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862

어머님, 부디 평안하소서.

점심 약속 하루 전날 친구가 핸드폰 문자를 보냈습니다. "내일 약속 미뤄주세요. 엄마 먼 길 배웅한 뒤로..." 알 수 없는 찬 기운이 온 몸을 세로로 관통했습니다. 며칠 전, 어머니가 감기에 걸리셨다고, "감기조차 꿋꿋하게 이겨내지 못해 산소호흡기를 코에 끼운 엄마를 보고 돌아와 심란"하다고 이메일에 써 보냈던 친구입니다. 문자를 보자마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면 어쩌나 하는 예의바른 망설임은 젖혀두었습니다. 울먹이느라 말을 잇기 힘든 상황에서도 친구는 어머님 모신 병원을 말해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어디 모셨는지 알면 감기 중인 제가 먼 곳까지 걸음을 할 테니 알려주지 않겠다는 겁니다. 사람의 크기는 위기에서 드러난다더니 그 말이 참말이었습니다. 잘 건너지 않는 한강을 건너 어..

나의 이야기 2010.02.10

행동하는 양심

1월의 마지막 주와 2월 초입에 들려온 슬픈 소식 두 가지. 소식의 주인공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 (Howard Zinn)입니다. '행동하는 양심'을 주창하고 그렇게 불린 분들입니다. 태어나 산 곳도 직업도 달랐지만 지향점은 같았던 두 분입니다. 하워드 진은 1월 27일 타계했고, 2월 2일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김 전 대통령 묘소 부근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두 가지가 다 애석한 일이지만 제겐 화재 사건이 더 큰 슬픔을 일으킵니다. 같은 한국인인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분의 생전과 사후, 그분이 견뎌야 했고 여전히 견디고 있는 폭력적 무례 때문입니다. 현충원 측은 현장에서 삼백 미터 가량 떨어진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과 무명용사 위령탑 부근에서 김 전 대통령을 친공산주의..

나의 이야기 2010.02.08

황금을 찾아서

중국 북부 하라하테 산맥에서 금을 찾던 일곱 사람이 얼어죽었다고 합니다. 이미터 높이의 눈에 갇힌 채 함께 금을 찾아 헤매던 열여섯 명은 구조되었지만 금을 찾겠다는 꿈을 꾸던 일곱 사람은 꿈 속의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금을 찾아 부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신장과 티베트 등 산간 오지를 헤매고 있다고 합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기온이 영하 사십오 도 이하로 떨어지지만 금을 향한 열정은 식지 않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접하니 새삼 사람과 황금의 관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과 황금' 하면 제일 먼저 '황금뇌를 가진 사나이'가 떠오릅니다. '황금뇌를 가진 사나이'는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단편으로, 원래 제목은 '황금뇌'인데 번역과정에서 '황금..

나의 이야기 2010.01.26

인연

오래된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합니다. 모두 전에 다니던 직장의 동료들입니다. 식탁 위를 오가는 얘기는 과거에서 시작해 현재로 흐릅니다. 과거가 강이라면 현재는 시내입니다. 시냇물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 갈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무도 마음 졸이지 않습니다. 모든 물은 바다에서 만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미래는 고작 의지를 북돋우지만 과거는 평화를 줍니다. 오늘의 세상은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앞으로'를 외치니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이 적으니 세상이 자꾸 싸움터가 되어 갑니다. 직장이 생활전선이라면 함께 일하는 동료는 전우입니다. 전우끼리 힘을 합해야 버틸 수 있는데, 살아남을 수 있는데, 이 자본과 상대평가의 시대는 전우끼리도 싸워야한다고 가르칩니다. 다..

나의 이야기 2010.01.22

김혜수와 유해진

경인년 첫 스타커플이 탄생했다고 인터넷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배우 김혜수 씨와 유해진 씨가 열애 중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겁니다. 1986년 십육 세의 나이에 데뷔한 이래 줄곧 주연을 맡아온 김혜수 씨, 나이는 한 살 위지만 혜수 씨보다 일 년 늦게 데뷔해 주로 '없어서는 안 될' 조연을 맡아온 유해진 씨. 두 사람을 만나게 한건 함께 출연했던 영화 “신라의 달밤”이지만 두 사람을 연인으로 만들어준 건 책인 것 같습니다. 두 사람 모두 독서광이라니 공통의 화제가 오죽 많았겠습니까? 두 사람의 사랑 소식을 들으니 제일 먼저 “역시 김혜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만 보면 혜수씨 쪽이 우월해보이니까요. 한편으로는 좀 서운합니다. 제 주변 젊은 남자들에게 연애를 하려면 혜수 씨 같은 이와..

나의 이야기 2010.01.05

반효정 선생과 헐벗은 여인들

보름달이 환히 비추어 2010년을 반기는 시각, 텔레비전에서는 연예인들의 상 주고 받기가 한창입니다. 영하의 날씨에 온 몸을 드러내다시피한 여자 배우들과 가수들의 모습, 마음이 아픕니다. 그이들이 있는 방송국은 난방이 잘 되어 춥지 않겠지만, 냉방에 웅크리고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따뜻한 방송국의 헐벗은 여인들을 보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요. 자신의 몸에 자부심을 느껴서 벗은 건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벗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좀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막 47년 경력 배우 반효정씨가 SBS 연기대상 공로상 수상자로 무대에 오릅니다. 유일하게 바깥 날씨에 어울리는 차림입니다. 은회색 두루마기에 흰 목도리가 기품 있습니다. 선생은 "찬란한 유산"의 장숙자 할머..

나의 이야기 2010.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