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알맹이와 껍데기 (2026년 7월 12일)

divicom 2026. 7. 12. 22:18

환경 보호에 신경쓰는 사람들이 늘며 윤리적 소비가

힘을 얻고 있지만 여전히 편리만 도모하는 사람들과

시설들이 있습니다. 한 친구는 여의도에 있는 유명한

카페에 갔다가 크게 실망했다고 합니다.

 

증권가 한복판에서 '책과 문화'를 기치로 성업 중인

곳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갔는데, 모든 음료를 종이컵에

주더랍니다. 다른 카페가 그렇게 했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책을 내세우는 카페가 그러니 놀랐겠지요.

 

'책'을 읽고 좋아한다는 건 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정신적 문화적 알맹이의 중요성을 알고 그것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뜻입니다. 즉, 차는 차에 맞는 용기에 담아

마시고 대접해야 한다는 걸 아는 것이지요.

 

북카페 고객들 중엔 책 보는 사람이 많고 요즘처럼

더운 때는 찬 음료를 마시는 일이 흔한데, 시간이 흐르면

종이컵 외부가 축축해져서 자연히 젖은 손으로 책을 만지게

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카페의 주인은 영업을 위해

'책'을 내세울 뿐 진정한 의미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저도 엊그제 산책 중에 들른 홍제천 폭포카페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서대문구청에서 운영하는 그 카페는 

실내와 실외 좌석으로 구성되는데, 어디에 앉으나 음료는

종이컵에 담겨 제공됐습니다. 저는 실내에서 마시니

다회용 컵에 달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테이크아웃하는 음료는 종이컵에 담아

주어도 카페 안에서 마시는 음료는 다회용 컵을 사용하도록

하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 원칙을 어기면 벌금을 부과하니

실내에서 마시는 손님에게 종이컵 음료를 제공하는 상인들은

눈치를 살펴야 했는데, 이제 그런 원칙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카페 안 손님에게 종이컵에 담은 음료를 제공하는 카페 주인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만든 음료에 대한 자부심과 예의가 없는

사람일 겁니다. 뜨겁거나 차가운 음료는 온도에 합당한 용기에

담아 제공해야 제 맛이 나고, 그렇게 하는 것은 음료 한 잔에

5천 원 이상을 쓰는 손님들에 대한 당연한 서비스이니까요. 

 

며칠 전엔 다양한 TV 프로그램에서 인정받았다는 양주 농부가 

키운 오이를 선물 받았습니다.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작고

귀여운 진녹색 오이는 맛이 좋았고 클로렐라 농법, 유황 농법을

사용해 재배했다니 매우 비쌀 것 같았습니다. 오이를 보내준

친구에게 깊이 감사하며 먹고 있지만, 그집 오이와 저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겁니다. 바로 포장 때문입니다.

 

두 종류의 오이가 각각 같은 크기의 다른 스티로폼 상자에 담겨

왔는데, 두 상자는 다양한 홍보 문구가 인쇄된 골판지로 싸여

한 몸이 되어 있고 그 골판지에는 '당일배송 취급주의 신선식품'이

수없이 인쇄된 빨간 비닐 테이프로 여러 번 감겨 있었습니다.

 

오이를 골판지 상자 한 개에 넣어 보내도 되고, 꼭 스티로폼

상자 두 개에 넣고 싶으면 두 상자를 재활용 가능한 비닐끈으로

묶어 보내도 될 텐데, 왜 그렇게 이상하고 복잡하게 포장하여

힘들게 테이프를 벗겨내게 하고 쓰레기를 늘린 건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은 환경 오염을 줄이려는 사람들이 늘어

과대포장이 줄고 있다지만 그 '부자농부'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인 것 같습니다. 

 

물건도 사람도 내실이 있고 내실에 어울리는 외양을 가질 때

보기에도 좋고 인정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차도

종이컵에 담기면 자판기 음료 취급을 당하기 쉽고, 아무리

'친환경'적으로 재배한 채소도 반환경적 포장재에 담기면

'친환경 채소' 대접을 받기 어렵습니다.

 

혹시 안팎이 어울리는 사람들만이 안팎이 어울리는 물건을

내놓을 수 있는 걸까요? 그런 사람들만 만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