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합니다. 모두 전에 다니던 직장의 동료들입니다. 식탁 위를 오가는 얘기는 과거에서 시작해 현재로 흐릅니다. 과거가 강이라면 현재는 시내입니다. 시냇물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 갈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무도 마음 졸이지 않습니다. 모든 물은 바다에서 만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미래는 고작 의지를 북돋우지만 과거는 평화를 줍니다. 오늘의 세상은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앞으로'를 외치니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이 적으니 세상이 자꾸 싸움터가 되어 갑니다.
직장이 생활전선이라면 함께 일하는 동료는 전우입니다. 전우끼리 힘을 합해야 버틸 수 있는데, 살아남을 수 있는데, 이 자본과 상대평가의 시대는 전우끼리도 싸워야한다고 가르칩니다.
다행인 건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겁니다. 두려움만 극복하면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길이 하나가 아니듯이 삶에서 죽음에게로 가는 길도 무수히 많습니다. 싸우지 않고 살다가 평화롭게 떠나갈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평화를 만끽하고 돌아오는 길, 그 직장에 갔기에 저 친구들을 만난 게 아니라 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그 직장에 갔던 게 아닐까, 행복한 의심이 듭니다. 내일, 모레... 오지 않은 날들이 품고 있는 비밀을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오늘 만난 평화에 기대어 천천히 풀어보겠습니다. 내일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가 될 거라고 하지만 지금 제겐 온기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