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어머님, 부디 평안하소서.

divicom 2010. 2. 10. 01:20

점심 약속 하루 전날 친구가 핸드폰 문자를 보냈습니다.

"내일 약속 미뤄주세요. 엄마 먼 길 배웅한 뒤로..."

알 수 없는 찬 기운이 온 몸을 세로로 관통했습니다.

며칠 전, 어머니가 감기에 걸리셨다고,

"감기조차 꿋꿋하게 이겨내지 못해

산소호흡기를 코에 끼운 엄마를 보고 돌아와 심란"하다고

이메일에 써 보냈던 친구입니다.

 

문자를 보자마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면 어쩌나 하는

예의바른 망설임은 젖혀두었습니다.

울먹이느라 말을 잇기 힘든 상황에서도 친구는

어머님 모신 병원을 말해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어디 모셨는지 알면 감기 중인 제가 먼 곳까지 걸음을 할 테니

알려주지 않겠다는 겁니다.

사람의 크기는 위기에서 드러난다더니

그 말이 참말이었습니다.

 

잘 건너지 않는 한강을 건너 어머님이 계신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2월답게... 영안실마다

가시는 이들, 보내는 이들로 북적였습니다.  

사진 속 어머님은 참으로 아름다우셨습니다.

당당한 눈빛과 부드러운 미소가 어려서부터 뵈어온 듯

처음 뵈어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슬퍼서 더 맑아진 친구,

오래 못 본 반가운 얼굴들,

어머님 덕택에 두루 보았습니다.

돌아오는 지하철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도

어머님 얼굴처럼 낯익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돌아가신 분을 만나고 오는 길은

늘 이렇게 아름다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머리가 아팠습니다.

 

등을 보이고 선 여자 승객의 구두에서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였습니다.

친구의 어머님도 별이 되시겠구나 생각할 때

구두의 주인이 허리 꺾인 나무처럼 퍽 쓰러졌습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일으켜 의자에 앉혔습니다.

잠시 잃었던 의식을 곧 찾은 듯했습니다.

 

그녀와 한 정거장에서 내리게 된 건 행운이었습니다.

아직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녀를 부축해 내리며 물었습니다.

병원으로 갈까요, 어떻게 할까요?

그녀는 우선 의자에 앉고 싶다고 했습니다.

철로변 의자에 함께 앉았습니다. 

땀을 많이 흘렸기에 자동판매기에서 이온음료 하나를 사

한 두 모금 먹였습니다.

 

진땀을 쏟은 이마와 손이 차가웠습니다.

옷을 덮어주고 손을 주무르며

전화를 받은 남자친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달려올 때까지, 한참을 그렇게 있었습니다.

괴로워 견디기 힘들어 하면서도 그녀는 자꾸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를 연발했습니다.

 

헤어질 때 남은 음료수 병을 남자친구에게 건넸습니다.

아직도 몸을 가누기 힘든 그녀가 남자친구에게 

제가 사준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그녀와 남자친구로부터  

제가 한 일에 비해 너무나 많은.

"감사합니다."를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분을 떠나보낸 날

아름다운 사람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어머님은 저 세상에서, 다른 이들은 이 세상에서

부디 평안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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