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카페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동네 카페들은 대개 교회와
성당을 다녀온 사람들이 뒤풀이하는 장소로 쓰이니까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도 예외가 아니지만 그래도
그리로 갔습니다.
교회에 다녀온 사람들이 두 그룹으로 앉아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제가 좋아하는 자리를 차지한 두 청춘남녀는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습니다. 빈자리라고는 그 남녀의
옆 테이블뿐이라 거기에 앉았습니다. 보려 하지 않아도
그들의 움직임이 보였습니다.
<어린왕자>로 유명한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Exupéry
(1900—1944)의 말처럼 사랑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라 생각하는지, 두 사람은 테이블
한편의 두 의자에 붙어 앉아 있었습니다.
코감기에 걸린 듯한 남자는 연신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데, 여자는시선을 남자의 얼굴에
꽂은 채 남자를 껴안았다 풀었다 했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껴안으면 남자도 잠깐 여자를 포옹했다가 풀곤 하는 것을
보다 보니,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보다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마음이 크겠구나, 두 사람어 혹시 결혼을 하면
여자가 많이 외롭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그녀가
안쓰러웠습니다.
제 젊은 시절 어머니들은 곧잘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보다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더 행복하다고. 그리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주변의
부부들을 보며 그 말씀이 옳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제 또래들이 연애하던 시절은
반 세기 전이니 요즘과는 전혀 다른 세상인데, 그 시절을
산 사람들이 그렇다고 해서 요즘 사람들도 그럴 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때는 20대에 결혼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요즘은 서른 넘어 결혼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요즘 풍조를 보면, 어제 제 옆자리에서 포옹했다 풀었다
하던 20대 남녀가 결혼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겁니다.
그래도 한동안은 헤어지지 말고 10월, 11월, 가능하면
새해에도 만남을 이어가며 포옹했다 풀었다 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일요일에도 제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은
그들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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