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784

노년일기 218: 친구의 아픔 (2024년 6월 11일)

살아가다 보면 가까운 사람이 아픔을 겪는 걸지켜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기쁨을 나누면두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지만아픔은 나눌 수가 없습니다. 아픔은 대개 겪는 사람만의 것이니까요. 나눌 수 없는 아픔을 겪는 친구를 위해 우리는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상황이 허락하면 그의곁에서 아픔이 초래하는 불편을 줄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허락하지 않아 이만치 떨어져 있게 되면 그의 회복과 고통의 최소화를 위해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오늘 아픈 친구와 오늘 아프지 않은나의 입장이 바뀔 수 있다는 겁니다. 인생은생로병사의 과정이라 평생 아프지 않은 사람은없으니까요.  우리가 아플 때 왕왕 저지르는 실수는 아픈 우리를보러 오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편하고 행복하다고 짐작하는 것입니다. ..

동행 2024.06.11

한국일보와 장기영 사주(2024년 6월 9일)

나이 든 사람에게 숫자는 추억으로 가는 문을여는 비밀번호입니다. 그 숫자가 '월, 일'과 합해져특정한 날짜를 만들면 그날엔 꼼짝없이 추억의 포로가 됩니다. 오늘은 6월 9일, 보통 사람에겐 별 의미 없을이날이 제겐 잊지 못할 날입니다. 장기영 사주가한국일보를 창간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일보사가 일곱 개의 신문과 잡지를 발행하며한국 언론의 중추적 역할을 하던 1976년 말, 저는 한국일보사가 실시한 33기 견습기자 시험을 치렀습니다. 두 차례의 필기시험과 한 번의 면접시험을 통과한사람들이 견습기자 선발의 마지막 관문인 사주 면접을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중학동 옛 한국일보 건물 10층사주실에서 장기영 사주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상업고교 출신으로 부총리를 역임한 입지전적인물일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처음으로..

동행 2024.06.09

화장실 문 좀... (2024년 6월 4일)

제가 산책길에 가끔 들르는 카페엔 두 개의화장실이 있습니다. 남녀 공용 화장실은홀에 있고 여성 전용 화장실은 홀 왼쪽 방에있습니다. 홀에 있든 방에 있든 화장실에 가는 사람이 있으면 보입니다. 그런데 그들의행태가 놀랍습니다. 열 명 중 여덟은 노크하지 않고 문 손잡이를 돌립니다. 열리지 않으면 그제야 문을 두드립니다. 화장실 전등 스위치와 배기 스위치는 문 오른쪽에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하며 왜 불이 들어오지 않나 하는 투로 머리를갸웃거립니다.  스위치를 올리고 불이 들어왔는지확인하기 전에 바로 내리고 다시 올리고 하는 겁니다. 무엇이 그리 급한 걸까요?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후 손을 씻지 않고나오는 사람도 많고, 손을 씻되 문을 열어두고씻는 사람도 있습니다. 화장실 문을 열어둔 ..

동행 2024.06.04

노년일기 213: 보청기를 끼세요! (2024년 5월 2일)

오랜만에 간 은행은 노인정 같았습니다.기다리는 사람의 80퍼센트는 노인이었습니다.직원이 없는 창구가 2~30퍼센트쯤 되니기다림은 길었습니다. 은행은 큰 영업 이익을기록했지만 창구 직원을 많이 줄였다고 합니다. 오전인데도 창구의 직원들이 지쳐 보여안쓰러웠습니다. 저도 머리가 하얀 노인이지만어떤 노인들은 미웠습니다.  미운 노인들 중엔 귀가 안 들리는 노인이많았습니다. 은행원이 큰소리로 말해도 안 들린다며 같은 말을 대여섯 번 하게 하는 노인이 흔했습니다.  혼자 은행에 올 정도로 건강하다면 보청기를 맞춰 낄 수 있을 거고, 그러면 은행원은 물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힘겨움을 다소나마 덜어 줄 수 있을 텐데...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 중엔 듣지 못함을한탄할 뿐, 듣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주변인들이얼마나 ..

동행 2024.05.02

노년일기 212: 풍선껌 부는 '예쁜' 노인 (2024년 4월 29일)

어젠 아마도 생애 처음으로 의정부에 다녀왔습니다.제 인생은 여러 사람에게 빚지고 있는데, 오래된빚쟁이 중 한 분인 이모를 뵈러 간 것입니다.  용민동에서 제일 좋다는 요양원에 계신 이모가휠체어를 타신 채 나타나셨습니다."이모!" 소리치는 제게 이모는 "아이구 예뻐라! 어쩜 이렇게 예뻐!" 하셨습니다. 윤석열식 나이로 곧 70세가 되는 흰머리에게 예쁘다니요?! 그리고 곧 깨달았습니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눈 속에 있다 (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더니, 이모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1981년 초 어느 날 어머니를 만나러 친구분 댁에갔다가 그 친구분의 고교 동창생인 이모를 처음만났습니다. 제가 떠난 후 이모가 저에 대해 물었고, 동창인 집주인이 제가 신..

