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 11

선생이라는 직업 (2021년 9월 28일)

작은 노트에서 지난 8월 19일에 쓴 단상을 만났습니다. "선생처럼 위험한 직업이 있을까 조금 아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되풀이하며 먹고 살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자신이 많이, 혹은 다 안다고 생각하게 되는, 자신에게 배운 사람들은 나무처럼 자라는데 자신은 화석이나 밑둥 썩은 기둥이 되어 여전히 입을 달싹이며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는" 대학교 4학년 때 서울 모 여중으로 교생 실습을 나간 적이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열 명이 그 중학교의 교생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중학교육이 의무교육이 아니었고 등록금을 내지 못할 만큼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종례시간에 담임선생이 그 학생들에게 어서 등록금을 내라고 다그칠 때면 어디로 숨고 싶었습니다. 교사들이 참관하는 수업을 하고 교장으로부터 '하..

나의 이야기 2021.09.28

친구의 생일 (2021년 9월 25일)

오늘은 친구의 생일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몰라도 제게 그의 생일은 우주의 배려입니다. 저를 성장시키려는 배려이지요. 친구 덕에 사람과 사물, 세상을 보는 제 시야가 매우 좁다는 것을 알았고, 저의 재주가 얼마나 국한된 것인지 알았습니다. 사랑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알았고 인연의 소중함과 덧없음도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함께하는 시간보다 만남 자체가 의미 있음을 알았습니다. 동행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시간동안 그와 내가 꾸준히 성장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Happy Birthday, my friend! Thank you for coming into my life. https://www.youtube.com/watc..

나의 이야기 2021.09.25

추석달, 천고마비, 오곡백과 (2021년 9월 22일)

어제 추석 새벽엔 비 뒤로 숨었던 달이 오늘 새벽엔 환히 가을 오는 길을 밝히고 있습니다. 달을 올려다보며 두 손을 마주잡고 갖가지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과 살아가느라 애쓰는 모든 동행들을 생각하니 눈이 젖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동행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어제 본 풍경이 떠오릅니다. 어머니댁에 가며 본 사람들, 나무들, 길에 떨어져 구르던 푸르고 붉은 감들, 검은 개, 어머니댁에서 만난 가족들 -- 아흔 넘은 어머니부터 태어난 지 한 달을 갓 넘긴 아기까지 --,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 본 파란 하늘 흰 구름, 길가의 꽃들과 그들을 흔들던 맑은 바람, 호기심 가득한 고양이의 눈, 과자 부스러기를 보..

오늘의 문장 2021.09.22

노년일기 89: 잠깐 (2021년 9월 19일)

어젯밤 늦게야 잠자리에 든 사람에게 아침 6시 31분은 새벽입니다. 핸드폰을 거실에 두고 안방에서 잤는데 예민한 귀가 문자 도착 알림 소리에 깨어났습니다.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올리며 거실로 나가는데 아흔 넘은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건강하셔도 연세가 있으니 걱정이 되는 거지요. 전화를 여니 동영상이 뜹니다. 보고 싶지 않아 전화를 닫았다가 다시 엽니다. 옛 직장 동료가 추석을 앞두고 보낸 단체 문자입니다. 명절즈음이면 늘 이런 문자를 보냅니다. 잠이 부족한 머리가 띵 합니다. 이런 문자를 받을 때마다 같은 생각을 합니다. 이 사람은 왜 이런 문자를 이렇게 이른 시각에 보내는 걸까? 자신이 아주 일찍 일어나 움직이다 보니 6시 반이면 누구나 자신처럼 활동 중일 거라고 생각하나? 농사에 종사하는 사람이 일찍 ..

나의 이야기 2021.09.19

카페에서 만난 생각: 무심코 (2021년 9월 17일)

정진 님이 말했습니다 "문 열고 들어서는 것만 보아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어요. 누군가 들어서는 걸 보면서 가슴이 쿵 내려앉을 때가 있어요. 손님을 골라 받을 수 없다는 게 이렇게 괴로울 줄 몰랐어요." 정진 님은 향기로운 카페의 주인입니다 카페 문을 거칠게 여는 사람은 테이블과 의자에게도 거칩니다 요란하게 떠들며 들어선 사람은 주문할 때도 시끄럽고 커피를 마실 때도 소란합니다 '한 일이 열 일'이고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다' 더니 무심코 하는 행동이 진면목을 드러냅니다 카페의 손님은 골라 받을 수 없겠지만 나를 이루는 요소는 골라 들이고 싶습니다 의식으로 무의식을 이겨 무심코 아름답게!

