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숙 2632

교수를 위한 자리는 없다 (2022년 6월 17일)

대학을 죽이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 답이 있습니다. 교수 식당이 대학을 죽인다 한국의 대학 건물 중 괴물 같은 명칭은 단연 교수 식당 내지는 교직원 식당이다. 밥 먹을 때도 신분 직함을 따져 장소를 갈라놓았으니, 갈라치기의 원조 격이다. 한적한 교수 식당에 비해 학생 식당은 늘 많은 사람으로 긴 줄을 서야 한다. 허기를 달고 사는 학생들은 낮은 가격의 학생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서너 시간 뒤 시장기로 뒤틀린 창자의 교향곡을 들으며 공부하고 연구한다. 미국 대학에 오니, 교수나 학생 구분 없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에 줄만 서면 되었다. 먹는 장소의 차별이 신분에 따라, 그것도 지성을 대표한다는 대학에 버젓이 존재하는 나라였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저명인사 초청 세미나. 컵과 음식물에 엑스 표..

동행 2022.06.17

누워야겠다 (2022년 6월 11일)

이 블로그에 고백한 대로 저는 셸 실버스틴 (Shel Silverstein)의 팬입니다. 그가 떠난 후에야 그를 알았으니 어리석은 팬이지요. 오늘은 그의 시 '서 있는 건 어리석어'를 읽으며 웃었지만, 시의 내용과 달리 다시 눕진 않았습니다. 이 시를 소개하는 것처럼, 앉아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으니까요. Standing Is Stupid Standing is stupid, Crawling's a curse, Skipping is silly, Walking is worse. Hopping is hopeless, Jumping's a chore, Sitting is senseless, Learning's a bore. Running's ridiculous, Jogging's insane-- Gues..

오늘의 문장 2022.06.11

자연의 선물, 사람의 선물 (2022년 6월 8일)

무안에서 아카시아꿀이 왔습니다. 은은하고 투명한 꿀을 들여다보자니 벌들의 분주한 날갯짓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꽃의 자당을 꿀벌이 먹었다 토해낸 것이 꿀이라니 저 꿀을 먹는 것은 꽃과 벌, 그들의 생生을 먹는 것이겠지요... 너무도 아름다워 차마 먹을 수가 없습니다. 꿀은 보관만 잘하면 아무리 오래두어도 변하지 않는다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고흥에서 마늘과 양파가 왔습니다. 재래종 마늘은 초롱초롱 똘똘한 어린이 같고 양파는 심지 굳은 청년처럼 단단합니다. 가을에 심어져 겨울을 난 양파와 마늘, 둘은 오래전부터 저를 맑히우는 친구입니다. 지도에서 무안과 고흥을 찾아봅니다. 무안은 함평과 목포 사이 서해안에 접해 있고 고흥은 저 남쪽 보성 아래 바다에 있습니다. 무안도 고흥도 가본 적이 없지만 그곳에서 오는 ..

나의 이야기 2022.06.08

유월이 오면 (2022년 5월 31일)

오월은 사월보다 스물네 시간이나 길었지만 새로이 깨달은 것은 두엇뿐입니다. 저만치 유월의 정수리가 보입니다. 유월엔 오월에 놓친 것들을 찾고 싶습니다. 영국의 계관시인 로버트 브리지스 (Robert Bridges: 1844-1930)의 노래처럼 유월이 우리 모두에게 기쁨의 보따리를 선물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 선물을 찾아내는 건 우리에게 달려 있겠지요. 의사이며 시인이고 많은 찬송가를 쓴 브리지스... 그를 보며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상기합니다. When June Is Come When June is come, then all the day I’ll sit with my love in the scented hay: And watch the sunshot pal..

오늘의 문장 2022.05.31

이기적인 아이의 기도 (2022년 5월 17일)

사랑은 참으로 묘한 것입니다. 처음 보는 순간 '이 사람이다!' 하고 빠져들게 하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늘 만나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하다 그가 떠난 후에야 사랑이었음을 아는 일도 있습니다. 셸 실버스틴(1930-1999)에 대한 저의 사랑은 뒤늦은 사랑입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엔 존재조차 알지 못하다가 그가 떠나고 2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사랑에 빠졌으니까요. 어쩌면 그는 저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많을 것을 알고 그렇게 많은 시와 그림과 책을 남긴 것인지 모릅니다. 큰사람이 작은 사람을 위로하는 방식이지요. 그를 가까운 친구에게 소개했더니 그도 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친구가 사다준 셸의 책을 열 때는 기대와 슬픔이 동시에 찾아옵니다. 그의 반짝이는 위트와 그 위트가 이 세상을 완전히 떠났음을 깨닫는..

