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778

노년일기 221: 부모의 잘잘못 (2024년 6월 21일)

누구나 말년은 위험합니다.마지막 몇 해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평생의 잘못이 옅어지기도 하고, 애써 쌓은성취가 무너지기도 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우리보다 먼저 말년을 맞는부모는 우리의 스승입니다. 늙은 부모의언행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모두 자기 부모보다 나은 노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와 사별하며 흘리는 눈물은 부모의 잘못을 지워주는 지우개일지 모릅니다.처음으로 부모 노릇을 하느라 실수하신 거라고.부모 또한 죽음 앞에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처럼한탄했을 거라고. '깊이 사랑했으나 현명하게 사랑하지 못했구나!' 그러니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분들의잘못을 되뇌이며 원망하는 것처럼 어리석은일도 없을 겁니다. 미국 작가 레모니 스니켓 (Lemony Snicket:본명: Daniel Handler: ..

동행 2024.06.21

블로그와 애도 (2024년 6월 19일)

그전에도 이 블로그를 찾는 방문객은기껏해야 하루 수십 명이었습니다.그리고 이제 그 수는 한 자리에 그칠 때가많습니다. 방문객의 감소는 지금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데 혹은 잊히는 데 걸리는 시간을 보여줍니다.  9년 전 아버지 장례를 치를 때 들은장례지도사의 말이 떠오릅니다. "옛날에는 3년상을 치렀지만, 이젠 돌아가신 분을 3년씩 애도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아요.요즘은 보통 3일장을 치르는데, 3일장이끝나면 애도도 끝나요. 3일장이 곧3일상이지요." 9년 전 첫 스승이자 친구인 아버지를 잃고다시 생활로 복귀하는 데 몇 해가 걸렸습니다.여러 사람이 제게 위로하듯 핀잔하듯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아흔에 돌아가셨는데환갑 넘은 딸이 이렇게 오래 슬퍼하다니.' 그새 제 나이는 아홉 살이나 늘었고 어머니는 아흔넷에..

동행 2024.06.19

노년일기 220: 세상에서 제일 고약한 냄새 (2024년 6월 16일)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예능 프로그램에출연한 경찰 출신 범죄학자 김복준 씨를 보았습니다. 1982년에 경찰이 되어 2013년에 명예퇴직할 때까지그는 강력계 형사로 일하며 수많은 범죄를 해결하고범죄자를 검거했습니다. 그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 씨가연기한 박두만 형사의 실제 모델이라고도 하는데,  특히 후각이 예민해 시신의 냄새를 맡고 사망 시점을 유추해 내는 데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세상에서 제일 고약한 냄새가 뭔지 아느냐고묻자, 그와 함께 있던 연예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오래된시신의 냄새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오래 전 어떤집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 집에서 아주 심한 악취가 나자 동료들 모두 사망한 지한참 된 시신의 냄새라고 했다고..

동행 2024.06.16

노년일기 219: 그들을 용서하지 마!(2024년 6월 14일)

저의 하루도 성장의 시간이었던 때가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 저의 하루는 슬픔과 탄식의 시간인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제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하는 건 지난 5월 23일 '얼차려 군기훈련' 중에 쓰러져 이틀 후 숨진 훈련병입니다. 5월 27일 한겨레신문 사설을 보면 훈련병은 얼차려를 시킨지휘관으로 인해 죽음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에 사설 일부를 옮겨둡니다.  "당시 훈련병들은 전날 밤에 떠들었다는 이유로 이튿날 오후 약 20㎏에 이르는 완전군장을 차고 연병장을 구보(달리기)로 도는 군기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통상 ‘얼차려’로 불리는 군기훈련은 지휘관 지적 사항이  있을 때 군기 확립을 위해 장병들에게 지시하는 일종의 벌칙으로, ‘공개된 장소에서 훈련 대상자의 신체 상태를 고려해 체력을 증진시키거..

동행 2024.06.14

노년일기 218: 친구의 아픔 (2024년 6월 11일)

살아가다 보면 가까운 사람이 아픔을 겪는 걸지켜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기쁨을 나누면두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지만아픔은 나눌 수가 없습니다. 아픔은 대개 겪는 사람만의 것이니까요. 나눌 수 없는 아픔을 겪는 친구를 위해 우리는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상황이 허락하면 그의곁에서 아픔이 초래하는 불편을 줄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허락하지 않아 이만치 떨어져 있게 되면 그의 회복과 고통의 최소화를 위해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오늘 아픈 친구와 오늘 아프지 않은나의 입장이 바뀔 수 있다는 겁니다. 인생은생로병사의 과정이라 평생 아프지 않은 사람은없으니까요.  우리가 아플 때 왕왕 저지르는 실수는 아픈 우리를보러 오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편하고 행복하다고 짐작하는 것입니다. ..

