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던 시절에도 여러 개의 신문을 구독하던 부모님 덕에 지금도 신문을 네 개나 봅니다. 어떤 신문에는 다른 신문에 실리지 않는 기사가 가끔 실리기 때문에 보고, 어떤 신문은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가상해서 보고, 어떤 신문엔 다른 나라 소식이 많이 실려서 보고, 신문마다 제 나름의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문제점도 적지 않습니다. 다른 신문에 실리지 않는 기사를 가끔 싣는 신문의 경우, 기자들의 글쓰기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불명확하거나 문법에 어긋난 문장이 많아 읽다보면 짜증이 납니다. 게다가 '5W와 1H'로 이루어진 육하원칙조차 만족시키지 못하니 기사가 의문을 해소하는 대신 의문을 야기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신문의 역사가 짧은데다 소위 사내(社內)의 민주적 분위기가 선후배간의 평등을 강조하는 바람에 도제식 글 쓰기 훈련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일 겁니다.
좌우에 치우치지 않아 구독하던 신문은 중도를 지향하긴커녕 원칙없이 갈팡질팡합니다.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조차 일정한 논조 없이 필자마다 다른 말을 하니, 이게 신문인지 여러 가지 견해를 모아 놓은 인터넷 의견방인지 혼란스럽습니다.
그래도 꾹 참고 네 개의 신문을 구독해온 건 가끔 어떤 기사나 광고 덕에 만나게 되는 영감 혹은 깨달음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 아침 신문에서 본 "분묘개장공고" 덕에 여러 가지 중요한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신문을 구독하지 않았으면 "분묘개장공고"를 보기 힘들었을 거고, 그랬으면 오늘 아침에 떠오른 생각 같은 건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네 신문 중 하나의 구독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그 신문에 딸려온 8쪽짜리 특집 때문입니다. "낙동강 시대가 열리다"라는 큰 제목과 "1,300리 물길 혁명 '희망 물보라'" 사이에 빨간 글씨로 낙동강이 "물의 혁명"을 통해 "기적의 강"으로 탈바꿈한다고 써 있습니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정부의 '4대강 살리기' 홍보에 나선 누군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전면을 휘덮은 기사와 "백호의 기상으로 낙동강 시대 열어갑니다!"하는 통단 광고 사이에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장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8쪽짜리 특집판엔 전면광고 두 개를 비롯해 큼직큼직한 광고가 가득하니 신문사 재정엔 큰 도움이 되었을 거고 저 같은 독자 하나가 구독을 중지한다고 해도 신문사는 꿈쩍도 안할 겁니다.
그러나 신문을 지탱하는 건 돈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위기에 처한 신문, 신문 본연의 정신을 사랑하는 기자와 독자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기사가 아닌 광고를 기사인양 싣는 신문은 독자의 사랑을 잃고 광고로 가득찬 무가지의 수준으로 전락할 겁니다. 이언 피어스의 소설 "스키피오의 꿈"이 얘기하듯, 문명은 지키려는 노력이 지속되는 동안만 지켜집니다. 신문도 신문답게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지킬 수 있습니다. 광고 기사는 일시적으로 신문사의 수입을 늘려주겠지만 신문의 죽음을 가속화할 겁니다. 잠시 고통을 줄이면서 환자의 죽음을 앞당기는 나쁜 약처럼.
오늘은 꾹 참지만 한 번만 더 이런 광고 기사를 실으면 이 신문 구독을 그만두겠습니다. 신문사가 꿈쩍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나쁜 일을 하는 친구의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는 건 나쁜 일을 돕는 것과 같으니 제 양심을 위해 그만두는 겁니다. 부디 다시는 이런 기사가 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과 거울 (0) | 2010.01.24 |
---|---|
인연 (0) | 2010.01.22 |
눈의 나라 (2010년 1월 6일) (0) | 2010.01.06 |
김혜수와 유해진 (0) | 2010.01.05 |
그대를 부르고 나면 언제나 목이 마르고(2010년 1월 4일) (0) | 2010.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