오늘의 문장 2022.05.17

배우 강수연, 스타 강수연 (2022년 5월 14일)

이 나라의 저명인들 중엔 텔레비전과 영화, SNS에서 하하호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엔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도 있고 얼굴을 자주 손보아 '방부제 미모'를 자랑하는 배우들도 있고 명가나 명문대 출신임을 자랑하는 가수들도 있습니다. 그들을 볼 때면 늘 '그대들은 돈은 많은데 가오가 없구나' 생각합니다. 즉, '스타'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럴 때 위로가 된 건 지난 7일 세상을 떠난 배우 강수연 씨 (1966-2022)였습니다. 일찌기 영화사를 쓴 그는 하하호호도 하지 않고 광고에 출연하지도 않았습니다. 꼭 필요한 자리에서 이름에 걸맞게 행동했습니다. 그가 떠나고 난 자리엔 그의 큰 발자국만큼 큰 허공이 남고 사람들은 벌써 '거인 강수연, 대장부 강수연'을 그립니다. 아래 글에서 제 마음과 똑같은..

동행 2022.05.14

노년일기 118: 청둥오리처럼! (2022년 5월 11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어서일까요? 한국은 '길들이는' 나라입니다. 남하고 비슷하게 생각하며 비슷한 목표를 좇고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야 살기도 쉽고 소위 '성공'이란 걸 하기도 쉽습니다. 그러니 각기 다른 사고와 경험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집단 지성'의 효과보다는 비슷하게 살며 '집단 편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집단 우둔'을 초래하는 일이 흔합니다. 거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야성미를 풍기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야성'은 '자연 그대로의 성질'을 말하는데 오늘의 한국에선 어린이들에게서조차 자연스런 천진함보다 어른스런 눈빛이 자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생물들 중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종'들이 있듯이 야성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특질입니다. 인생의 아이러니는 여기..

나의 이야기 2022.05.11

신부님의 실수 (2022년 5월 9일)

지난 주 오랜만에 명동에 나갔습니다. 명동성당 파밀리아홀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그런지 가는 길, 오는 길, 결혼식... 두루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작년 어느 날인가 갔을 때 텅 비어 있던 명동 중앙로가 노점상들과 행인들로 북적이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스크림과 석쇠구이 꼬치를 파는 노점들 주변엔 먹느라 바쁜 사람들이 많았고, 달고나를 만드는 상인 앞에도 기다리는 사람이 여럿이었습니다. 결혼식도 여러모로 새로웠는데, 몇 해 전 혼례와 공연을 위해 새로 지은 파밀리아홀은 성당보다는 개신교 교회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혼례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도 신부님이라기보다는 목사님 같았습니다. 그동안 신부님과 목사님을 접하며 느낀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목사님..

동행 2022.05.09

대만을 배울 시간 (2022년 5월 6일)

저는 대만을 좋아합니다. 온화한 기후도 좋고 그 기후 같은 사람들도 좋습니다. 10년 전인가 국제회의 참석 차 가본 대만은 외화내빈 (外華內貧)적 한국과 정반대여서 좋았습니다. 정신없이 빠르고 현란한 서울과 달리 담담해 보이는 타이페이가 편했습니다. 피로해 보이거나 너무 바빠 보이는 한국인들과 달리 밝고 여유로워 보이는 시민들도 좋았습니다. 밤늦게 지방에서 돌아와 대만 외교부가 타이페이 공항 부근에 잡아준 Pearl Hotel에 들어갔습니다. 호텔 부근이 예전 사회주의 국가처럼 어두웠습니다. 좁은 입구를 들어서자 마자 프론트데스크였는데, 그 데스크도 작고 그 앞 로비 비슷한 공간도 좁고 장식 또한 매우 조촐했습니다. 한 사람뿐인 듯한 직원에게 내일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 하니 모닝콜과 택시 대기를 부탁..

오늘의 문장 2022.05.05

오월의 기도 (2022년 5월 3일)

피는 꽃이 많은 계절엔 시드는 꽃도 많습니다. 피는 꽃엔 박수를 쳐주고 시드는 꽃엔 숨을 불어넣습니다. 티베트 불교의 스승 한 분의 기도가 떠오릅니다. 하루헌에서 나온 에 실린 1대 판첸 라마 (Panchen Lama)*의 기도입니다. "고통이라면 나는 조금도 바라지 않습니다. 행복이라면 나는 아무리 많아도 좋습니다. 이 마음은 다른 사람도 나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도 내 일처럼 기뻐하겠습니다." * 판첸 라마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에 필적하는 지도자이자 학자.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여겨지며 환생으로 후계자가 정해짐.

오늘의 문장 2022.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