동행 2024.06.11

한국일보와 장기영 사주(2024년 6월 9일)

나이 든 사람에게 숫자는 추억으로 가는 문을여는 비밀번호입니다. 그 숫자가 '월, 일'과 합해져특정한 날짜를 만들면 그날엔 꼼짝없이 추억의 포로가 됩니다. 오늘은 6월 9일, 보통 사람에겐 별 의미 없을이날이 제겐 잊지 못할 날입니다. 장기영 사주가한국일보를 창간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일보사가 일곱 개의 신문과 잡지를 발행하며한국 언론의 중추적 역할을 하던 1976년 말, 저는 한국일보사가 실시한 33기 견습기자 시험을 치렀습니다. 두 차례의 필기시험과 한 번의 면접시험을 통과한사람들이 견습기자 선발의 마지막 관문인 사주 면접을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중학동 옛 한국일보 건물 10층사주실에서 장기영 사주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상업고교 출신으로 부총리를 역임한 입지전적인물일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처음으로..

동행 2024.06.09

화장실 문 좀... (2024년 6월 4일)

제가 산책길에 가끔 들르는 카페엔 두 개의화장실이 있습니다. 남녀 공용 화장실은홀에 있고 여성 전용 화장실은 홀 왼쪽 방에있습니다. 홀에 있든 방에 있든 화장실에 가는 사람이 있으면 보입니다. 그런데 그들의행태가 놀랍습니다. 열 명 중 여덟은 노크하지 않고 문 손잡이를 돌립니다. 열리지 않으면 그제야 문을 두드립니다. 화장실 전등 스위치와 배기 스위치는 문 오른쪽에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하며 왜 불이 들어오지 않나 하는 투로 머리를갸웃거립니다.  스위치를 올리고 불이 들어왔는지확인하기 전에 바로 내리고 다시 올리고 하는 겁니다. 무엇이 그리 급한 걸까요?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후 손을 씻지 않고나오는 사람도 많고, 손을 씻되 문을 열어두고씻는 사람도 있습니다. 화장실 문을 열어둔 ..

동행 2024.06.04

노년일기 213: 보청기를 끼세요! (2024년 5월 2일)

오랜만에 간 은행은 노인정 같았습니다.기다리는 사람의 80퍼센트는 노인이었습니다.직원이 없는 창구가 2~30퍼센트쯤 되니기다림은 길었습니다. 은행은 큰 영업 이익을기록했지만 창구 직원을 많이 줄였다고 합니다. 오전인데도 창구의 직원들이 지쳐 보여안쓰러웠습니다. 저도 머리가 하얀 노인이지만어떤 노인들은 미웠습니다.  미운 노인들 중엔 귀가 안 들리는 노인이많았습니다. 은행원이 큰소리로 말해도 안 들린다며 같은 말을 대여섯 번 하게 하는 노인이 흔했습니다.  혼자 은행에 올 정도로 건강하다면 보청기를 맞춰 낄 수 있을 거고, 그러면 은행원은 물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힘겨움을 다소나마 덜어 줄 수 있을 텐데...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 중엔 듣지 못함을한탄할 뿐, 듣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주변인들이얼마나 ..

동행 2024.05.02

노년일기 212: 풍선껌 부는 '예쁜' 노인 (2024년 4월 29일)

어젠 아마도 생애 처음으로 의정부에 다녀왔습니다.제 인생은 여러 사람에게 빚지고 있는데, 오래된빚쟁이 중 한 분인 이모를 뵈러 간 것입니다.  용민동에서 제일 좋다는 요양원에 계신 이모가휠체어를 타신 채 나타나셨습니다."이모!" 소리치는 제게 이모는 "아이구 예뻐라! 어쩜 이렇게 예뻐!" 하셨습니다. 윤석열식 나이로 곧 70세가 되는 흰머리에게 예쁘다니요?! 그리고 곧 깨달았습니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눈 속에 있다 (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더니, 이모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1981년 초 어느 날 어머니를 만나러 친구분 댁에갔다가 그 친구분의 고교 동창생인 이모를 처음만났습니다. 제가 떠난 후 이모가 저에 대해 물었고, 동창인 집주인이 제가 신..

동행 2024.04.29

테리 앤더슨을 추모함 (2024년 4월 25일)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로 15년을 살고10여년 동안 신문방송에 칼럼을 연재했지만, 진실을 보도하려 애쓰다 죽기 직전까지 가거나영어(囹圄)의 몸이 된 적은 없습니다.그러니 테리 앤더슨(Terry Alan Anderson: 1947-2024) 같은 기자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거지요.지난 21일 영면에 든 앤더슨씨의 자유와 평안을 기원하며동아일보 김승련 논설위원이  '횡설수설' 칼럼에 쓴글을 아래에 옮겨둡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기사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40423/124622749/1     1980년 5월 광주의 한 모텔에 몇몇 외국인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모텔 창문 밖으로 멀리 저항에 나선 광주시민들이 보였..

동행 2024.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