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숙 2636

그림자 경주 (2022년 8월 7일)

한낮 햇볕 속을 걸을 땐 언제나 귀여운 작은 아이가 제 앞에서 저와 함께 걷습니다. 제 몸의 4~5분의 1쯤 되는 제 그림자 ... 때로는 그 속에 숨고 싶습니다. 셸 실버스틴도 자기 그림자를 만났나 봅니다. Shadow Race Every time I've raced my shadow When the sun was at my back, It always ran ahead of me, Always got the best of me. But every time I've raced my shadow When my face was toward the sun, I won. -- Shel Silverstein. 그림자 경주 내가 내 그림자하고 경주할 때 해가 내 등 뒤에 있을 땐 언제나 내 그림자가 앞서 달려 나..

오늘의 문장 2022.08.07

아름다운 책 (2022년 8월 4일)

7월 끝자락, 하필 낮 기온이 35도를 오르내리는 날 저희 동네까지 찾아와준 친구의 손에 책 한 권이 들려 있었습니다. . 표지부터 속살까지 온통 하얀데 '전각, 篆刻 세상을 담다'부터 '글 석한남'과 출판사 이름으로 보이는 '廣場'까지 표지의 문자들은 모두 음각하듯 눌러 쓴 글씨이고, 표지 한가운데엔 붉은 색으로 전각된 '유음遊吟'이 눈밭에 앉은 장미꽃처럼 또렷했습니다. 표지 날개 안쪽에 " '유음'은 '정본 여유당전서 定本 與猶堂全書' 19권의 "세상 밖에 놀며 읊조리다 遊吟物外"에서 유래한 것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책을 펼치니 6.25전쟁 전후 부산의 작가들, 화가들, 지식인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던 후원자들에 대한 서술이 있고 '인장을 새겨서 제작하는 서예'인 전각 예술에 대한 소개가 이어..

오늘의 문장 2022.08.04

8월 시의 외침! (2022년 8월 1일)

7월 잔인한 마지막 주를 살아남은 살진 몸집에 8월 소금 품은 아침 이슬이 맺히고 흐르며 맥이 풀립니다. 새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 널브러진 정신이 살아낼 수 있을까, 살아내야 할까, 허둥댑니다. 문득 미국 시인 도로시 파커(Dorothy Parker: 1893-1967)의 시 '8월 (August)'의 외침이 들립니다. 'Summer, do your worst!' 그래, 여름아, 할 테면 해보아라! 널브러졌던 정신과 육체가 힘겹게 일어섭니다. 도로시 파커가 속삭입니다. '넌 살아낼 거야. 베테랑이잖아!' The Veteran Dorothy Parker When I was young and bold and strong, Oh, right was right, and wrong was wrong!..

오늘의 문장 2022.08.01

유산 (2022년 7월 30일)

재력과 권력의 세습으로 '개천의 용'이 멸종되어가는 세상에서 유산을 물려줄 수 없는 부모들은 자녀에게 미안함을 느끼기 쉽습니다. 그럴 땐 '결핍 속에서 창의력이 발현된다'는 사실과 의 몇 구절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월말이 올 때마다 월세와 공과금을 내느라 애쓸, '유산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의 아래 구절들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I see young men, my townsmen, whose misfortune it is to have inherited farms, houses, barns, cattle, and farming tools; for these are more easily acquired than got rid of. Better if they had been born in ..

오늘의 문장 2022.07.30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2022년 7월 28일)

더위는 육신을 점령하고 두통을 야기할 수도 있지만 정신을 점령하진 못합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점령당하진 않았으나 멍한 정신을 수돗물로 씻고 책을 봅니다. 우연히 펼친 책은 법정 스님의 . 책갈피에서 산바람 같은 것이 흘러나옵니다. 수돗물로나마 정신을 씻고 책을 보길 잘했습니다. 스님 말씀 대로 '읽지 않아도 될 글'은 읽을 필요가 없지만 '읽어야 할 글'은 읽어야 합니다. 그나저나 스님, 스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지요? -------------------------------------------------------------------- 110쪽: (법정 스님이 정채봉 선생을 기리며 쓴 글 중) "올 때는 흰 구름 더불어 왔고 갈 때는 함박눈 따라서 갔네 오고가는 그 나그네여 그대는 지금 어느 곳에..

