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숙 2632

<어린 왕자>를 읽는 시간 3 (2022년 4월 25일)

'사랑'은 무엇일까요? 늘 보고 싶은 것. 함께 있고 싶은 것. 자꾸 뭔가를 주고 싶은 것. 그를 위해 내 시간을 낭비하는 것. 21장의 마지막 문단에서 여우는 이렇게 말합니다. And he went back to meet the fox. "Goodbye," he said. "Goodbye," said the fox. "And now here is my secret, a very simple secret: It is only with the heart that one can see rightly; what is essential is invisible to the eye." "What is essential is invisible to the eye," the little prince repeated, ..

오늘의 문장 2022.04.25

한승헌 변호사 님 별세 (2022년 4월 22일)

한승헌 변호사님이 지난 20일에 돌아가셨음을 오늘 아침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부음을 접하는 순간 세상이 기우뚱하는 것 같았습니다. 2015년이었던가요? 제가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를 진행하던 tbs 교통방송의 남산 사옥 1층 로비에서 변호사님을 뵈었습니다. 인터뷰에 출연하시기 위해 변호사님이 오셨다는 얘기를 듣고 1층 로비 카페에서 한참 기다린 끝에 뵈었지요. 그때 이미 여든을 넘기신 어른이셨지만 변호사님은 소년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저를 응시하시며 엷지만 밝은 미소로 긴장을 풀어주셨습니다. 제가 저희 집 아이가 변호사님을 존경하오니 사인을 한 장 해주십시오 하고 A4 용지 한 장을 내밀자, 변호사님은 우아한 필체로 '선과 악이 모두 스승'이라는 논어의 한 구절을 써주셨습니다. 아이의 방에 갈..

동행 2022.04.22

김대중 대통령의 쉰 목소리 (2022년 4월 18일)

김택근의 묵언 성공한 대통령이 있었다 김택근 시인·작가 2008년 10월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대검찰청 국정감사장에서 김대중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다. 100억원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 사본을 흔들며 김대중 비자금의 일부로 추정된다고 수사를 촉구했다. 퇴임 대통령 김대중은 다음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김택근 시인·작가 “한나라당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 내가 100억원의 CD를 가지고 있다는 설이 있다고. 간교하게도 ‘설’이라 하고 원내 발언으로 법적 처벌을 모면하면서 명예훼손의 목적을 달성코자 하고 있다. 나는 그동안 사상적 극우세력과 지역적 편향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 엄청난 음해를 받아왔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는다. 하느님이 계시고 나를 지지하는 많은 국민이 있다. 그리고 당대에 오해하는 사람들도 ..

오늘의 문장 2022.04.18

잃어버린 언어 (2022년 4월 16일)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인천과 제주를 오가던 정기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돼, 삼백 여 명이 사망, 실종되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박근혜 씨가 대통령 직에서 파면되고 문재인 씨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구할 수 있었던 세월호의 승객들을 왜 구하지 않았던 건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소위 MZ세대 한국인들을 기성세대 한국인들이 이해할 수 없게 된 데는 세월호 사건이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믿었던 어른들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걸,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걸 가르쳐준 세월호 사건... 추모도 위로도 오직 말에 그치는 것... 입을 닫습니다. 셸 실버스틴이 '잊어버린 언어 (Forgotten Language)'라고 표현한 것은 어른이 되어가며 잊어버린 감수성을 뜻하겠지만, 우리..

오늘의 문장 2022.04.16

<어린 왕자>를 읽는 시간 2 (2022년 4월 13일)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마트가 문을 열었습니다. 대학 캠퍼스에 지은 상가 건물 1층 거의 전부를 차지한 것입니다. 대학들이 캠퍼스 안에 상가를 만들어 수익사업을 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식당이나 카페, 영화관 같은 게 아니고 이마트라는 게 좀 어색합니다. 어쩌면 이마트의 캠퍼스 입점이 어색한 게 아니고 그것을 어색하게 느끼는 제가 풍조에 뒤진 거겠지요. 이마트와 동네 수퍼들의 차이는 무엇보다 '관계'일 겁니다. 이마트를 자주 간다 해도 '단골'을 알아보는 직원은 드뭅니다. 이번에 새로 생긴 이마트에선 계산원 자체를 보기 힘듭니다. 마트 한 쪽에 계산원을 대신해 계산해 주는 기계들이 죽 놓여 있습니다. 소위 '4차 산업혁명기'에는 가상의 관계가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관계를 대체합니다. 어떤 사람..

