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 8

노년일기 288: 일상다반사 (2026년 7월 18일)

신문의 부음란을 보다가 가슴이 철렁했습니다.만난 지 한참된 후배의 이름이 있었습니다.오래전 ㄷ 신문사 기자로 일했던 그의 남편이별세한 것입니다. 둘이 살다 혼자 살 후배, 어서 가서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검은 옷을 꺼내어 바람을 쏘이고 함께 갈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장례식장이 한강 건너편에 있으니 길눈 어두운 저 혼자 갈 엄두가 나지않았습니다. 현직에 있어 늘 바쁜 친구에게선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해외 출장이 잦으니 해외에 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혼자라도 가야지 마음먹고 그 장례식장이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려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제가 신문에서 본 부음이 여러 매체에 실려 있고 부음마다 후배 이름이 있는데, 그 중 한 기사에 그의 남편 나이가 그보다 스무 살 이상 많은 것으로 ..

동행 2026.07.18

노년일기 287: 아내에게 (2026년 7월 15일)

연인이 주고받는 연서와 부부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좀다른 듯합니다. 대개 남편들은 아내에게 사랑 고백하기를쑥스러워하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아내들이 남편의 고백에더 크게 감동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노인들이 자주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사회자들이 늙은남편을 부추겨 아내에게 사랑 고백을 하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남편이 하는 수 없이 서툴게 고백해도 '이런 말은 평생 처음 듣는다'며 눈시울을 적시는 늙은 아내들이 흔합니다. 그렇게 늙기 전에,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사랑을 표현했으면, 아내가 조금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 중이던 1806년 어느 날 꿈 속에서 아내 홍헤완을 만난 후 사랑을 고백하는 시, '꿈 속의 아내에게'를 썼..

동행 2026.07.15

알맹이와 껍데기 (2026년 7월 12일)

환경 보호에 신경쓰는 사람들이 늘며 윤리적 소비가 힘을 얻고 있지만 여전히 편리만 도모하는 사람들과 시설들이 있습니다. 한 친구는 여의도에 있는 유명한카페에 갔다가 크게 실망했다고 합니다. 증권가 한복판에서 '책과 문화'를 기치로 성업 중인 곳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갔는데, 모든 음료를 종이컵에 주더랍니다. 다른 카페가 그렇게 했다면 그러려니했겠지만 책을 내세우는 카페가 그러니 놀랐겠지요. '책'을 읽고 좋아한다는 건 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정신적 문화적 알맹이의 중요성을 알고 그것을 유지하고싶어 한다는 뜻입니다. 즉, 차는 차에 맞는 용기에 담아마시고 대접해야 한다는 걸 아는 것이지요. 북카페 고객들 중엔 책 보는 사람이 많고 요즘처럼 더운 때는 찬 음료를 마시는 일이 흔한데, 시간이 흐르면종이컵 외..

동행 2026.07.12

감자야, 감자야 (2026년 7월 10일)

감자 껍질을 벗기며 생각합니다, 감자는 인생을 닮았구나.사람들은 대개 크고 매끈한 감자를 좋아하지만 가난한사람은 굴곡 심하고 상처 많은 감자를 삽니다. 값 차이가 크니까요. 감자가 산이라면 제가 사는 감자엔 작은 골짜기와 큰 혹이 있기일쑤인데, 그런 감자를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씨나 땅이좋지 않았거나 볕이 들지 않았거나 물이 부족했거나, 불리한 환경에서 죽어라고 애써서 자랐을 테니까요. 감자들도 알 겁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결국 죽음으로 가듯, 잘 생긴 감자든 못난 감자든 모두 사람이나 동물의 입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그러니 몸이 곱지 않은 감자를 보면 뭉클한 겁니다. 어떤 종말을맞을지 알면서도 악조건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영근 모습 때문입니다. 그 모습이 삶의 끝은 죽음이라는 것을 알면..