오늘의 문장 2022.07.28

꽃은 물의 꿈 (2022년 7월 23일)

능소화 꽃이 빗속에 떨어집니다. 올려다 보던 꽃들을 내려다봅니다. 저 환한 빛의 다른 이름이 깊은 어둠은 아닐까요. 허공에서 꽃이었던 능소화는 지면에 누워도 꽃, 여전한 꿈! 일러스트-포잇 김수자 씨의 블로그 '시시한 그림일기'에서 본 능소화를 아래에 옮겨둡니다. 맨 아래 글은 김수자 씨의 글입니다. 시 한편 그림 한장 넝쿨 꿈을 꾸던 여름 - 이혜미 illustpoet ・ 2018. 8. 16. 21:22 URL 복사 이웃추가 종이에 색연필 넝쿨 꿈을 꾸던 여름 이혜미 떨어진 능소화를 주워 눈에 비비니 원하던 빛 속이다 여름 꿈을 꾸고 물속을 더듬으면 너르게 펼쳐지는 빛의 내부 잠은 꿈의 넝쿨로 뒤덮여 형체를 잊은 오래된 성곽같지 여름을 뒤집어 꿰맨 꽃 주홍을 내어주고 안팎을 바꾸면 땅속에 허리를 담근..

동행 2022.07.23

이삭 줍기 (2022년 7월 19일)

'이삭 줍기' 하면 제일 먼저 장-프랑수아 밀레 (Jean-Francois Millet: 1814-1875)의 유화 '이삭 줍는 여인들 (The Gleaners)'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삭 줍기'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가 자신의 일기를 표현한 말입니다. 그는 1837년부터 1862년 5월 6일 사망하기 반년 전까지 쓴 일기의 첫머리에 제목처럼 "Gleanings or What Time Has Not Reaped of My Journal" 이라고 썼습니다. "이삭 줍기 또는 시간이 거둬가고 남은 것들"쯤 되겠지요. 그의 일기는 2백만 단어 분량이라고 하는데, 장편소설이 대개 8만 단어에서 10만 단어로 이루어짐을 생각할 ..

오늘의 문장 2022.07.19

매미야 매미야 (2022년 7월 16일)

변덕스런 하늘 아래 산책길 눈 밝은 동행이 보도 한쪽을 가리킵니다. "말매미가 죽었네." 매미 울음소리 한 번 듣지 못했는데 벌써 죽다니요? 기분이 나쁩니다. 초복이 되도록 말매미 참매미 아무도 울지 않습니다. 인터넷엔 매미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들의 글이 있는데 왜 우리집에선 들을 수 없는 걸까요? 뒷산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쓰으으... 말매미 울음소리 매앰 맴... 참매미 울음소리 어서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눈물 없이 완성되는 인생이 없듯 매미 울음 없이 완성되는 여름은 없으니까요. ----------------------------------------------- 어제 위의 글을 썼는데 오늘 매미에게서 답장이 왔습니다. 7월 17일 오전 7시 20분에 도착한 참매미의 답장은 "뛰들뛰들... 매..

동행 2022.07.16

한국인 최초 필즈상 (2022년 7월 6일)

이 블로그에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Fields Medal)'에 관한 글을 올리는 건 두 번째입니다. 2017년 7월 최초의 여성 수상자인 이란의 마리암 미르자하니의 요절을 애도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미르자하니의 나이 겨우 마흔이었습니다. 필즈상은 마흔 살 아래의 수학자만 받을 수 있는 상으로, 미르자하니는 2014년에 받았습니다. 이번 글은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수포자의 나라'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미국에서 공부해 마침내 필즈상 수상자가 된 허준이 (June Huh) 프린스턴대 교수에 관한 것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을 가졌지만 부모 모두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다녔으니 한국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론 그의 국적이 미국이..

동행 2022.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