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어머니는 저와 다르게 멋쟁이이셨습니다.
얼굴도 어여쁘고 꾸밀 줄도 아는 분이지만
중년까지는 없는 살림하랴 아이 다섯 키우랴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노년에 들어서며 아이들이 제 밥벌이를 하게 된
후에야 좋은 화장품을 바르고 백화점에서 옷을
사실 수 있었고, 조금 꾸며 타고난 미모를 뽐내시는
어머니는 자녀들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구두는 꼭 한 가지만 신으셨는데,
바로 '바이네르'라는 브랜드였습니다. 어머니가
가시던 '바이네르'는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에
있었습니다.
'바이네르'는 어머니처럼 무지외반증이 심한 사람이
신기에 편한 데다 모양도 멋졌습니다. '바이네르'를
알기 전에 예쁜 신발을 신으려면 고통을 감수해야
했는데 '바이네르'는 편하고 예쁘니 다른 신발을
신을 필요가 없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제게도 '바이네르'를 신으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저는 발 모양이 무난하니 그럴 필요 없다고 답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에게 끌려 백화점의
'바이네르' 매장에 갔습니다. 어머니는 어서 하나 고르라고
하셨지만, 어머니 사드릴 때는 비싸게 느껴지지 않던
구두가 제 것으로 사려니 비싸게 느껴졌습니다.
직원 한 사람에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그 사람이 은색
샌들 하나를 권하며, 그것과 그 옆의 제품, 단 두 켤레만
세일 중이라고 했습니다. 권하는 것을 신어 보니 발에
꼭 맞고 어머니도 잘 어울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여름이 와도 샌들을 신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어떤 것이든 한 켤레를 사야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 떠나시고 2년 5개월. 세 번째 여름이 왔습니다.
어머니가 예쁘다 하시던 샌들은 이제 제 여름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예전보다 더 더위를 타는 나이 든 발이
자꾸 그 샌들을 신으라고 하니까요.
어머니는 '바이네르' 구두는 물론 그 구두 회사 대표에
대해서도 칭찬하시곤 했습니다. 일 년에 한 번씩 고객들을
근사한 식당에 초대해 일종의 경로잔치를 해주는 것도
좋지만, 오래 신던 구두도 가지고 가면 완벽하게 수선하여
새것으로 만들어 주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제 샌들은 아직 수선할 필요가 없지만,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 그 회사 대표님을 만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대표님, 당신의 구두 덕에 우리 어머니가 노년을 즐겁고
멋지게 거닐 수 있었습니다. 깊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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