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청탁을 받아 짧은 글을 써 보냈습니다.
그쪽에서 편집해 보내온 글을 보니 첫 문단이 조금
달라져 있었습니다. 편집은 글을 더 낫게 하기 위한
과정인데, 그 목적에 합당한 편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집자가 자기 글에 손대면 심하게 화내는 필자도
있다지만, 저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편집자들이
제 글을 손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제가 편집자의 권리를 존중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신문과 통신에서 15년을 일했고 쓰거나
번역한 책이 20여 권이니, 저는 편집자의 권리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편집자와 연락해 편집된 글에 대해 얘기하니 매체의
특성에 맞게 고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로 선 그 매체의
특성과 그 글의 변화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매체의 특성에 대해선 몸담고 있는 사람이
저보다 잘 알 겁니다. 짧은 논의 끝에 편집된 글의 일부를
들어내는 것으로 결론 짓고 나니 최근에 방영된 '나는 솔로'가
떠올랐습니다.
'나는 솔로'는 남녀 각 예닐곱 명으로 한 기를 이루어
진행하는 일종의 짝짓기 프로그램으로, 한 기 에피소드가
대개 6, 7 회 방영됩니다. 그런데 가장 최근 기수의
에피소드 첫회가 방영되자마자 큰 물의가 일었습니다.
첫회를 본 시청자들이 출연진 중 한 사람의 범죄 사실을
폭로한 것입니다.
그 사건을 접하자 제일 먼저 그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피디와 작가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미 만들어 둔 6, 7회
방영분을 편집해 문제의 출연자를 빼고 빠른 시일 안에
다시 새로운 방영분을 만들어 내야 할 테니까요.
그 어려움 때문인지 지난 수요일에 방영된 2회분은
원래 '나는 솔로'보다 15분가량 짧았습니다. 문제의
출연자는 자신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했다는데,
편집진의 노고를 모르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곘지요.
글의 창작과 방송의 제작 모두 어렵지만 그 내용이
독자와 시청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게 하는
과정으로써 편집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편집된 완성본이 열심히 성실하게 산 사람의 일생을
왜곡하는 부고 꼴이 될 수 있으니까요.
'나는 솔로' 제작진 여러분, 힘내세요!
'동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윙크'의사 서연주 (2024년 11월 12일) (3) | 2024.11.12 |
---|---|
노년일기 235: 나쁜 친구 (2024년 11월 10일) (1) | 2024.11.10 |
마트가 망하는 이유 (2024년 11월 6일) (2) | 2024.11.06 |
노년일기 234: 전화 (2024년 11월 3일) (4) | 2024.11.03 |
시월의 마지막 날, 그리고 에곤 실레 (2024년 10월 31일) (2) | 2024.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