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참으로 술맛이란 (2023년 4월 19일)

divicom 2023. 4. 19. 17:45

술은 이길 수 없는 적과 같은데,

이기지 못할 싸움은 시작하지 않는 게

좋은데, 그런데도 가끔 술을 마십니다.

 

체질과 체력 모두 음주 자격 미달이니

'부어라 마셔라'는 꿈도 꾸지 못하고

기껏해야 입술이나 목 입구를 적실

뿐이지만, 뻔뻔한 자들, 용서할 수 없는

자들, 억울한 사람들이 술잔을 들게 합니다.

100년 전 현진건이 <술 권하는 사회>에서

주장한 대로 '이 사회란 것'이 술을 권하는

겁니다. 

 

억울하기로 하면 다산 정약용 (1762-1836)만한

이도 드물 텐데... 그는 술을 얼마나 마셨을까요?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썼듯이 입술만

적셨을까요? 아니면 술맛은 포기하고 한 잔

또 한 잔 기울였을까요?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소 물 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에는 적시지도 않고 곧장 목구멍에다

탁 털어넣는데 그들이 무슨 맛을 알겠느냐?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지,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구토를 해대고 잠에 곯아떨어져 버린다면

무슨 술 마시는 정취가 있겠느냐?

요컨대 술 마시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병에

걸리기만 하면 폭사 (暴死) 하기 쉽다.

주독 (酒毒)이 오장육부에 배어들어가

하루아침에 썩어 물크러지면 온몸이

무너지고 만다. 이것이야말로 크게 두려워할

일이다."

  --박석무 편역,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1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