동행 2024.04.29

테리 앤더슨을 추모함 (2024년 4월 25일)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로 15년을 살고10여년 동안 신문방송에 칼럼을 연재했지만, 진실을 보도하려 애쓰다 죽기 직전까지 가거나영어(囹圄)의 몸이 된 적은 없습니다.그러니 테리 앤더슨(Terry Alan Anderson: 1947-2024) 같은 기자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거지요.지난 21일 영면에 든 앤더슨씨의 자유와 평안을 기원하며동아일보 김승련 논설위원이  '횡설수설' 칼럼에 쓴글을 아래에 옮겨둡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기사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40423/124622749/1     1980년 5월 광주의 한 모텔에 몇몇 외국인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모텔 창문 밖으로 멀리 저항에 나선 광주시민들이 보였..

동행 2024.04.25

세월호 참사 10주기 (2024년 4월 16일)

잊고 살던 부끄러움이 살아나는 날입니다. 정치(政治)는 정치(正治)가 아니니 우리는 아마도 죽는 날까지 '왜' 세월호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았는지 모를 겁니다. 세월호 참사 덕에, 3백 명이 넘는 희생자들 덕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고 그 참사 덕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정계에 진출한 사람도 여럿입니다. 그러나 그 정부와 그 정치인들은 '왜'를 밝히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 정부에 몸담았던 사람들과 그 정치인들중에 그 실패를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는지, 살 수 있었지만 살 수 없었던 세월호 승객들에게 부끄러워하며 사는 사람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나이 들 시간, 자신의 몸이 자신의 정신을 배반하는 시간 혹은 자신의 정신이 자신을 배반하는 시간을 경험하지 못하고 죽은 단원고 학생들... 추하게 늙어 가는 욕망가들..

동행 2024.04.16

좋은 날 (2024년 4월 11일)

경기도 화성 함백산추모공원에 가는 길엔 봄꽃이 화려했습니다. 장례식장과 화장장, 봉안당이 함께 있는 함백산추모공원은 경기도의 6개 지자체가 함께 만든 시설이라고 합니다. 간선도로와 추모공원 주변에 흐드러진 벚꽃이 바람을 타고 눈처럼 날렸습니다. 아름다운 날이구나, 떠나기 좋은 날이구나, 살기에도 좋고 죽기에도 좋은 날이구나... 장례식장 사진 속엔 세 살 아래인 사촌 동생이 웃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열심히 당차게 살던 이정자... 어쩌다 한 번 만나도 살갑게 '언니 언니'하던 정자, 투병 중이면서도 지난 2월 우리 어머니 장례식에 와서 "고모가 돌아가셨는데 내가 당연히 와야죠" 큰눈으로 웃던 정자, 67년 생애 동안 온갖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꺾이지 않던 정자...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항암치료에 핏기 잃..

동행 2024.04.11

봄아씨 꽃아씨 (2024년 3월 23일)

꽃마다 엄마 얼굴 엄마 목소리입니다. 지난 목요일이 엄마 95번 째 생신이었는데 저는 여전히 안개처럼 몽롱한 채 아무것도 못하고 아우 김수자가 자신의 블로그 '시시(詩詩)한 그림일기'에 올린 엄마 기리는 편지와 그림만 옮겨둡니다. 박목월 시인의 시 아래 글은 김수자의 글입니다. 시 한편 그림 한장 봄 부르는 소리 - 박목월 종이에 분채, 부분 봄 부르는 소리 박목월 뒷산에는 눈 녹은 개울물 소리 돌돌돌 돌돌돌 봄을 부르네 봄아씨 꽃아씨 어서 오세요 꽃수레 꿈수레 타고 오세요 얼음이 풀려서 시냇물 소리 돌돌돌 돌돌돌 봄을 부르네 은실비 봄비를 앞장 세우고 봄아씨 꽃아씨 어서 오세요 산에도 들에도 꽃방석 펴면 우리도 즐겁게 봄잔치 하자 ----------------------------------------..

동행 2024.03.23

슬픔을 위한 자리 (2024년 3월 17일)

고아가 된 지 33일. 유명한 사람들의 삶을 엮은 기록이 역사라면 평범한 사람의 일생은 그가 겪은 슬픔의 기록일지 모릅니다. 낯선 고아 생활, 책과 음악 덕에 견디고 있습니다. '우리는 슬픔 속에서만' 자람을 기억하며 가슴 한쪽에 슬픔을 위한 자리를 내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HidJXZl8gc&ab_channel=JimmyStrain Peace of Mind You're not getting stronger or slower You're not growing, but just getting old You gotta set aside a spot for sorrow so you can live with it and have peace of mind We o..

동행 2024.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