나의 이야기 2021.09.17

산 산 산 (2021년 9월 12일)

어디를 걷든 걸음은 결국 산으로 나이는 산 오를수록 보이는 것 많고 올라 보면 보이는 것 모두 측은한 산 산 산 ... - - - - - - - - - - - - - - - - - - - - - - - - - - 녹스는 나뭇잎들을 보니 산으로 간 사람들과 산으로 가는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밟는 곳마다 무덤인데 죽음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예수님 부처님 큰 스승님들 모두 사랑하셨겠지요 ...

나의 이야기 2021.09.12

아버지 떠나신 후 (2021년 9월 9일)

아버지, 어디 계셔요? 아버지 떠나신 후 세상은 더 시끄러워졌습니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찾아와 모두의 입에 마스크를 씌웠지만 소음은 날로 커지고 듣고 싶은 음성은 찾을 길이 없습니다. 아버지 떠나신 날이라고 아버지 누우셨던 방문 밖 또한 시끄럽겠지요. 공기에선 기름 냄새가 나고 한참씩 보지 못했던 식솔 모두 모여 소식을 주고 받을 겁니다. 그러니 아버지, 저는 거기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그 방문 밖에 오시지 않을 테니까요. 아버지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아주 자유로워지셨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제 꿈에 오셨을 때 아름다운 비단 옷 입으시고 높은 관 쓰셨던 모습 조금 전 뵈온 것처럼 생생합니다. 아버지, 못난 딸은 아버지 흉내를 내며 잘 지내고 있으니 제 걱정은 마시옵고 아버지가 그 방에 계실 때 잘..

나의 이야기 2021.09.09

질문2: 2021년 9월 6일

추운 곳의 친구에게 보낼 양말을 사러 가는 길, 인도 한쪽에 차도를 등지고 앉은 여인이 보였습니다. 여인은 남루해도 껍질 벗긴 대파는 깔끔하고 예뻤습니다. '저 대파를 사야지' 생각하는 찰나 집에 있는 대파가 떠올랐습니다. 양말부터 산 후에 생각하자고 그이를 지나쳤습니다. 십오 미터쯤 떨어진 양말 가게 옆에선 다른 여인이 직접 키운 얼갈이배추를 팔았습니다. 저 배추를 사다 국을 끓여야겠다 마음먹고 우선 양말 가게로 갔습니다. 그러나 겨울 양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빈손으로 나서니 얼갈이 파는 여인과 손님 하나가 한창 대거리 중이었습니다. 제법 기다린 후에야 얼갈이 이천 원어치를 사들고 갔던 길을 되돌아 오는데 대파 여인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제게로 왔습니다. "저기서 뭐 팔아요? 뭐, 좋은..

동행 2021.09.06

질문1 (2021년 9월 4일)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아연했습니다. 기자들이 악명 높은 범죄자에게 마이크를 들이대자 그가 기자들을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기자들은 '... 하십니까?' ... 하셨습니까...' 하는 식으로 존칭 보조어간까지 사용하며 깍듯하게 질문하는데 범죄자는 반말로 준엄히 꾸짖었습니다. 범죄자의 당당함과 기자들의 초라함이 딩! 머리를 쳤습니다. 아무리 모든 것이 전도된 시대라지만 저게 무슨 짓이지? 저 기자들은 뭐 하는 거지? 왜 저 사람에게 마이크를 대는 거지? 누가 저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는 거지? 언론은 무엇이며 기자는 누구인가... 1970, 80년대 신문기자를 할 때 늘 저를 따라다니던 질문은 2021년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여적 범죄자에게서 마이크를 뺏어라 김민아 논설실장 2019년 3월 뉴질랜드 ..

동행 2021.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