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부음란을 보다가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만난 지 한참된 후배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오래전 ㄷ 신문사 기자로 일했던 그의 남편이
별세한 것입니다. 둘이 살다 혼자 살 후배, 어서
가서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검은 옷을 꺼내어 바람을 쏘이고 함께 갈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장례식장이 한강 건너편에
있으니 길눈 어두운 저 혼자 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현직에 있어 늘 바쁜 친구에게선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해외 출장이 잦으니
해외에 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혼자라도 가야지 마음먹고 그 장례식장이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려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제가
신문에서 본 부음이 여러 매체에 실려 있고 부음마다
후배 이름이 있는데, 그 중 한 기사에 그의 남편
나이가 그보다 스무 살 이상 많은 것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장례식장 가는 법을 검색하고
있을 때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도 제가
전한 부음에 깜짝 놀란 듯했습니다. 얘기 중에 제가
그 후배 남편의 나이가 그렇게 많으냐고 묻자 친구가
무슨 소리냐며 그 남편은 제 또래라고 말했습니다.
알고 보니 후배의 남편이 부음의 주인공처럼 ㄷ신문사
기자였던 건 맞지만 이름이 다르고 훨씬 어린 데다
잘 살아 있으며, 우연히 아내들의 이름이 같았던 겁니다.
웃음으로 친구와의 무선 회동을 마무리하고 오롯이 저와
대면하니 부끄러웠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늘 저를 추켜
세워 주며 격려하지만 언제부턴가 우행愚行은 제게
일상다반사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부음 또한 일상다반사라는 것이겠지요.
지금 이 시각에도 누군가는 지상을 떠나고 있고, 이 글을
쓰는 저나 이 글을 읽는 분들이나 모두 시차를 두고 떠난다는
것, 즉 우리의 生과 함께 우리의 우행도 사라진다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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