자신의 눈이 젖을 때도있습니다. 한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지만 그들각자를 울게 한 이유는 다 다를 테니 눈물의 성분또한 다르겠지요. 미국 사진작가 로즈-린 피셔 (Rose-Lynn Fisher)의 '눈물의 지형 (Topography of Tear..

나의 이야기 2024.08.30

노년일기 226: 늙은 애인 (2024년 8월 25일)

저의 노화도 낯설 때가 있지만 애인의 노화는더더욱 낯섭니다. 때로는 처음 보는 노인 같을때도 있습니다. 누구세요?  제 안에서 생겨나는 물음표들이 그의 안에서도생겨날 겁니다. 가끔 그가 낯선 눈으로 저를 보며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바로 그래서일 겁니다.  그와 제가 이렇게 바래가면서도 우리로 남아 있는 건우리 안에 변하지 않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겠지요.그건 아마도 우리를 우리로 만든 시선일 겁니다.  1976년 어느 봄날 처음 주고받았던  그 시선...우리의 세상이 나뉜 후에도 여전히 우리 안에남아 있을 그 시선... 그 늙지 않는 시선! 아이고...

나의 이야기 2024.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