오늘의 문장 2022.04.13

<어린왕자>를 읽는 시간 1 (2022년 4월 11일)

방송에도 신문에도 얼굴들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어제 발표한 장관 후보자들입니다. 저만큼 낡은 얼굴들... 시선을 돌립니다. 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언젠가 동무가 미국에서 사다준 선물을 펼칩니다. 캐더린 우즈(Katherie Woods: 1886-1968)가 영어로 번역, 출간한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Exupéry: 1900-1944)의 입니다. 1943년 프랑스어 원서와 함께 출간되어 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는 데 기여한 책입니다. 하드커버를 싼 겉표지가 누렇게 바랜 채 너덜너덜합니다. 80세가 되어가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우즈는 원서 4장에 나오는 'ami (친구)'를 'sheep(양)'으로 번역해 훗날의 번역자들과 독자들에게 'sheep test'라는 재미있..

오늘의 문장 2022.04.11

사람과 나무 (2022년 4월 6일)

잠시 마음놓고 살다 보면 고열 세례를 받게 됩니다. 몸은 불덩이가 되고 정신은 죽음을 기웃거립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가면 다시 산 사람이 됩니다. 백 년이 채 되지 않을 일생 동안 고통에게 앗기는 시간이 적지 않습니다. 청와대 주목이 칠백 마흔 네 살이라는 기사를 보니 제일 먼저 그 나무가 744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태어난 것은 무엇이나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니까요. '살아 1000년, 죽어 1000년, 썩어 1000년'이라는 주목... 지금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 모두 죽은 후에도 살아 있을 주목, 가능하면 덜 아프게 살기를 바랍니다. 기사가 길어 주목 사진 하나만 옮겨둡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주목을 비롯한 청와대의 다양한 보물들에 대한 재미있는 글을 읽을 ..

동행 2022.04.06

사랑은 어려워라 (2022년 4월 3일)

제 사랑의 역사는 제 인생의 역사와 같습니다. 사랑을 받고 주며 자라 늙어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사랑은 살아가는 일처럼 어렵습니다. 사랑은 모순덩어리입니다. 누구나 하지만 양과 정도, 방향이 달라 슬픔과 원망과 질투를 일으키는 일이 잦습니다. 사랑은 가르칠 수 없는 것인데다 높은 데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큼에서 작음으로 흐르다 보니 큰사랑은 외롭고 작은 사랑은 허기집니다. 영국 시인 테드 휴즈 (1930-1998)의 시 '까마귀의 첫 수업'엔 '사랑'을 가르치려다 실패하고 눈물 흘리는 신이 나옵니다. 그 눈물이 때로 우리를 적십니다. 미국의 천재적 시인이며 작가였던 실비아 플라스 (Sylvia Plath: 1932-1963)의 남편으로 잘 알려진 영국 시인 테드 휴즈는 플라스의 자살 후..

나의 이야기 2022.04.03

코로나19가 사라졌대요! (2022년 4월 1일)

코로나19가 사라졌대요! 짙게 드리웠던 검은 구름이 문득 사라지고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나타나듯 코로나19에 잡혀 있던 사람들이 오늘 아침 아무렇지 않게 되었대요 병원에 누웠던 사람들이 소리없이 일어나 집으로 가고 집에서 자가격리 중이던 사람들은 가벼운 몸으로 산책에 나섰대요 일년 만에 찾아온 4월이 코로나19를 쫓아 버렸대요!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만우절입니다. 마음껏 거짓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떠오르는 거짓말이 하나뿐입니다. 코로나19로 고생하는 분들이 문득 아무렇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저도 셸 실버스틴(Shel silverstein)의 만우절 시 같은 시를 썼을지 모릅니다.^^) -----------------------------------------------..

동행 2022.04.01

좌표 찍기 (2022년 3월 30일)

'좌표'는 수학 시간에 처음 접한 단어입니다. 수학 용어답게 가치 중립적이던 이 단어가 지난 몇 년 사이엔 국민을 편 가르는 표현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 표현은 '좌표를 찍다'입니다. 이 어구의 뜻은 '자신과 같은 정치사회적 성향의 사람들에게 공격해야 할 기사나 콘텐츠의 인터넷 주소를 알리는 것'입니다. 어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이 좌표 찍기의 대상이 되면 거기에 수많은 공격적 댓글이 달려 계정의 운영 자체를 어렵게 합니다. 이것은 21세기 첨단 기술 덕에 가능해진 '집단 폭력 행위'로서 실제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집단 폭력 행위보다 훨씬 많은 피해자를 생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자기 검열을 강화시키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 새로운 폭력을 막..

동행 2022.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