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229: 비님 목소리 (2024년 9월 12일)

divicom 2024. 9. 12. 05:04

더위 끝 빗소리가 잠을 깨웁니다.

창밖에선 달구어졌던 세상이 식고 있습니다.

나무, 건물, 자동차 모두 행복하게 젖습니다.

 

비가 자꾸 무어라 두런거립니다.

어둠을 응시하며 귀를 기울이니

비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반가운 것들은 늘 미안해합니다.

비도, 꽃도, 사람도, 가을도...

 

어제까지 새벽을 울리던 가을벌레들은

침묵한 채 빗소리의 변주를 듣고 있습니다. 

진짜 음악가들은 압니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라는 것을.

 

세상이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것,

아이러니 때문일 겁니다.

긴 더위를 식혀 주는 비가 오히려 늦게 온 것을

미안해하고, 청아한 가을벌레들이 오히려 침묵하고...

 

공부하며 사는 사람은 무지를 부끄러워하고,  

책 읽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다 안다고 생각하고,

나쁜 부모가 자녀에게 화낼 때 좋은 부모는 숨어서

눈물을 훔치고, 나이 덕을 보지 못하는 노인들이

'내가 살아 봐서 아는데!'를 외칠 때, 지혜로운 노인은

'해는 지는데 갈 길은 멀구나!'합니다.

 

온 세상이 비의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비님! 우리 모두의 어리석음을 씻어 주소서!

9월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여름에게 떠날 길을 보여 주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BMSGly7kd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