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질문1 (2021년 9월 4일)

divicom 2021. 9. 4. 07:27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아연했습니다.

기자들이 악명 높은 범죄자에게 마이크를 들이대자

그가 기자들을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기자들은 '... 하십니까?' ... 하셨습니까...'

하는 식으로 존칭 보조어간까지 사용하며 깍듯하게

질문하는데 범죄자는 반말로 준엄히 꾸짖었습니다.

 

범죄자의 당당함과 기자들의 초라함이 딩! 머리를

쳤습니다. 아무리 모든 것이 전도된 시대라지만

저게 무슨 짓이지? 저 기자들은 뭐 하는 거지?

왜 저 사람에게 마이크를 대는 거지?

누가 저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는 거지?

 

언론은 무엇이며 기자는 누구인가...

1970, 80년대 신문기자를 할 때 늘 저를 따라다니던

질문은 2021년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여적

범죄자에게서 마이크를 뺏어라

김민아 논설실장

 

2019년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이슬람 사원에서 최악의 총격 테러가 일어났다. 51명이 숨지고 49명이 다쳤다. 사건 발생 나흘 뒤, 저신다 아던 총리는 의회에서 연설했다. “그는 테러리스트이자 범죄자입니다. 아마도 악명(notoriety)을 얻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뉴질랜드는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겁니다. 그의 이름조차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다음날엔 테러로 목숨을 잃은 10대 2명이 다니던 고등학교를 찾았다. 아던 총리는 희생자의 급우들에게 “테러범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가해자는 유명해지고 싶어 테러 현장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했다. 아던 총리는 그런 가해자를 철저히 ‘익명화’함으로써 그의 광기가 공동체 분열로 이어지는 사태를 막았다. 아던 총리의 리더십은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상찬받았다.

 

서울경찰청이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훼손 전후로 여성 2명을 살해한 강윤성의 신상정보를 2일 공개했다. 신상공개가 흉악범죄자들에 대한 ‘사회적 처벌’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개에 찬성한다. 하지만 범죄자에게 마이크를 쥐여주는 일에는 반대한다. 지난달 31일 서울동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강윤성은 “사회가 X 같다”며 “더 많이 죽이지 못한 게 한이 된다”고 했다. 유족과 대중이 왜 이런 말까지 들어가며 고통받아야 하나.

 

이르면 다음주 초 강윤성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다. 그날 강윤성의 얼굴이 공개될 것이다. 수많은 사진·영상기자들이 그를 샅샅이 촬영하기 바란다. 대신 취재기자들은 마이크를 주지 않았으면 한다. 그는 정치범이나 양심범이 아니다. 범행도 모두 시인했다. 목소리를 직접 들을 필요가 없다. 피해자의 유족들도 입에 발린 사과를 듣기보다, 가해자가 범죄행위에 합당한 엄벌을 받기 바랄 것이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당시 포토라인에 선 조주빈은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분노한 가수 김윤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범죄자에게 마이크를 쥐여주지 마십시오”라는 글을 올렸다. 김윤아의 명철한 언어에 공감한다. 흉악범죄자에게 공적 발화의 기회를 허락해선 안 된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opinion/yeojeok/article/202109022021005#csidxaac9c1be0e0fe94ab318427373ad360