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785

교수를 위한 자리는 없다 (2022년 6월 17일)

대학을 죽이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 답이 있습니다. 교수 식당이 대학을 죽인다 한국의 대학 건물 중 괴물 같은 명칭은 단연 교수 식당 내지는 교직원 식당이다. 밥 먹을 때도 신분 직함을 따져 장소를 갈라놓았으니, 갈라치기의 원조 격이다. 한적한 교수 식당에 비해 학생 식당은 늘 많은 사람으로 긴 줄을 서야 한다. 허기를 달고 사는 학생들은 낮은 가격의 학생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서너 시간 뒤 시장기로 뒤틀린 창자의 교향곡을 들으며 공부하고 연구한다. 미국 대학에 오니, 교수나 학생 구분 없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에 줄만 서면 되었다. 먹는 장소의 차별이 신분에 따라, 그것도 지성을 대표한다는 대학에 버젓이 존재하는 나라였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저명인사 초청 세미나. 컵과 음식물에 엑스 표..

동행 2022.06.17

참말 (2022년 5월 26일)

지난 4일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졸저 의 한 구절이 인용됐습니다. "그래도 나는 사람은 참말을 한다고 믿고 싶다"라는 구절입니다. 24쪽에서 26쪽에 게재된 '나쁜 짓'이라는 제목의 글을 한 줄로 요약하여 27쪽에 출판사 (서울셀렉션) 편집진이 보라색으로 써넣은 것입니다. 제 책들이 대개 그렇듯 도 제 인격만큼 작은 책이고 많이 팔리지 않지만, 저는 이 보라색 표지의 책을 좋아합니다. 멀리 사는 친구가 아주 좋아하는데다 출판사 편집진이 이 책에 보여준 지극한 사랑 때문입니다. 책을 내고 나면 늘 부끄럽습니다. 제 책들은 대부분 벌거벗은 마음을 드러내니까요. 위안을 주는 건 오직 한 가지, 책에 실린 말이 다 '참말'이라는 겁니다.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고 '참말'이 '거짓말'보다 쉬워서 '참말'을 합니..

동행 2022.05.26

배우 강수연, 스타 강수연 (2022년 5월 14일)

이 나라의 저명인들 중엔 텔레비전과 영화, SNS에서 하하호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엔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도 있고 얼굴을 자주 손보아 '방부제 미모'를 자랑하는 배우들도 있고 명가나 명문대 출신임을 자랑하는 가수들도 있습니다. 그들을 볼 때면 늘 '그대들은 돈은 많은데 가오가 없구나' 생각합니다. 즉, '스타'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럴 때 위로가 된 건 지난 7일 세상을 떠난 배우 강수연 씨 (1966-2022)였습니다. 일찌기 영화사를 쓴 그는 하하호호도 하지 않고 광고에 출연하지도 않았습니다. 꼭 필요한 자리에서 이름에 걸맞게 행동했습니다. 그가 떠나고 난 자리엔 그의 큰 발자국만큼 큰 허공이 남고 사람들은 벌써 '거인 강수연, 대장부 강수연'을 그립니다. 아래 글에서 제 마음과 똑같은..

동행 2022.05.14

신부님의 실수 (2022년 5월 9일)

지난 주 오랜만에 명동에 나갔습니다. 명동성당 파밀리아홀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그런지 가는 길, 오는 길, 결혼식... 두루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작년 어느 날인가 갔을 때 텅 비어 있던 명동 중앙로가 노점상들과 행인들로 북적이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스크림과 석쇠구이 꼬치를 파는 노점들 주변엔 먹느라 바쁜 사람들이 많았고, 달고나를 만드는 상인 앞에도 기다리는 사람이 여럿이었습니다. 결혼식도 여러모로 새로웠는데, 몇 해 전 혼례와 공연을 위해 새로 지은 파밀리아홀은 성당보다는 개신교 교회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혼례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도 신부님이라기보다는 목사님 같았습니다. 그동안 신부님과 목사님을 접하며 느낀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목사님..

동행 2022.05.09

한승헌 변호사 님 별세 (2022년 4월 22일)

한승헌 변호사님이 지난 20일에 돌아가셨음을 오늘 아침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부음을 접하는 순간 세상이 기우뚱하는 것 같았습니다. 2015년이었던가요? 제가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를 진행하던 tbs 교통방송의 남산 사옥 1층 로비에서 변호사님을 뵈었습니다. 인터뷰에 출연하시기 위해 변호사님이 오셨다는 얘기를 듣고 1층 로비 카페에서 한참 기다린 끝에 뵈었지요. 그때 이미 여든을 넘기신 어른이셨지만 변호사님은 소년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저를 응시하시며 엷지만 밝은 미소로 긴장을 풀어주셨습니다. 제가 저희 집 아이가 변호사님을 존경하오니 사인을 한 장 해주십시오 하고 A4 용지 한 장을 내밀자, 변호사님은 우아한 필체로 '선과 악이 모두 스승'이라는 논어의 한 구절을 써주셨습니다. 아이의 방에 갈..

