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이길 수 없는 적과 같은데,
이기지 못할 싸움은 시작하지 않는 게
좋은데, 그런데도 가끔 술을 마십니다.
체질과 체력 모두 음주 자격 미달이니
'부어라 마셔라'는 꿈도 꾸지 못하고
기껏해야 입술이나 목 입구를 적실
뿐이지만, 뻔뻔한 자들, 용서할 수 없는
자들, 억울한 사람들이 술잔을 들게 합니다.
100년 전 현진건이 <술 권하는 사회>에서
주장한 대로 '이 사회란 것'이 술을 권하는
겁니다.
억울하기로 하면 다산 정약용 (1762-1836)만한
이도 드물 텐데... 그는 술을 얼마나 마셨을까요?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썼듯이 입술만
적셨을까요? 아니면 술맛은 포기하고 한 잔
또 한 잔 기울였을까요?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소 물 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에는 적시지도 않고 곧장 목구멍에다
탁 털어넣는데 그들이 무슨 맛을 알겠느냐?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지,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구토를 해대고 잠에 곯아떨어져 버린다면
무슨 술 마시는 정취가 있겠느냐?
요컨대 술 마시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병에
걸리기만 하면 폭사 (暴死) 하기 쉽다.
주독 (酒毒)이 오장육부에 배어들어가
하루아침에 썩어 물크러지면 온몸이
무너지고 만다. 이것이야말로 크게 두려워할
일이다."
--박석무 편역,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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