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더 크라운, 그리고 노회찬 (2026년 7월 4일)

divicom 2026. 7. 4. 10:53

영국인도 아니고 영국 왕실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엘리자베스 2세를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크라운(The Crown)'을

보았습니다. 이 60부작 드라마는 2016년부터 2023년에 걸쳐

방영되었으니, 저는 한참 늦게 본 것이지요.

 

이 긴 드라마를 다 본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라운'은 아주 잘

만들어진 드라마이지만, 제가 그것을 끝까지 본 것은 첫째도

둘째도 같은 이유, 즉 드라마에서 사용되는 품격 있는 언어

때문입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중단하는 이유와

반대되는 이유이지요.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품격 있는 대사나

유머를 듣기는 얼굴을 인공적으로 바꾸지 않은 배우를 찾기만큼

어렵습니다.  

 

'크라운'을 보고 나니 8년 전 7월 이승을 떠난 노회찬 (魯會燦:

1956년 8월 31일 ~ 2018년 7월 23일) 의원이 떠오릅니다.

왜냐고요? 그의 타계 후 이 블로그에 '노회찬과 국어사전'이라는

제목으로 게재했던 당시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고문의 칼럼을

보시면 그 이유를 아실 겁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그 칼럼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futureishere.tistory.com/2285


노회찬, 떠나다 

요즘 국어사전을 펼쳐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인터넷 시대라서 그렇기도 하고, 영어 아닌 한국어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매일 국어사전을 읽는 사람이 있다. 아니, 있었다. 


오래전부터 국어대사전을 탐독해왔다는 그는 읽을수록
한국어의 깊이에 빠졌다고 했다. 그는 간혹 술을 먹고
늦게 귀가하는 경우에도 국어사전만은 꼭 읽고 잠들었다.

 

시인도, 소설가도 아닌, 이 특이한 정치인의 이야기를 
들은 게 벌써 몇 년 전이다. 세상 사람들은 노회찬의
촌철살인·유머가 그저 타고난 재능이겠거니 했다. 그가
한국어를 얼마나 갈고닦았는지는 모르고 있다. 보통 
정치인과 달리 그가 적확한 용어와 단어로 상황을 
정의하고, 적절한 분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어에
대한 오랜 집착의 결과이다.

나쁜 정치로 한국어를 망치는 정치인은 많지만, 노회찬처럼
우아한 한국어로 좋은 정치를 추구한 정치인은 드물다. 
그런데 그마저 떠났다. 자신의 말을 지키느라, 기꺼이 
목숨을 내준 것이다.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정치조직을 
위해 쓰려고 아껴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라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떠난
그가 밉다.

(중략)

 

영화 <동사서독>에서 장만옥은 무림의 고수가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난 장국영을 그리며 말한다. “내가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름다운 시절이 와도 그와 함께하지는 못한다. 노회찬의 
부재는 상실이자 고통이다.




 

노회찬과 국어사전(2018년 7월 28일)

격조 있고 아름다운 말, 욕을 할 때조차 노골적이지 않은 말, 무엇보다도 유머... 말은 교양인의 척도라지만 이제 품격 있는 한국어를 듣기는 어렵습니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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