나의 이야기 2026.07.10

영어유치원 과태료(2026년 7월 8일)

교육부가 어제 입법예고한 '학원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보면, 왜 이 나라의 법이 범죄 예방에 기여하지 못하고 범죄인들에게 무시당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10월부터 영어유치원에서 '레벨테스트'를 하다 적발되면 100만 원의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겁니다. 2회 위반하면 200만 원, 3회 위반하면 300만 원으로 적발 횟수에 따라 과태료가 늘어난다니, 이 법은 소위 '4세 고시'로 불리는 어린이 대상 영어 레벨테스트를 금지하고자 하는 걸까요, 아니면 세수를 늘리기 위해 시행하는 걸까요? 영어유치원비는 보통 어린이 1인당 120만 원쯤 되고 강남에서는 200만 원이 넘는다고 하는데, 교육부는 진실로 100만 원 과태료가 레벨테스트 방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게다가 이 ..

동행 2026.07.08

노년일기 286: 엄마의 구두 (2026년 7월 6일)

노년의 어머니는 저와 다르게 멋쟁이이셨습니다.얼굴도 어여쁘고 꾸밀 줄도 아는 분이지만 중년까지는 없는 살림하랴 아이 다섯 키우랴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노년에 들어서며 아이들이 제 밥벌이를 하게 된후에야 좋은 화장품을 바르고 백화점에서 옷을 사실 수 있었고, 조금 꾸며 타고난 미모를 뽐내시는어머니는 자녀들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구두는 꼭 한 가지만 신으셨는데,바로 '바이네르'라는 브랜드였습니다. 어머니가 가시던 '바이네르'는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에 있었습니다. '바이네르'는 어머니처럼 무지외반증이 심한 사람이신기에 편한 데다 모양도 멋졌습니다. '바이네르'를알기 전에 예쁜 신발을 신으려면 고통을 감수해야했는데 '바이네르'는 편하고 예쁘니 다른 신발을신을 필요가 없다고 좋아하셨습니다. ..

동행 2026.07.06

더 크라운, 그리고 노회찬 (2026년 7월 4일)

영국인도 아니고 영국 왕실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엘리자베스 2세를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크라운(The Crown)'을보았습니다. 이 60부작 드라마는 2016년부터 2023년에 걸쳐 방영되었으니, 저는 한참 늦게 본 것이지요. 이 긴 드라마를 다 본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라운'은 아주 잘만들어진 드라마이지만, 제가 그것을 끝까지 본 것은 첫째도 둘째도 같은 이유, 즉 드라마에서 사용되는 품격 있는 언어 때문입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중단하는 이유와 반대되는 이유이지요.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품격 있는 대사나유머를 듣기는 얼굴을 인공적으로 바꾸지 않은 배우를 찾기만큼어렵습니다. '크라운'을 보고 나니 8년 전 7월 이승을 떠난 노회찬 (魯會燦: 1956년 8월 31일 ~ 2018년..

동행 2026.07.04

딸에 대해 (2026년 7월 1일)

7월 첫 아침 천변을 걷습니다. 나팔꽃과 무궁화가 만발한 길에오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딸과 아들로 태어나 여자와 남자가 된사람들을 보며 생각합니다. 딸을 낳아 기르는 일, 아들을 낳아 키우는 일은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 일일까... 여자들은 저를 웃게 합니다.여자들은 저를 울게 합니다.여자들은 저를 한숨짓게 합니다.여자들은 저를 화나게 합니다.여자들은 저를 기도하게 합니다.여자들은 자신이 신의 반열에 있음을 모릅니다.여자들은 자신이 가장 고등한 생물임을 모릅니다.여자들은 모두 딸입니다.여자들은 모두 꿈입니다.모든 것에도 불구하고여자들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시 쓰고 소설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재즈 피아노를 치고실험영화를 만들고...예술가로 태어나 예술가로 활약하다가1955년 7월 18..

나의 이야기 2026.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