동행 2022.04.22

사람과 나무 (2022년 4월 6일)

잠시 마음놓고 살다 보면 고열 세례를 받게 됩니다. 몸은 불덩이가 되고 정신은 죽음을 기웃거립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가면 다시 산 사람이 됩니다. 백 년이 채 되지 않을 일생 동안 고통에게 앗기는 시간이 적지 않습니다. 청와대 주목이 칠백 마흔 네 살이라는 기사를 보니 제일 먼저 그 나무가 744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태어난 것은 무엇이나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니까요. '살아 1000년, 죽어 1000년, 썩어 1000년'이라는 주목... 지금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 모두 죽은 후에도 살아 있을 주목, 가능하면 덜 아프게 살기를 바랍니다. 기사가 길어 주목 사진 하나만 옮겨둡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주목을 비롯한 청와대의 다양한 보물들에 대한 재미있는 글을 읽을 ..

동행 2022.04.06

코로나19가 사라졌대요! (2022년 4월 1일)

코로나19가 사라졌대요! 짙게 드리웠던 검은 구름이 문득 사라지고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나타나듯 코로나19에 잡혀 있던 사람들이 오늘 아침 아무렇지 않게 되었대요 병원에 누웠던 사람들이 소리없이 일어나 집으로 가고 집에서 자가격리 중이던 사람들은 가벼운 몸으로 산책에 나섰대요 일년 만에 찾아온 4월이 코로나19를 쫓아 버렸대요!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만우절입니다. 마음껏 거짓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떠오르는 거짓말이 하나뿐입니다. 코로나19로 고생하는 분들이 문득 아무렇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저도 셸 실버스틴(Shel silverstein)의 만우절 시 같은 시를 썼을지 모릅니다.^^) -----------------------------------------------..

동행 2022.04.01

좌표 찍기 (2022년 3월 30일)

'좌표'는 수학 시간에 처음 접한 단어입니다. 수학 용어답게 가치 중립적이던 이 단어가 지난 몇 년 사이엔 국민을 편 가르는 표현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 표현은 '좌표를 찍다'입니다. 이 어구의 뜻은 '자신과 같은 정치사회적 성향의 사람들에게 공격해야 할 기사나 콘텐츠의 인터넷 주소를 알리는 것'입니다. 어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이 좌표 찍기의 대상이 되면 거기에 수많은 공격적 댓글이 달려 계정의 운영 자체를 어렵게 합니다. 이것은 21세기 첨단 기술 덕에 가능해진 '집단 폭력 행위'로서 실제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집단 폭력 행위보다 훨씬 많은 피해자를 생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자기 검열을 강화시키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 새로운 폭력을 막..

동행 2022.03.30

음식물 쓰레기로 '인공 등유' 를! (2022년 3월 28일)

코로나19 확산으로 식당에 가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만 식당에 가면 가능한 한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 합니다. 아무리 귀한 음식도 식탁을 떠나는 순간 쓰레기가 되니 가능한 한 그걸 막으려는 것이지요. 한국은 반찬을 많이 먹는 나라답게 음식물 쓰레기도 많이 배출합니다. 1인당 연간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이 134킬로그램이나 되고 거기서 발생하는 온실 가스가 222킬로그램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음식물 쓰레기가 무서워 먹고 싶은 것을 참을 필요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는 사료로도 쓰이고 비료로도 쓰이니 걱정 말고 먹다 남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배출을 줄이는 게 재활용보다 쉬운 게 음식물 쓰레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놀라운 기사를 보았습니다. 영국 공군이 음식..

동행 2022.03.28

쑥맥, 쉽상, 산수갑산 (2022년 3월 15일)

국립 국어연구원에 따르면,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44만여 개의 주표제어 중 약 57퍼센트가 한자어이며, 거기에 한자어와 고유어가 결합한 복합어를 더하면 그 비율은 더 올라간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한자어를 빼면 우리말 사용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한자를 아는 한국인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한자를 몰라 우리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의 수는 늘고 있습니다. 잘못된 공교육의 탓이 크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경향신문 '우리말 산책' 같은 칼럼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러고 보니 '산책'도 '다행'도 한자어네요! 한자를 알아야 우리말 ‘쑥맥’에서 벗어난다 엄민용 기자 사람들이 너나없이 쓰더라도 표준어가 되기 어려운 말들이 있다. 한자말인 경우가 대표 사례다. 한자 각각의 음을 밝혀 적어야..

동행 2022.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