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 5

그저 사랑한다는 것은 (2025년 7월 13일)

아파트 꼭대기에 턱을 괴고 앉은 달을 보았습니다. 지쳐 보였습니다. 해의 독재에 지친 것일까요? 사랑하다 지친 것일 수도 있겠지요. 높이 솟은 건물들 사이 엄거주춤한 달을보았습니다. 저 달의 자세는 겸손일까요 비굴일까요,솟는 것 많은 지상에서 가만히 있어도 낮아지는우리 같은 것일까요? 늘 보는 얼굴과 늘 들리는 목소리 아닌 얼굴과목소리를 보고 듣고 싶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1900-1944)의 을펼쳤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 공군으로 참전, 1944년 아홉 번째 정찰 비행에 나섰다가 영영 사라져 버린 비행사-소설가 생텍쥐페리... 88쪽에서 만났습니다. 산상에 돌기둥을 남긴 잉카의 지도자가 종족의 소멸에대해 느꼈을 동정심, 생텍쥐페리가 세계대전 중인 인류를 보며 느꼈을 동정심, 그런 동정심이 지금..

오늘의 문장 2025.07.13

포르쉐 젊은이에게 (2025년 7월 10일)

열대야로 인해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저만치 잠의 실루엣이 보였지만잠은 겁먹은 동물처럼 미적미적했지요.37도가 넘는 낮 후에 찾아온 어둠 속이니그럴 만도 했지요. 그래도 잠은, 용기 내어 키오스크 앞에선 노인처럼, 포기하지 않았어요.가만가만 다가와 다정한 검은 손으로귀와 눈을 닫아 주었지요. 낯익은잠의 손길 덕에 열대야를 잊고꿈나라로 한 걸음 들어섰지요. 내일이 오늘이 되려는 순간이었어요.잠의 품에서 눈을 뜨면 행복한 하루를시작하게 되겠구나, 강 같은 평화에몸과 마음을 담갔어요.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부우~웅, 부우~웅! 동네를 울리는 굉음이 힘겹게 얻은 평화를 조각냈어요. 지나가는 부우~웅이 아니었어요.잠은 승냥이에게 쫓기는 사슴 꼴이 되어죽어라 하고 달아났지요. 잠을 유..

동행 2025.07.10

7월아, 대답해! (2025년 7월 7일)

흐린 하늘 아래를 걷다가 7월에게 묻습니다.이글이글 살을 태우는 태양은 어디로 갔지?7월이 대답합니다. 태양은 저기 구름 뒤에서졸고 있어! 가게들이 사라집니다. 제가 이 동네로 오기전부터 있던 가게들, 두어 해 전 새로 문을 열고 '부자 되세요!'가 적힌 리본 두른 화분들을 문 앞에 세워 두었던 가게들... 가게들도 사람처럼 나이에 상관 없이 '폐업'하고,가게와 사람이 사라진 시공간에 새로운 가게와사람이 나타납니다. 나타남과 사라짐이 순환을이루는 것, 그것이 자연이지요.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1830-1886)의 '7월아 대답해'를 보니 디킨슨도 그 순환과 자연, 그리고 그 자연스러운 순환 속 '지금, 여기'의 중요성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래 시의 마지..

카테고리 없음 2025.07.07

'장수의 저주'를 피하려면 (2025년 7월 4일)

며칠 전 첫째 수양딸과 단골 카페에 갔다가카페 주인과 셋이서 건강을 위해 하는 일상적 노력에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두 사람은 저보다 한참 젊지만건강한 노년을 위한 노력은 해야 할 나이입니다. 제 노력은 걷는 것뿐입니다. 가능하면 매일 동네를걷고 집안에서는 뒤꿈치를 들고 걸어 다닙니다.그래서 그런지 나무젓가락 같다는 얘길 듣던 종아리와넓적다리가 나이 들며 오히려 단단해진 듯합니다. 그 얘기를 듣던 두 사람이 저 하는 짓이 '귀엽다!'고칭찬해 주었습니다. 제가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애써서 노력하지 않으면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아닌 상태에 머물게 돼요. 그렇게 되는 걸 피하려고노력하는 것뿐이에요" 하고 말하니, 두 사람 다 옳은 말이라며, 그런 상태에 놓이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신체의 병..

동행 2025.07.04

천 야드 시선 (2025년 7월 1일)

The Two-Thousand Yard Stare 달력 한 장을 떼어내자 7월의 시선과 마주칩니다.열대야를 앞당긴 6월, 길어진 낮만큼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그 모든 일들이 제게 준 각성을 생각할 때, 그 일들 모두에게두루 감사합니다, 감기까지도. 제게 세상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가득한 책과 같습니다.그러니 아직도 아이 같다는 말을 듣는 거겠지요.그래서일까요? 저는 대개 아이처럼 명랑합니다. 그러나 엊그제 위키백과(Wikipedia)에서 본 그림 한 장이 저의 명랑을 방해합니다. 미국의 화가이며 종군기자인 토머스 리 (Tom Lea, 1907-2001)가 그린 '해병들은 그걸 2천 야드 시선이라 부르네(Marines Call It That 2,000 Yard Stare)'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htt..

동행 2025.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